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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마음으로 좇는 ‘희망의 길’

[여행] 마음으로 좇는 ‘희망의 길’

기사승인 2020. 12. 22.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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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당진 '버그내 순례길'
여행/ 솔뫼성지
솔뫼성지는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가 태어난 곳이다. 솔뫼는 ‘소나무가 뫼를 이룬다’는 의미다. 빼곡한 소나무 사이로 김대건 신부의 동상이 보인다./ 한국관광공사 제공
곧 성탄절인데 달 뜨는 마음이 사치인 듯 느껴지니 일상이 꼬여도 단단히 꼬였다. 걷기 좋은 길 중에 ‘버그내 순례길’이 있다. 충남 당진 우강면의 솔뫼성지와 합덕읍의 신리성지를 잇는다. 눈치챘겠지만 한국 천주교의 치열했던 역사가 오롯이 밴 길이다. 그렇다고 천주교 신자만 찾지는 않는다. 마음 살피며 자신을 돌아보려는 이들도 걷는다. 신앙의 대상이 대수일까. 인내하고 용서하는 가운데 사랑과 평화를 갈구하는 것은 매한가지일 테니까. 순례자의 길은 결국 믿음과 희망의 길이다. 상황이 녹록지 않으니 이번에는 눈(目)으로 좇으며 마음을 여민다.

여행/ 솔뫼성지
솔뫼성지 ‘십자가의 길’. 소나무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걸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김성환 기자
당진은 조선시대 서산, 보령, 홍성, 예산 등과 내포(內浦)에 속했다. 당시 홍주목(현재 홍성 일대) 관할의 충남 서북부 지역이다. 지도를 놓고 보면 서해는 당진과 경기도 화성 사이를 비집고 내륙까지 깊숙이 침투한다. 이 물길을 따라 온갖 산물과 문물이 들어왔다. 천주교도 있었다. 한국 천주교는 내포에서 싹을 틔웠다. ‘버그내’는 당진 합덕읍의 구전지명 중 하나다. 조선시대에는 큰 장이 서기도 했고 장터를 오가는 민초들이 삶의 애환을 나누던 지역 문화의 거점 역할을 했다. 버그내 일대에서 많은 순교자가 나왔다.

여행/ 솔뫼성지
솔뫼성지에 복원된 김대건 신부의 생가/ 한국관광공사 제공
버그내 순례길은 솔뫼성지에서 시작해 당진 남쪽을 관통하는 삽교천을 따라 합덕제, 합덕성당, 합덕수리민속박물관, 합덕농촌테마공원, 합덕제중수비, 원시장·원시보 우물터, 무명순교자의 묘를 지나 신리성지까지 약 13km 이어진다. 경사가 거의 없어 걷기가 수월하다. 4시간여면 완주가 가능하다. 길은 풍경도 좋다. 2016년 아시아도시경관상을 수상할 정도로 일대가 정갈하게 꾸며졌다.

