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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대규모 공공 투자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공공임대주택도 공급하자

[칼럼]대규모 공공 투자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공공임대주택도 공급하자

기사승인 2021. 07. 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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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운 울산과학기술원 연구원(경제학 박사)
샤를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나폴레옹 3세)는 “역사는 비극으로 한 번, 그리고 소극으로 다시 한 번 반복된다”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유명한 글의 주인공이다. 꽤 유명한 사람이지만 실제 모습은 유명세보다는 덜 알려져 있는 것 같다.

루이 나폴레옹은 유럽을 공포에 떨게 했던 나폴레옹 1세의 조카로, 금융이 경제성장과 노동자를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를 몸소 실천했던 보기 드문 정치 권력자였다.

루이가 하고 싶었던 일은 “새로운 생산양식의 창출, 부의 균형 확립과 노동을 활성화하고 조직화함으로써 빈곤을 없애고 우리의 문명이 초래한 폐해를 없애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그러나 베르트낭 질의 <19세기 프랑스 은행>에 따르면 당시는 “프랑스에서 대규모 사업을 조직하려 해도 자금을 모을 방법이 없고 또 금융을 틀어쥐고 있는 세력이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있는 상황, 금융계를 재편성하려 해도 그것을 추진할 만한 힘을 가진 중심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하려고만 한다면 못 할 것도 없었다. 각고의 노력 끝에 루이 나폴레옹과 은행가 페레르 형제는 ‘크레디 모빌리에’라는 이름의 투자전문국책은행을 설립했다. 크레디 모빌리에는 곧바로 자신들의 이상을 실현시킬 수 있는 작업에 착수해 1852년 파리 로슈아르 58번지에 인류 최초의 노동자계급을 위한 공동주택인 ‘시테 나폴레옹(Cite Napoleon)’을 만들었다. 청결하고 환기가 잘되는 200세대용 자가 임대주택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단지로 공용시설도 많이 갖추어져 있었다.

복지도 좋지만 경제 자체가 발전해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기술과 투자자가 만나야 했고, 생산과 판매를 위해서는 국토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운송망이 필요했다. 둘 다 엄청난 자금이 들어가는 일이다. 국가의 경제 발전을 실현시킬 수 있는 장기 신용대출이 긴급하게 요구되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당시 유럽 금융계의 거두인 로스차일드나 오트 방크(Haute banque·고도금융)들은 이러한 일에 나서지 않았다. 정부의 관리들도 이런 방식으로 예산을 수립하지도 않았고 지출할 생각도 없었다.

루이 나폴레옹과 크레디 모빌리에가 한 일이 바로 이것이다. 철도를 건설하기 위해 자금을 모았고 예산을 수립하고 지출하였으며, 파리 국제박람회를 개최해 세계의 첨단기술과 투자자를 만나게 했다.

크레디 모빌리에의 설립 이념은 산업 부흥, 일자리 창출 그리고 노동자·시민의 복지에 봉사하는 것이었다. 루이 나폴레옹이 만든 것은 실로 거대한 업적이지만 그것은 예산과 재정 지출에 대한 작은 아이디어에서 온 것이다.

루이 나폴레옹이 실각 후 떠돌이 생활 중 감옥에서 집필한 <빈곤의 절멸>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반대로 지금 논의되고 있는 예산이 새로운 생산양식의 창출이나 부의 균형 확립에 쓰인다면, 또 노동을 활성화하고 조직화함으로써 빈곤을 없애고 우리의 문명이 초래한 폐해를 없애는 데 사용된다면, 가장 ‘적절한 금융활동’의 사례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노동자 계급의 구제를 목적으로 하는 모든 시스템을 지탱해야 하는 최초의 지점은 예산배분에서 찾아야만 한다.”

물론 루이 나폴레옹의 생각을 현실로 옮기려는 노력에는 엄청난 정치적 투쟁이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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