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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빈 칼럼] ‘아빠가 나에게 해준 게 뭐가 있어?’

[홍석빈 칼럼] ‘아빠가 나에게 해준 게 뭐가 있어?’

기사승인 2020. 11. 2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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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빈 우석대 교수(정치외교학)
개혁과 혁신의 벅찬 청사진, 지금은 어디로 갔나?
보고 싶은 것만 보지 말고, 자식 키우는 부모 아닌가?
홍석빈 교수 최종 증명 사진
홍석빈 우석대 교수(정치외교학)
학기말 시험범위를 받았는지 중학생 아들이 묻는다. “아빠, 이렇게 매일 공부만 하고 어떻게 살아? 대학생 될 때까지 계속 이렇게 살아야 돼?” 내가 답한다. “라떼는 말이야, 매월 월말고사 시험쳤다. 그것도 너희들처럼 예닐곱 과목도 아니고 열댓 과목 이상! 그 정도 가지고 엄살은...”

꼰대 답을 해놓고 나서 ‘하긴 요새 친구들과 밖에서 놀지도 못하고 기껏 피시(PC) 게임이 유일한 낙이니...’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불현듯 ‘세상이 이대로 굴러가면 결국 우리 세대가 겪었던 자기 미래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던 과거세상을 다시 대물림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구나’하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지난 촛불시위를 통해 불꽃에 담았던 소망은 좀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었을 것이다. 민생과 경제 상황이 나아지고, 크고 작은 기업들의 사업이 잘 돼 일자리가 더 많이 생기기를 바랬을 것이다. 지금처럼 자녀들을 수동적인 시험기계로 만드는 못된 교육제도가 개혁돼 아이들이 진정 자기가 원하는 것들을 하면서, 저마다 의미 있는 인생들을 즐기며 살 수 있게 되는 길로 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길 기대했을 것이다.

개혁과 혁신의 벅찬 청사진, 지금은 어디로 갔나?

거의 백 년이 다 돼 가는 분단의 빙벽도 점차 해빙돼 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남북이 공존 번영하는 길이 트이길 바랬을 것이다. 온 국민이 진정 그렇게 되길 바랬을 것이고, 현 정권과 정부가 아주 조금이라도 그렇게 해줄 수 있을거라는 기대를 가졌었을 것이다.

정권 초기 적폐청산을 기치로 내세웠던 것이 어느 정도 가닥을 잡고 나면 곧이어 개혁과 혁신의 벅찬 미래 청사진이 제시되고, 국민통합의 노력과 더불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로 이끌어보겠다는 지도자의 구상이 구체화 될 것으로 믿었다. ‘기회는 공평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세상의 초입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컸다. 그런데 5년 중 3년 반이 지났다. 기대는 지금 어디로 갔는가.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라는 말이 들린다. 애초 시대를 전환시킬 수 있는 실력은 있었던 것일까.

이제 걱정은 ‘대한민국을 지금과 같은 상태로 자식 세대에게 물려주게 되면 안 될텐데...’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회원국 중 15년 연속 자살율 1위 나라다. ‘나라다운 나라’가 아니다. 10대, 20대 젊은이들의 자살은 갈수록 늘고 있다. 특히 20대 여성자살율이 급증하고 있다.

설상가상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며 청년들은 취업난과 실업, 폐업, 생활고에 허덕인다. 아르바이트 자리마저 줄면서 하루 한 끼로 버티는 청년들이 많다고 한다. 이 사회는 돌도 씹어 먹고 쇠도 뜯어 먹을 한창 나이의 청년들을 굶기기 시작했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딛기도 전에 학자금 대출빚으로 마이너스 인생을 시작해야 하는 대학생 수가 46만명. 대학생 7명 중 1명 꼴이다. 혜택 받은 앞세대로서 도무지 미래세대 볼 면목이 없다.

보고 싶은 것만 보지 말고, 자식 키우는 부모 아닌가?

최악의 고용 한파는 젊은 세대에 더 가혹하다. 실업자 중 20~30대 비중이 절반이다. 올해 20대의 개인회생 신청건수는 모든 연령대 가운데 유일하게 늘었다. 전년보다 21%나 늘었다. 하루를 걱정하는 청년들에게 미래를 꿈꾸는 건 사치가 됐다. ‘아빠찬스’, ‘엄마찬스’는 경멸의 대상임과 동시에 ‘부러움’이다. ‘영끌’어서라도 부동산을 살 수 있는 2040세대는 대다수 청년들에게 딴세상 사람들 얘기다.

이 나라 청년들에게는 세상이 이미 빙하기다. 어떻게, 무엇으로 이 난국을 타개해 낼 것인가. 정작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치인들은 ‘화성’에 살고 있다. 생활 현실 속 국민들에게 공수처, 법무부·검찰, ‘노무현-오거돈-문재인 공항’은 코메디다. 생활인들에게는 별반 관심도 없는 사안들을 놓고 죽기살기로 치고받는 저 사람들은 ‘화성인’이다. 어느 영화 속 대사처럼 “대체 뭣이 중헌디.” 여의도 정치권은 사리분별 못하는 사람들의 세상처럼 보인다.

과거세대는 미래세대들을 이해하고 있는가. 아니 손톱만큼이라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기나 한가. 지금의 젊은 세대는 앞선 세대들과는 다르게 ‘밥’만으로 살지 않는다. 청소년과 청년들은 밥보다 ‘폼’을 더 중하게 여기는 세대들이다. 아날로그 세대가 아닌 디지털 세대들이다. X세대, Y세대가 아닌 Z세대, 밀레니엄 세대들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아닌 포노 사피엔스들이다.

두 아들에게 듣기 두려운 말이 있다. “아빠가 나에게 해준 게 뭐가 있어”라는 말이다. 청년세대가 부모, 조부모 세대에게 묻는다. “어른들이 우리에게 해준 게 뭐가 있어요.” 과거와 현재가 싸우면 미래를 잃는다. 제발 정치인들은 당신네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지 말고 청년들이 어떤 세상을 기대할지 잠자리에 들기 전 5분 정도라도 생각해보길 바란다. 당신들도 자식 키우는 부모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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