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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낮에는 차밭 피크닉, 밤에는 섬진강 달마중

[여행] 낮에는 차밭 피크닉, 밤에는 섬진강 달마중

기사승인 2020. 10. 27.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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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하동
여행/하동
하동 정금다원. 해발 약 200m의 언덕배기에 계단식 차밭이 펼쳐진다. 화개천과 준봉이 어우러진 풍광이 먹먹한 가슴을 후련하게 만든다.

경남 하동에 갔다. 차(茶)밭 복판에서 따뜻한 차를 마셨다. 전신에 온기가 퍼니지 계절을 실감할 여유가 생겼다. 섬진강변 백사장에 드러누워 달을 보고 별도 구경했다. 먹먹한 가슴에 숨통이 조금 트였다. 

여행/
화개면 한밭제다의 차밭. 가을의 차밭도 운치가 있다.

하동까지 간 이유는 이렇다. 한국관광공사가 생활관광 활성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역의 고유문화와 현지인의 일상을 여행 콘텐츠로 개발하겠단다. 현지에서 살아보고 지역민의 일상을 체험하는 가운데 새로운 여행의 멋을 느껴보라는 취지다. 절경이 아니어도 일상의 생활이 여행의 테마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의 발로다. 일리가 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끼게 되는 것이 여행이니 그곳의 문화와 거기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면 감흥은 배가될 거다. 올해 사업 대상지로 여섯 곳이 선정됐는데 여기에 하동의 ‘다달(茶月)이 하동’이라는 프로그램이 포함됐다. 지리산과 섬진강에 살 붙이고 차를 재배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체험하는 일정이다. 차밭을 산책하고 차에 관한 얘기를 들으며 차를 음미하는 차마실과 섬진강 백사장 달마중이 프로그램의 핵심이다. 하동주민공정여행 ‘놀루와’가 운영한다. 

여행/ 하동
사위 한갓진 마을을 지나 조붓한 숲길을 따라가면 정금다원이 나온다. 가을날 마을 산책은 단풍 화려하지 않아도 운치가 있다.

차마실은 그야말로 다원에서 즐기는 피크닉이었다. 화개면 화개골 정금마을 일대를 산책했다. 차밭은 봄에만 예쁜 줄 알았는데 가을에도 운치가 있었다. 바람이 쌀쌀해졌지만 칫잎은 여전히 진초록이어서 소나무 못지 않은 상쾌함을 선사했다. 적요한 산촌의 한가로운 가을풍경도 정신을 맑게 했다. 차나무에는 차꽃도 피었다. 봄에 왔으면 보지 못했을 꽃이다. 차꽃은 9월말부터 눈이 내리기 전까지 볼 수 있단다. 맑은 물 흐르는 계곡을 차분히 짚어가니 조붓한 숲길이 나왔다. ‘천년차밭길’에 속한 구간이란다. 하동 차의 역사가 길 이름에 오롯이 벴다. 정금다원은 숲길 끝에 있다. 해발 약 200m 언덕배기에 계단식 차밭이 있고 가장자리에 ‘정금정’이라는 정자가 자리잡았다. 전망이 압권이었다. 차밭 아래로 화개천이 굽이굽이 흘러가고 골짜기 옆으로 준봉들이 도열했다. 차를 마시기도 전에 속이 후련해졌다. 

다포에게 하동의 차 얘기도 들었다. 다섯 곳이 다원이 모여 만든 여행플랫폼이 다포다. 여행자가 다원에 찾아오면 차에 관한 이런저런 얘기를 들려준다. 차는 하동 사람들의 일상과 밀접했단다. 화개면 한밭제다 관계자는 “찻잎을 썩썩 비벼 툇마루에 말려 보관해 두고 감기에 걸리거나 배가 아플 때 마셨다. 이게 ‘잭살’이라는 차인데 참새 혀처럼 작은 찻잎을 가리키는 ‘작설’의 변형이다. 할아버지 방에서 항상 차가 끓고 있었다”고 했다. 조문환 ‘놀루와’ 대표는 “하동의 차 농가는 2000여 가구에 달한다. 이 가운데 300여 곳이 자체 브랜드를 붙인 차를 생산한다”고 거들었다. 그는 또 “하동은 야생차가 잘 알려졌지만 다원의 재배차밭과 야생차밭의 비율은 7대 3이다. 다원이라고 대규모 시설을 갖춘 곳이 아니라 대부분 가내 수공업 형태로 운영된다. 비료를 주지 않아 야생차와 품질이 큰 차이가 없다”고 덧붙였다. 

여행/ 하동
차마실 정기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지역예술인들의 공연을 감상하며 차를 즐길 수 있다. ,
여행/ 하동
정금마을 언덕배기의 계단식 차밭.

하동의 차는 익히 유명하다. 우리나라의 공식적인 차 시배지가 하동이다. ‘삼국사기’에 ‘신라 흥덕왕 3년(828년)에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김대렴이 차나무 씨앗을 가져와 왕의 명에 따라 지리산에 심었다. 차는 선덕여왕 때부터 있었지만 이때에 이르러 성하였다’는 얘기가 나온다. 김대렴이 씨앗을 심은 곳이 화개면 쌍계사 인근 화개골로 추정된다. 공식기록 이전에도 일대에는 야생차나무가 자생한 것으로 전한다. 어쨌든 하동의 차는 최고로 꼽혔다. 고려시대, 조선시대에는 조정에 진상되며 ‘왕의 녹차’라는 타이틀까지 붙었다. 이유가 있다. 차 품질의 관건은 일조량. 화개천과 섬진강이 만나며 만들어지는 안개로 햇빛과 습도가 잘 조절되는 화개골은 차 재배의 최적지였다. 여기에 집집마다 대대로 이어진 덖음 기술(제다법)이 더해져 ‘명차’가 탄생했다. 선인들도 하동 차에 몸이 달았다. ‘차의 성인’으로 불리는 조선후기 고승 초의선사는 화개골 칠불사에 머물며 하동의 차를 바탕으로 ‘초의다신전’을 썼다. 조선후기 명필 추사 김정희 역시 “중국 최고 차인 승설차보다 낫다”며 이곳 차를 극찬했다. 

