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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수묵화 같은 풍경...산정호수 ‘우중산책’

[여행] 수묵화 같은 풍경...산정호수 ‘우중산책’

기사승인 2021. 07. 13.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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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산정호수
산정호수에 비 내리는 풍경이 운치가 있다. 수변산책로에서 듣는 빗방울 소리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김성환 기자
소나기 오락가락하는 계절이다. 비 오는 풍경에 끌릴 때가 있다. ‘후두둑~’ 빗방울 소리가 달뜬 마음을 가라앉히기도 한다. 산정호수의 우중산책(雨中散策)은 몸과 마음이 상쾌해지는 여정이다.

산정호수는 경기도 포천 영북면 명성산 남쪽 자락에 있다. 아늑한 호수다. 산정(山井)은 ‘산 속의 우물’이라는 뜻이다. 사위가 봉우리다. 명성산, 망무봉, 망봉산이 호수를 에둘렀다. 산자락에 ‘폭’ 안긴 형국이라 사방이 트인 해변이나 들판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번잡한 일상에서 벗어난 느낌이 확실하게 든다. 답답하지는 않다. 호수가 작지 않다. 둘레가 4km에 이른다. 고립이 주는 공포감보다 싱싱한 자연에서 비롯되는 평온함이 더 크게 다가오는 이유다.

여행/ 산정호수
비가 그친 산정호수. 티끌이 씻겨 풍경이 맑다./ 김성환 기자
매끈한 수면에 반영되는 풍경은 산정호수의 백미로 꼽힌다. 바람이 잔잔할 때 하늘과 구름, 산봉우리와 우거진 소나무가 데칼코마니처럼 위아래로 대칭을 이룬다. 이게 참 화사하다. 비 오는 날에는 그윽한 멋이 있다. 화창한 날이 수채화라면 궂은 날씨에는 여운 짙은 수묵화가 펼쳐진다. 구름이 산허리에 걸렸다가 능선을 타고 느닷없이 용오름을 친다. 수면에서 물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오를 때도 있다. 비가 갠 후 티끌이 씻긴 풍경은 어찌나 맑은지 여운이 오래간다. 이런 경치는 기억에서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비 오는 날이 괜찮은 점은 하나 더 있다. 인적이 드물어 인파에 휩쓸릴까 애를 태우지 않아도 된다.

여행/ 산정호수
산정호수의 ‘붕붕’ 보트/ 김성환 기자
여행/ 산정호수
산정호수 곳곳에는 예술작품들이 설치됐다./ 김성환 기자
아늑한 분위기도 분위기지만 오래된 것이 풍기는 편안함이 좋다. 산정호수는 일제강점기였던 1925년 주변의 농경지에 공급할 물을 확보하기 위해 인근 광덕산의 물길을 막아 만든 저수지다. 1977년에 국민관광지로 지정돼 전국적 관광지로 이름을 알린 지가 40여 년이 흘렀다. ‘구닥다리’로 치부할 수 있지만 오래된 관광지의 소환이 반가운 이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당시의 시간과 추억이 녹록지 않은 삶을 버티게 할 힘이 된다. 호수에 둥둥 떠다니던 ‘오리배’는 지금도 있다. 노를 저어야 하는 ‘노보트’도 보인다. 달라진 것은 자동차 모양의 전동식 ‘붕붕’ 보트의 등장이다. 구동방식이 발전했다. 힘들여 페달을 밟는 대신 운전대 옆에 장착된 손잡이를 오른쪽으로 살짝 돌리기만하면 전진한다. 그래도 산천이 유구하니 청정한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일찌감치 전국구 관광지로 알려진 탓에 부작용이 조금 있었다. 두서없이 생겨난 음식점과 놀이시설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산정호수”라면 손사레를 치는 이들의 기억이 대체로 이렇다. 다행히 근래에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산정호수 둘레길’이 정비되고 야외조각공원도 만들어졌다. 호수 주변 곳곳에 예술작품도 설치됐다. 작품 중에는 낯익은 것도 있다. 호수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의 모습을 장면, 장면 구현한 조형물이다. 경기도 파주 임진각평화누리에도 비슷한 것이 있다. 태평양 이스터섬 모아이를 닮았다는 그 작품이 맞다. 야외정원도 생겼다. 요즘에는 형형색색의 맨드라미 꽃이 한가득이다. 질서가 잡히면서 옛멋도 살아나는 중이다. 사람들은 정원과 조형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산책로를 걸으며 한나절을 즐긴다.

