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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차 거래 ‘서명’ 후 낼 돈 ‘눈덩이’로 불어나… 반복되는 중고차 사기 왜?

중고차 거래 ‘서명’ 후 낼 돈 ‘눈덩이’로 불어나… 반복되는 중고차 사기 왜?

기사승인 2020. 09. 23.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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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법과 제도적 장치 없어 중고차 사기 끊임없이 반복
“더 이상 낼 돈 1원도 없다”더니… “할부 승계금 내야 한다” 거짓말
허위매물 단속 시작하니 ‘다른 사기 수법’ 활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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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중고차 매매 단지 내부에 중고차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사진=천현빈 기자
지난달 20일 대법원이 중고차 매매단지의 허위매물 사례를 집단적 사기로 규정하고 형사처벌 할 수 있다는 판결이 나왔지만 이를 비웃듯 일부 중고차 딜러들의 사기 수법은 갈수록 다양화하고 있다.

최근 결혼을 앞둔 A씨는 인천의 한 중고차 매매단지를 찾아 SUV를 구매하려다가 눈 뜨고 코 베이는 일을 겪었다. 해당 모델은 신차가격이 5000만원에 달하는 고급 모델로, 연식과 주행거리를 감안하면 최소 3000만원 정도의 가치는 있는 차량이었다.

하지만 중고차 딜러는 “여기(차량매매계약서)에 나와 있는 차량대금 1250만원과 취등록세 등 각종 부대비용만 합치면 더 이상 낼 돈이 단 1원도 없다”란 말을 반복했고 A씨는 그 말을 믿고 계약금 250만원을 송금한 뒤 계약서에 서명했다.

하지만 A씨가 계약서에 서명을 하자마자 중고차 딜러의 태도는 돌변했다. 딜러는 “고객님은 이제 이전 차주 분이 납입하지 않은 할부금 2800만원을 매달 내야 하고 할부금이 완납될 때까지는 차에 저당권이 설정된다”며 ‘할부승계계약서’라는 다른 종이를 들이밀었다. 매매계약서상의 1250만원과 할부승계금 2800만원을 합치면 실제 구매금액은 4000만원을 넘어 거의 신차 가격에 육박했다.

이 딜러는 “할부승계계약서까지 작성하던지 계약금을 포기하던지 하라”며 A씨를 압박했고, A씨는 결국 계약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일부 부도덕한 중고차 딜러는 ‘좋은 차를 싸게 사고 싶다’는 소비자의 심리를 최대한 이용한다. 허위매물이 문제가 되니 실매물을 말도 안 되는 저렴한 가격에 올려놓고 우선 현장으로 유인하는 것이 첫 번째 단계다. 소비자는 매매단지에서 딜러의 “앞으로 이 할부금 외에 들어갈 돈은 단 1원도 없다”는 손바닥 뒤집는 듯한 거짓말을 계속 들으며 계약서에 서명하게 된다.

중고차 딜러들의 비양심적 행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잊을만 하면 각종 매체를 통해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다. 한 유튜브 채널은 중고차 사기꾼을 끝까지 추적하는 과정을 담은 영상이 100만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결국 해당 딜러는 경찰 조사를 받고 사기죄로 법적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일부 부도덕한 중고차 딜러는 ‘좋은 차를 싸게 사고 싶다’는 소비자의 심리를 이용한다. 허위매물이 문제가 되니 실매물을 말도 안 되는 저렴한 가격에 올려놓고 우선 현장으로 유인하는 것이 첫 번째 단계다. 소비자는 매매단지에서 딜러의 “앞으로 이 할부금 외에 들어갈 돈은 단 1원도 없다”는 손바닥 뒤집는 듯한 거짓말을 계속 들으며 계약서에 서명하게 된다. 이때부터 딜러는 본색을 드러낸다.

소비자는 아무리 “바로 방금 전 이 돈 외에는 들어갈 돈이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따져도 무용지물이다. 딜러는 “그건 이 계약서 상에서 들어갈 돈을 말한 거고 여기 할부승계금 문서가 따로 있다”라며 “이미 계약했으니 철회할 수 없다”고 협박한다. 소비자는 그 자리에서 수천만원을 허공에 날릴 위기에 처한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는 구제받을 방법이 거의 없다. 앞선 유튜브 사례처럼 끝까지 관련 사건을 추적하고 경찰의 도움을 받으며 계약서가 무효라는 것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과 돈도 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지친 소비자들은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그 계약서를 떠안고 가는 경우가 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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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중고차 단지에서 고급 외제차로 알려진 브랜드의 신차급 중고차가 시세보다 훨씬 저렴하게 올라와 있다./사진=천현빈 기자
기자가 23일 찾은 서울의 한 매매단지도 같은 수법을 쓰고 있었다. 어느 딜러는 계약서를 쓰기 직전까지 “여기서 들어갈 돈은 단 한 푼도 없다”는 말을 반복했다. 기자가 앞선 피해 사례를 언급하자 “여기는 인천과 같은 곳이 아니다”라며 “확인해보시면 알겠지만 지금 보신 수입 차량은 모든 비용을 합쳐서 2900만원 정도다”라고 강조했다.

실제 계약서 직전까지 간 고급 수입 차량은 2019년 식에 주행거리 2만km인 신차급 중고차였다. 고급 외제차의 가격이 정말 저렴하다며 수차례 반문하고 의심하자 해당 딜러는 “그럼 다른 차를 더 둘러보고 오자”며 “훨씬 싼 매물은 여기 저기 널려있다”고 관심을 딴 데로 돌렸다.

거대한 중고차 시장에서 이런 사기 수법이 뻔뻔하게 행해지는 이유는 관련법과 제도적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지난달 19일 중고차 시장 개선을 위해 허위매물을 엄벌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지사는 “중고차 시장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허위매물과 누군가를 속여서 부당한 이익을 받는 경우를 없애야 한다”며 “질서파괴행위에 대해 공정하게 책임을 묻고 다시는 못 들어오게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국회에서도 중고차 시장의 집단적인 사기 행위에 대한 관련 법안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상현 의원은 지난 7월 “사기 행각을 버젓이 벌이는 중고차 딜러와 할부 대행사의 조직적 범죄에 대해서 수사 의뢰, 처벌, 강력 처벌 법안과 가중 처벌하는 법안을 만드는 것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싸고 좋은 차’는 없다는 인식을 소비자들이 확실하게 가지는 것도 중요하다. 중고차 매매 사이트를 운영하는 B씨는 “중고차를 구입하기 전에 ‘과연 내가 판매자라면 이런 차를 이 가격에 팔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반드시 해봐야 한다”며 “싸고 좋은 중고차는 100% 허위매물이거나 이면계약의 함정이 기다리는 매물이니 아예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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