차밭을 배경으로 지역 예술인들이 공연도 한다. 이날은 해금 연주가 있었다. 바람을 타고 흐르는 선율이 차의 향기를 웅숭깊에 했다. 찻집에서 마실 때와 분위기가 완전 딴판이었다. 차의 온기가 이토록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지 새삼 알았다. 하동에 가면 ‘인생샷’만 찍지 말고 차와 풍경을 음미하는 것도 꼭 해볼 일이다. 

차마실은 매주 금요일에 진행하는 정기 프로그램과 개별여행자를 위한 개별 프로그램이 있다. 정기 프로그램은 신청자가 10명 이상일 경우 진행된다. 단체 여행자에게 적합하다. 참가비는 1만5000원이다. 개별 프로그램은 개별 여행자에게 차 키트(kit)를 대여하는 방식이다. 다원에서 키트를 받아 원하는 곳에서 차를 마시면 된다. 키트는 미니 테이블, 피크닉 돗자리, 쟁반, 녹차, 보온병 등으로 구성된다. 2만원이다. ‘놀루와’ 공식블로그에서 예약하면 된다.

여행/ 하동
섬진강변을 걷고 지역예술인들의 공연과 시낭송 등을 감상하는 섬진강 백사장 달마중 프로그램.
여행/ 하동
섬진강 백사장 달마중 시낭송.

해질 무렵 체험한 섬진강 백사장 달마중은 이색적이었다. 호야등(남포등)을 들고 악양 평사리 섬진강변을 걸었다. 섬진강 일대는 지난 여름 장마 때 피해가 컸다. 당시의 상흔이 대부분 아물었다. 군데군데 쓰러진 나무가 보였지만 운치는 전과 다름없이 느껴졌다. 백사장에 앉아 지역예술인의 공연을 보고 지역 문인이 들려주는 시 한구절도 가슴에 새겼다. 나중에는 벌렁 드러누웠다. 하늘은 유난히 맑았고 달과 별은 또 그렇게 밝았다. 강물에도 달과 별이 둥실둥실 떠 다녔다. 경관조명이 없는데다 아파트나 빌딩도 찾아 볼 수 없으니 어둠을 제대로 실감했다. 어둠이 있을 때 빛은 가치가 있다. 요즘 우리나라 야간관광 시설은 빛이 너무 도드라진다. 빛을 온전히 체험하기 쉽지 않은 세상에서 달빛, 별빛을 제대로 구경했다. 사람도 더 그리워졌다. 섬진강 백사장 달마중 프로그램은 한국관광공사의 야간관광지 100선에 들었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시범사업으로도 선정됐다. 

섬진강 백사장 달마중 프로그램 역시 정기 프로그램(1만원)과 개별 프로그램(2만원)이 있다. 키트는 테이블, 블루투스 스피커, 호야등, 미니 달조명, 미니체어 등으로 구성된다. 요즘은 밤에 춥다. 옷을 두둑하게 챙겨야 한다. 그래서 정기 프로그램은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는 운영되지 않을 예정이다. 개별 프로그램은 이용 가능하단다. 

여행/ 스타웨이 하동
‘스타웨이 하동’. 소설 ‘토지’의 무대인 악양면 평사리 들판과 섬진강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여행/ 하동 짚와이어
국내 최장 길이를 자랑하는 하동 짚와이어. 금오산 정상에서 3단계에 걸쳐 내려온다. 한려해상 풍광이 장쾌하다.

차마실, 달마중 아니어도 하동은 요즘 ‘핫’하다. 악양면의 ‘스타웨이 하동’(스카이워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자주 등장한다. 소설 ‘토지’의 무대인 평사리 들판과 섬진강이 어우러진 풍경이 아주 멋지다. 금남면의 하동 짚와이어도 최근 난리가 났다. 최근 배우 이시언과 개그우먼 박나래가 TV예능 프로그램 ‘나혼자 산다’에서 짚와이어를 탄 것이 화제가 됐다. 금오산(849m) 정상에서 3단계에 걸쳐 약 3.2km를 내려온다. 국내 최장이다. 하강하며 바라보는 한려해상의 풍광이 끝내준다. 금오산 정상까지 가는 케이블카도 건설 중이다. 내년 이맘때 완공 예정이다. ‘미스터 트롯’ 출신 가수 정동원의 집과 그의 모친이 운영하는 카페가 진교면에 있다. 주말에는 2000~3000명의 팬이 몰린단다. 카페 주변에는 걷기 좋은 ‘정동원길’까지 조성됐다. 진교면의 술상마을은 전어로 이름났다.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만든다’는 전어는 요즘이 제철이다. 포구의 빨간 등대가 예쁘고 해변을 따라 만들어진 ‘술상 며느리 전어길’도 걸을만 하다. 즐길거리 참 많은 하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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