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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담화] SK이노베이션, 조기패소에도 충당금 안 쌓은 이유는

[취재뒷담화] SK이노베이션, 조기패소에도 충당금 안 쌓은 이유는

기사승인 2020. 09. 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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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기업들은 소송을 진행할 때 질 경우를 대비해 충당금을 쌓아두곤 합니다. 향후 지출할지도 모르는 금액을 미리 재무제표에 반영해 충격을 완화하려는 거죠. 그런데 LG화학과 이른바 ‘배터리 전쟁’을 벌이고 있는 SK이노베이션은 이와 관련한 충당금을 쌓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서 영업비밀 침해 관련 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ITC는 이미 지난 2월 SK이노베이션에 대해 ‘조기패소’ 예비 판결을 내린 바 있지만, 최종 판결은 다음달 초 나올 예정입니다.

ITC가 예비결정과 변함없는 판결을 내린다면 SK이노베이션의 제품은 미국 내 수입 금지 처분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SK이노베이션의 손실이 커질 수밖에 없어 판결 전 LG화학에 합의금을 지급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됩니다. 합의금 수준은 1조원대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SK이노베이션은 ITC가 사법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충당금을 쌓을 기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법적인 손해배상 청구의 근거가 아닌 데다 예상금액이 불확실한 탓에 임의로 충당금을 설정할 수 없다는 겁니다.

업계는 선제적으로 충당금을 쌓으면 앞으로의 충격을 일부 완화할 수 있음에도 SK이노베이션이 이 같은 선택을 한 건 상반기 대규모 적자 때문이라고 분석합니다. 국제유가 변동성이 커지면서 SK이노베이션은 올해 상반기에만 이미 2조20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죠. 여기에 우발채무까지 더해지면 적자 규모는 더욱 확대될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겁니다.

ITC 소송으로 충당금을 쌓아야 하는 게 의무 사항이 아닌 만큼 시기를 조절해야 한다고 판단한 셈입니다. 상대적으로 실적이 개선되는 시기에 충당금을 쌓으면 이 손실이 희석될 것이란 기대 심리도 반영됐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ITC의 최종 판결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ITC의 예비결정이 최종결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만큼 최소 1조원 이상의 합의금을 부담해야할지도 모릅니다. 국제회계기준은 재무제표 작성자의 판단을 존중하는 만큼 의무적으로 충당금을 쌓을 필요는 없었지만, 향후 더 큰 충격으로 반영된다면 책임론을 피하긴 어려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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