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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빈 칼럼] 디지털화폐의 도전(상)

[양영빈 칼럼] 디지털화폐의 도전(상)

기사승인 2020. 12. 13.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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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CBDC 시도하는 최초 국가, 우려도 적지 않아
중국의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약칭 디지털화폐)가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중국이 먼저 주도권을 잡고 시작하면서 각국의 중앙은행과 금융기관들도 이에 가세하는 형국이다. CBDC 경쟁에서 뒤처지게 되면 디지털 사회에서 중요한 기회를 놓치게 된다는 우려도 많다. 또 선두주자인 중국의 CBDC 추진에 모든 금융활동을 통제 및 감시하려는 빅브라더의 의도가 있다는 식의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시선도 만만치 않게 존재한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CBDC 구조 자체는 그다지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이미 오래 전에 존재했던 것이다. CBDC는 이미 사라진 레거시를 현대 사회에 맞게 복원하거나 여전히 남아 있는 레거시를 개선 또는 극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레거시의 복원과 극복은 또 다른 과제를 가져온다. 중앙은행이 그 동안 일반 상업은행에 대해 운용해 왔던 화폐정책의 변화가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서는 복잡한 기술적, 정치적인 의미보다는 CBDC의 경제적인 의미, 향후 과제 등에 대한 논의를 하고자 한다. 먼저 현대 사회의 금융시스템의 구조를 통해 사라진 레거시와 아직도 남아있는 레거시가 무엇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 오래된 미래, 백투더퓨쳐(Back to the Future)?

현대 사회의 금융 시스템은 모두 2단계로 이뤄져 있다. 하나는 일반 고객과 상업은행의 제1단계, 또 다른 하나는 상업은행과 중앙은행의 제2단계이다. 제1단계에서 일반 고객 사이의 거래는 은행을 매개로 해서 이뤄진다. 일반은행과 중앙은행은 제2단계를 이룬다. 이를 그림으로 직관적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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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의 금융 시스템./제공=상하이 델타익스체인지.
그림에서 A, B, C는 시중에서 영업 중에 있는 국민은행, 하나은행 등의 상업은행을 의미한다. 가에서 자까지는 일반적인 은행의 고객이다. CB는 물론 중앙은행(CB)이다. 만약 내가 편의점에서 물건을 구매하면 내 은행 계좌에서 편의점 주의 은행계좌로 구매대금이 이체된다. 이것은 그림에서 ‘가’와 ‘나’의 거래에 해당한다. 여기에서의 거래 매개수단은 현금이 아닌 은행계좌에 있는 예금이다.

제1단계에서의 화폐는 현금이 아닌 예금인 것이다. 만약 나와 편의점 주의 주거래은행이 각각 A, B로 다른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 내 은행(A) 계좌에서 편의점 주 은행(B) 계좌로 이체가 돼야 한다. 이럴 때는 반드시 중앙은행을 거쳐야 한다. 이럴 때 사용하는 화폐가 지급준비금이다. 그림에서 ‘가’와 ‘라’의 거래가 발생하는 경우이다. 일반 상업은행은 중앙은행에 계좌를 가지고 있는데 그 계좌에 예금돼 있는 것이 지급준비금이고 은행 사이의 거래는 지급준비금의 출납에 의해 이뤄진다.

양영빈
필자 양영빈/제공=상하이 델타익스체인지.
현대사회에서 일반 개인은 그림의 2단계에서만 머무르고 상업은행만 중앙은행에 계좌를 가지고 있어 1, 2단계 모두 참여하는데 역사를 보면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다. 중앙은행의 효시인 영국의 영란은행은 설립초기에 상업은행과 일반 개인 고객이 영란은행 계좌를 가지고 있었다. 이후에 관리 또는 기술적인 문제로 개인 고객의 계좌는 일반 상업은행이 떠 맡았는데 그것이 그림처럼 표현된 2단계로 이뤄진 현재의 은행구조이다.

CBDC의 구체적 형태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있다. 필자가 보기에 CBDC의 최종 형태는 개인들이 중앙은행에 계좌를 가지게 되는 형태가 유력하다고 본다. 그것은 오래된 미래에서 ‘오래된’, 바로 이 초기 중앙은행의 상태로 회귀함을 의미한다. 개인들이 중앙은행의 계좌를 가지는 것이다. 새로운 ‘미래’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현금마저 디지털화됨을 의미한다. 그림에서 1, 2단계는 이미 디지털화된 지 오래이다. 따라서 CBDC는 단순히 현금을 디지털화하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미래로의 귀환 또는 백투더퓨쳐라고 해야 할 것이다.

◇ CBDC와 지급준비금

개인이 중앙은행 계좌를 가지게 돼 디지털화된 현금을 중앙은행 계좌에 보관하면 어떤 변화가 있게 될까? 여기에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CBDC가 지급준비금 정책에 주는 영향을 따져보고자 한다. 은행에 현금을 예금하거나 다른 은행의 계좌로부터 이체를 받으면 이것은 은행의 지급준비금이 된다. 그런데 현금이 은행 밖에 존재하거나 은행 예금을 현금으로 인출하면 이것은 현금 통화가 된다. 이런 경우 중앙은행의 입장에서는 중앙은행 대차대조표의 부채 항목 간의 더하기 빼기 변화만 있게 돼 중앙은행이 경제에 공급하는 본원통화량은 변화가 없다. 그러나 은행의 입장은 좀 사정이 다르다. 은행계좌에 있는 예금을 인출해 CBDC로 바꾸면 은행의 지급준비금의 감소를 가져온다. CBDC의 도입은 필연적으로 은행 시스템이 전체적으로 보유한 지급준비금의 감소를 가져오게 된다.

따라서 정책당국이 은행과 관련해서 우선해야 할 과제는 기존 체제에 비해 줄어든 지급준비금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있다. 요즘에는 의미가 많이 퇴색되기는 했지만 지급준비율 정책은 기존과는 다르게 운용돼야 할 것이다. 은행에 대해 일정한 지급준비율을 요구하는 현행 제도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CBDC에 의해 초래된 지급준비금 감소는 중앙은행이 일차적으로 책임져야 하는데 그것은 은행에 지급준비금 대출을 하는 방식의 ‘소소한 일상화된 QE’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또 CBDC는 예금자 보험의 성격을 많이 바꾸게 될 것이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그 누구도 중앙은행이 발행한 화폐에 대해서는 최고의 신뢰를 보낼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에 예기치 못한 충격이 올 때 은행 시스템의 예금은 중앙은행 CDBC로 대거 이탈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런 특수한 상황에서는 은행예금을 전부 CBDC로 바꾸는--고전적인 뱅크런(Bank run)이 아닌--디지털런(Digital run)이 발생할 수도 있다. 정책적 대응을 미리 준비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지만 최소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정책당국의 세심한 준비가 필요하다.

필자 양영빈 : 상하이 델타익스체인지 이사. 한국인 최초 중국어 도서 ‘옵션실전 매매’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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