여행/ 산정호수
산정호수 수변산책로/ 김성환 기자
여행/ 산정호수
산정호수 둘레길 곳곳에 설치된 조형물/ 김성환 기자
산정호수 둘레길은 어떨까. 전체 약 4km의 구간 중 1km 길이의 수변산책로가 인기다. 수면 위에 나무 덱을 설치해 만든 구간인데 호수를 바로 옆에서 구경하며 걸을 수 있다. 바람에 일렁이는 물결 소리가 코앞에서 들린다. 비 오는 날도 좋다. 빗방울이 잔잔한 수면 위에 만드는 파장이 운치가 있다. 나머지 구간에선 소나무가 볼만하다. 호수로 늘어진 가지가 ‘길 위의 지붕’이 된다. 한낮 뙤약볕, 갑작스런 소나기도 너끈히 피할 수 있을 듯 보인다. 산정호수 주변에는 유독 소나무가 많다. 하나하나 자태가 예사롭지 않다. 싱싱한 숲을 만끽하라고 ‘소나무숲길’도 조성돼 있다.

아기자기한 볼거리도 기분을 즐겁게 만든다. 야생화를 테마로 한 작은 정원에선 노란 매미꽃, 파란 산수국 등을 볼 수 있다. ‘오길 잘했어’ 같은 문구로 만든 조형물은 포토존으로 손색이 없다. 나무를 깎아 만든 토기 인형들이 소나무 가지에 앉은 것이 앙증맞다.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의 동상도 만난다. 궁예는 왕건과 전쟁에서 패한 후 명성산으로 숨어들었단다. 당시의 과정을 설명하는 그림들이 중간중간 나타난다. 숨 고르며 쉬어갈 전망 좋은 카페도 보인다.

여행/ 화적연
한탄강 여울과 현무암 바위가 어우러진 화적연/ 김성환 기자
산정호수 가는 길에 화적연과 비둘기낭 폭포를 여정에 추가해도 좋다. 둘 다 산정호수가 위치한 영북면에 있는 데다 우중산책에도 어울린다. 화적연은 거대한 화강함 바위와 소(沼)가 어우러진 경승지다. 높이 13m의 바위가 한탄강 여울 복판에 자리 잡았다. 이 바위가 볏 짚단을 쌓아 올린 것처럼 보여 ‘화적(禾積)’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화적연은 예부터 알아줬다. ‘영평8경’ 중 으뜸으로 꼽혔다. 영평은 포천의 옛 이름. 조선시대에 한양과 함경도를 연결하는 최단거리 도로가 영평을 지났는데 이 길을 따라 선비들이 금강산 유람을 떠났다. 이때 영평의 빼어난 경승지에 들러 풍류를 즐겼다. 진경산수화로 유명한 겸재 정선은 금강산 가는 길의 명승을 그린 서화집 ‘해악전신첩’ 속에 화적연을 그려 넣었고 조선후기 영의정에 오른 미수 허목도 금강산 유람기에 ‘화적연기’를 남겼다. 조선후기의 학자인 삼연 김창흡, 항일 의병장 출신의 면암 최익현 등도 화적연을 예찬한 시문을 남겼다.

거대한 바위는 전설도 한자락 걸쳤다. 옛날에 3년간 가뭄이 들자 어느 농부가 화적연을 찾아 “하늘도 무심하고 용(龍)도 3년 동안 낮잠만 자나 보다”며 탄식했다. 물이 왈칵 뒤집히더니 용이 승천했고 이날 밤부터 비가 내려 풍년이 들었단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지금도 화적연 일대를 신성하게 여긴단다. 전망대의 울창한 느티나무 아래에 앉아 보는 풍경이 좋다.

여행/ 비둘기낭 폭포
비둘기낭 폭포/ 김성환 기자
비둘기낭 폭포는 비 온 후가 장관이다. 비둘기낭은 새의 둥지를 닮은 현무암 협곡이다. 수십미터 높이의 주상절리 아래로 소(沼)와 협곡이 이어진다. 풍경이 신비로워 한때 드라마에도 자주 등장했다. 원래 사진 촬영 좋아하고, 천연한 자연을 탐하던 사람들이 은밀하게 찾던 곳이었다. 지난해 유네스코가 선정한 한탄강 세계지질공원에 포함되며 주변이 말끔히 정비됐다. 비가 온 후에는 주상절리를 타고 쏟아지는 폭포가 볼만하다. 비둘기낭 폭포 인근에 ‘포천 한탕강 하늘다리’도 생겼다. 지상에서 높이 50m에 설치된 200m 길이의 출렁다리다. 한탄강 협곡을 가로지르는데 다리 중간에 투명 유리바닥 구간에서 협곡을 발 아래로 조망할 수 있다. 화창한 날이든, 궂은 날이든 본전은 건질 수 있는 포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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