• 아시아투데이 로고
‘연호’가 ‘시대’로 읽히는 일본

‘연호’가 ‘시대’로 읽히는 일본

기사승인 2019. 05. 06. 10:44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아리가또 헤이세이, 사요나라 헤이세이?
일본 ‘상징천황’은 국민의 총의…한사람이 모든 권위를
새 일왕의 안착으로 정치권은 개헌에 박차
clip20190506103320
일본은 1일 새로운 왕이 즉위하면서 연호가 ‘헤이세이(平成)’에서 ‘레이와(令和)’로 바뀌었다. 한 식당 앞에 레이와를 축하하는 팻말을 세워놓았다. /사진=엄수아 도쿄 특파원
4일 오전 10시 일본 궁내청 앞에 모인 사람들만 5만여명. 이날 궁내청 앞은 나루히토(德仁) 일왕의 공무가 시작된 것을 축하하기위해 찾아온 이들로 가득찼다. 일왕 부부가 이날 오후 3시까지 한시간마다 나와 총 여섯번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나루히토 일왕은 이날 왕궁 발코니에 서서 사람들을 향해 “여러분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며 일본이 모든 외국과 손을잡고 세계의 평화를 추구하면서 한층 발전을 이룩하는 것을 마음으로부터 기원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환호하며 ‘레이와(令和) 만세’ 등을 외쳤다.

지난 1일 아키히토 일왕이 생전 퇴위한 뒤 일본의 많은 방송과 신문들은 ‘레이와 시대’가 시작됐다고 표현했다. TV에선 골든위크 연휴기간 내내 ‘아리가또 헤이세이. 사요나라 헤이세이(고맙다 헤이세이, 잘가라 헤이세이)’ 등의 표현을 쓰고 일왕 부부의 어린시절이나 헤이세이(平成) 30년의 주요 이슈에 관한 특집 프로그램을 내보내기도 했다.

연호가 바뀌면 새 시대인가

과연 레이와란 새로운 시대가 온 것일까. 일본 진보성향의 신문들은 이말 자체가 맞지 않다며 천황제가 계속 유지되는 것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사히신문은 3일자 신문을 통해 시대를 바꾸는 것은 오직 주권을 가진 국민만이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미즈시마 히사미츠(水島久光) 도카이대학 교수(미디어론)는 “의도적으로 연호를 시대로 읽게하는 건 문제”라며 현행 헌법에서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므로 왕이 바뀐다고 시대가 바뀌는 것은 성립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물론 30년 전 쇼와일왕이 숨지고 헤이세이로 연호가 바뀌었을 때와 비교하면 진보됐다는 평도 나온다. 공영방송인 NHK의 경우 4월 29일부터 5월 3일까지 정시뉴스를 제외하고 일왕과 관련해 33시간을 방송에 할애했지만 대부분 일왕의 어린시절과 결혼 등 비교적 가벼운 내용을 담았다. 과거 연호가 바뀔 때 예능프로그램이나 재밌는 광고조차 내보내지 않았을 정도로 사회 전체적으로 자숙 모드였다.

살아있는 한 인간이 모든 국민을 상징

도쿄신문은 3일 천황이 모든 국민을 상징한다는 ‘상징천황제’에 대해 심층기사를 내보냈다. 헤이세이 일왕이 태평양전쟁 피해지를 찾거나 지진 피해지역민을 위로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일왕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가 생긴 것은 사실이다. 더 나아가 아베정권과 달리 역사적 책임과 반성의 메시지들을 피력하면서 주변 피해국들에게조차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

지난해 12월 일본사회여론조사회에서 실시한 조사에서 아키히토 일왕하면 떠오르는 것으로 ‘재해지역 위로방문’이 70%를 차지했고 그 다음으로 ‘국제친선(37%)’, ‘전역자위문(29%)’ 등의 순으로 거론됐으며 ‘친근한 느낌’에 대해선 응답자의 50%가 그렇다고 답했다.

치모토 히데키 츠쿠바대 명예교수(현대사)는 헤이세이 일왕에 대해 “스스로 상징천황을 설계하고 연출하고 주연을 맡았다”며 “그의 아버지인 쇼와천황과 달리 상징천황에 대한 구심력을 높였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상 가장 강한 상징천황으로 재편했다”고 분석했다. 상징으로만 존재하기로 했지만 어떤 면에선 더욱 강한 왕이되고 있는 셈이다. 법에 있어서도 천황을 ‘상징화’ 하기위해 헌법은 ‘상징천황은 국민의 총의’라고 강변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천황제가 개헌에 주는 영향

사실 상징천황제는 전쟁에서 패한 일본이 일왕의 존재를 남기기 위한 안감힘이나 다름없다. 일본은 헌법 9조를 통해 왕의 권력은 없앴지만 권위는 남겼으며 ‘상징’이란 표현을 붙여 왕의 존재를 남겼다. 법상 일본의 왕은 ‘일본 국민의 상징이자, 일본 국민의 총합의 상징이며, 그 지위는 주권을 가진 일본 국민의 총의에 기초한다’고 명시돼 있다.

일본 진보성향 신문들은 그렇기에 상징천황제는 아베신조 총리가 강행하려는 개헌과 맞닿아 있다고 지적한다. 일본 국민들이 새로운 일왕을 반기는 동안 정치권 역시 개헌 논의를 빠르게 몰아붙이고 있다. 친아베 보수성향의 요미우리신문은 3일자 1면에 ‘헌법 논의를 활발히 해야 한다 65%’라는 기사를, 진보성향의 아사히신문은 이날 ‘개헌 기운 높아지지 않았다 72%’라는 정반대 조사 결과의 기사를 실었다.

아베 총리는 3일 극우성향의 산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위대의 존재를 명문화해서 위헌 논쟁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 우리 세대의 책임”이라며 군대를 보유한 ‘정상국가’가 되는 개헌에 박차를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