솔뫼성지, 합덕성당, 신리성지가 이 길의 주요 포인트다. 솔뫼성지는 한국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1821~1846)이 태어난 곳이다. 성지 안에는 그의 생가가 복원돼 있다. 1906년 당시 합덕성당의 크렘프 신부가 여러 증언을 토대로 고증한 자리에 들어섰다. 그는 1821년 솔뫼성지에서 출생했다. 1836년 16세의 나이에 마카오로 건너가 신학을 공부한 후 1845년 8월 중국 상하이에서 사제 서품을 받는다. 조선에 돌아와 선교 활동에 매진하다 체포돼 1846년 9월, 사제 서품을 받은 지 1년여 만에 26세의 나이로 한강변 새남터(서울 용산구 이촌동 둔치 부근)에서 순교했다. 내년이면 탄생 200주년이다. 유네스코는 이를 기념해 그를 ‘2021년 세계기념인물’로 선정했다. 솔뫼성지는 ‘한국의 베들레헴’이다. 김대건을 포함해 그의 아버지(김제준), 작은할아버지(김종한), 증조할아버지(김진후)까지 4대가 이곳에서 생활하다 순교했다. 1989년 요한 바오로 2세와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각각 이곳을 찾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여행/ 솔뫼성지
‘산(山)’자를 본뜬 솔뫼성지 정문/ 김성환 기자
여행/ 솔뫼성지
김대건 신부가 순교한 한강변 새남터를 본떠 지어진 야외 공연장 ‘솔뫼아레나’의 조각상/ 한국관광공사 제공
솔뫼성지는 울창한 소나무가 만드는 싱싱한 풍경이 좋다. 솔뫼는 ‘소나무가 뫼를 이룬다’는 의미다. 솔뫼성지의 정문은 ‘뫼 산(山)’자를 본떴다. 소나무 사이로 ‘십자가의 길’이 나 있다. 마음 살피며 걷기 괜찮다. 예수가 사형선고를 받은 후 십자가에 못 박히기까지 과정을 조각이나 그림으로 보여준다. 매서운 겨울 한기가 푸른 소나무 앞에서는 순해진 듯 느껴진다. 지난 여름날의 맑은 솔향기도 아직 가시지 않았다. ‘솔뫼아레나’라는 야외 공연장도 있다. 고대 로마의 원형극장같이 생겼는데 김대건이 순교한 모래사장을 본떠 꾸며졌단다. 여기에 있는 12사도 조각상과 벽화는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솔뫼성지와 합덕성당 사이에 합덕제가 있다. 여기서는 숨통이 조금 트인다. 합덕제는 합덕평야에 농업용수를 대던 저수지였다. 높이 7~8m의 제방은 길이가 약 1.7km에 이른다. 특히 곡선으로 이뤄진 것이 특이한데 이 때문에 2017년 국제관개배수위원회(ICID)가 선정하는 세계관개시설물 유산으로 등재됐다. 합덕제 중수비는 제방 보수 기록을 적어둔 비석이다.

여행/ 합덕성당
내포지역 첫 성당인 합덕성당/ 김성환 기자
여행/ 신리성지
제5대 조선교구장 다블뤼 주교의 발자취가 남은 ‘신리성지’/ 한국관광공사 제공
합덕성당은 내포에 들어선 첫 번째 성당이다. 1890년 양촌성당(예산)으로 시작해 1899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지며 합덕성당이 됐다. 건물은 1929년에 새로 지어진 것이다. 정갈한 마당에 붉은 벽돌로 지어진 고딕양식의 건물이 예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사진촬영 배경으로 입소문을 타기도 했다.

신리성지는 제5대 조선교구장 다블뤼 주교가 거처하던 곳이다. 그의 거처가 복원됐고 기념관도 들어섰다. 너른 들판에선 역시 숨통이 트인다. 다블뤼 주교는 김대건과 함께 조선으로 들어와 21년 동안 선교활동에 매진하다 순교했다. 그는 천주교 서적을 저술하고 한글로 번역했다. 조선 천주교사와 순교자들의 행적도 수집했다. 이 자료들이 한국 천주교회사의 기초가 됐다. 103위 성인 시성에도 기여했다. 신리마을은 조선의 카타콤바(로마시대 비밀교회)였다. 조선에서 가장 큰 교우 마을로 400여 명의 주민들이 모두 신자였단다.

솔뫼성지, 합덕성당, 신리성지는 각각 차로 약 5분 거리다. 바람이 매섭다면 자동차로 돌아봐도 좋다. 이 외에 원시장·원시보 우물터는 내포 출신 첫 순교자인 원시장과 원시보가 마셔온 우물이 있던 자리다. 무명 순교자의 묘는 내포의 순교자, 교우들의 묘가 발굴된 자리다.

여행/ 왜목마을
해돋이와 해넘이를 모두 볼 수 있는 왜목마을/ 한국관광공사 제공
석문면의 왜목마을은 버그내 순례길과 연계할만하다. 동쪽으로 튀어나온 지형 때문에 서해안에 위치했지만 해돋이와 해넘이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이다. 해안을 따라 마을 전체를 에두르는 탐방로가 조성돼 있다. 걷다 보면 어수선한 일상을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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