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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동백꽃 필 무렵’ 이정은 “매번 연기하며 인생 배워요”

[인터뷰] ‘동백꽃 필 무렵’ 이정은 “매번 연기하며 인생 배워요”

기사승인 2019. 12. 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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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동백꽃 필 무렵'에서 정숙 역을 연기한 이정은 인터뷰
KBS 2TV '동백꽃 필 무렵' 이정은 인터뷰3
KBS 2TV ‘동백꽃 필 무렵’ 이정은 인터뷰 2019. 12. 4 /정재훈hoon79@
1991년 연극 ‘한여름 밤의 꿈’으로 데뷔한 이정은은 오랫동안 무대에 서며 배우의 길을 걸었다. 간간히 드라마와 영화에 등장은 했지만 영상 매체에서 익숙한 배우는 아니었다. 그러던 이정은에게 올해는 특별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 그가 출연한 영화 ‘말모이’ ‘미성년’ ‘기생충’, 드라마 ‘눈이 부시게’ ‘타인은 지옥이다’ ‘동백꽃 필 무렵’은 대중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또한 이정은은 ‘기생충’으로 칸의 레드카펫을 밟았고 춘사영화제, 부일영화상, 청룡영화상에서 여우조연상을 휩쓸었다. ‘눈이 부시게’로 백상예술대상에서도 여자조연상을 수상했다.

최근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정은은 ‘수상을 축하드린다’는 인사에 환하게 웃어보였다. “상은 모두 부모님 댁에 갖다놨다. 평정심을 지키고 싶어서 상을 안 보이는 곳에 놔둔다”고 말한 이정은은 “사실 수상보다는 시상이 하고 싶다. 기쁨을 나누는 그 순간이 좋다. 그래도 ‘동백꽃 필 무렵’은 이번 방송대상에서 상을 싹쓸이 했으면 한다”며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제가 늘 잘 되진 않았어요. 올해는 ‘기생충’으로 주목받고 칸에 간 게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 덕에 현장에서 더 편안하게 잘 해주셨고, 그게 연기를 하는데 도움이 컸어요. 무엇보다 제게 특별한 역할들을 주셔서 감사해요. 엄마인데 좀 다른 엄마, 회사원인데 좀 다른 회사원 같은 역할이요. 예전에는 어떻게 이 역할을 풍요롭게 할까 고민했는데, 이젠 풍요롭게 만들어진 역할을 연기하는 기분이에요.”

‘기생충’의 여운이 가기도 전에 기쁨은 또 찾아왔다. 최근 종영된 KBS 2TV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이 그야말로 ‘대박’ 났다. 올해 미니시리즈 중 가장 높은 시청률인 23.8%(닐슨코리아·전국 기준)로 막 내린 ‘동백꽃 필 무렵’에서 이정은은 동백(공효진)을 버리고 떠난 엄마 정숙을 연기했다. 치매를 둔갑해 자신이 버린 딸 동백을 찾아간 정숙에겐 기구한 사연이 있었다. 목숨과도 같은 자식을 버렸어야 하는 정숙의 이야기에 많은 시청자들이 울었다.

“처음엔 정숙이 어떤 사연을 가졌는지 저도 몰랐어요. 많은 걸 알고 연기하는 게 방해가 될 때도 있는데, 이번 ‘정숙’이가 그래서 표현의 폭이 넓어진 것 같아요. 정숙이는 다른 엄마들과는 좀 다르죠. 제가 결혼을 안 해서 일반적인 엄마와 다른 길을 걷는 것 같아요. 그게 우리 사회가 가진 대안점이 될 것 같고요.”

이정은은 ‘동백꽃 필 무렵’이 ‘모정’에 대한 이야기보다 ‘책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며 싱글맘에 대한 시각도 달라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실제 ‘동백꽃 필 무렵’ 제작진은 미혼모단체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동백을 통해 ‘미혼모’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는 데 큰 힘이 됐기 때문이다.

“우리 작품은 ‘자기가 뿌린 씨앗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지고 싶어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 같아요. 다음 세대를 위한 우리의 자세를 보여줬죠. 정숙이나 동백이의 삶, 즉 미혼모에 대해선 뉴스로만 접해봤지 잘 몰랐죠. 그런 인물들을 조명해서 다른 시각을 갖게 해준 작가님에게 너무나 감사해요. 벌 받는 기분의 정숙이의 삶이 행복해졌다는 것이 저를 통해 비춰졌기 때문에 감사하고, 또 이 작품을 할 수 있게 제안해 준 차영훈 감독님도 너무나 감사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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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동백꽃 필 무렵’ 이정은 인터뷰 2019. 12. 4 /정재훈hoon79@
정숙이의 삶은 기구해도 너무나 기구했다. 폭력을 쓰는 남편을 피해 딸 동백과 도망친 정숙이 돈을 벌 수 있는 곳은 많이 없었다. 술집을 전전하며 지내던 정숙은 ‘아빠’라는 말보다 ‘오빠’라는 말을 먼저 배운 동백의 모습에 충격을 받고 그를 보육원에 맡겼다. 이 이야기는 19회에 모두 설명돼 배우에게도 부담으로 다가올 수도 있었다.

“저도 19회 대본을 보고 너무나 놀랐어요. 그 정도의 이야기가 한 번에 나올지 몰랐고, 또 제가 그걸 표현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을지 두려웠죠. 드라마 안에 또 다른 한 편의 드라마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최대한 담백하게, 감정이 늘어지지 않게 연기하려고 노력했어요. 부담이 되긴 했지만 감독님이 편집을 잘 해주셔서 공감이 잘 됐던 것 같아요.”

이정은은 처음으로 연기 호흡을 맞춰본 공효진에게도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다.

“저는 공효진 씨가 연기하는 모습을 너무나 좋아하고 존경해요. 효진 씨가 말하면 대사가 아니라 진짜 말하는 느낌이 나잖아요.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배우가 좋은 상대를 만난다는 건 천운과 같다고 하는데, 제가 그런 것 같아요. 효진 씨에 의해 제 연기도 결정됐고, 또 그런 마음을 잘 이해해주고 받아준 것 같아요.”

워낙 많은 명대사 중 이정은의 기억 속에는 두 장면이 크게 자리했다. 정숙이 연쇄살인범 ‘까불이’의 정체가 흥식이(이규성)인 것을 짐작하고 그의 앞에서 ‘짐승도 제 자식한테 해 끼칠 놈은 알아봐’ ‘난 동백이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나는 해, 뭐든지’라고 말하는 장면과 ‘나랑 7년 3개월 어땠어?’라고 묻는 정숙에게 동백이 ‘적금 타는 것 같았어’라고 대답하는 장면이었다.

“사실 정숙이는 멋있는 엄마였던 것 같아요. 까불이를 직접 찾아가는 것 자체가 저는 굉장히 놀랐어요. 실제 저라면 무서울 것 같거든요. 죽을 날을 받아놔서 그런지, 어떤 힘이 있었던 건지 정숙이는 그렇게 행동했죠. 다른 엄마의 측면이 나온 것 같아서 좋았고요.”

‘연기장인’으로 불리는 이정은이지만 아직도 그에게 연기는 늘 어렵다. 그저 “작품이 좋았고, 역할이 다르기 때문에 다르게 보였던 것”이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작품이 올 때마다 매번 어렵고 고민도 많이 해요. 공부는 하면 결과가 바로 나오잖아요. 하지만 연기는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더 애타는 것 같아요. 안 풀리면 힘들지만 재밌고, 또 대중들 반응이 좋으면 기분이 좋아져서 다음 것을 준비하게 돼요. 저는 여러 생각을 할 수 있는 인물이 좋은데, 늘 그런 인물에게 인생을 배우는 것 같아요.”

과거 인터뷰 당시 아카데미 수상이 목표라고 했던 이정은은 벌써 그 꿈을 이룬 배우가 됐다. “자꾸 말하면 현실이 된다”라며 웃어 보인 이정은은 주윤발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주윤발이 전 재산을 기부하고 지하철로 다니면서 사람들과 사진을 찍어주잖아요. 너무나 멋있는 것 같아요. 저 역시 좋아하던 배우였는데 나이 들어서도 선행을 이루는 걸 보니 너무나 멋있더라고요. 공익을 위한 일을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이번에 권해효 씨와 녹색병원 홍보대사도 맡게 됐어요.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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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동백꽃 필 무렵’ 이정은 인터뷰 2019. 12. 4 /정재훈hoon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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