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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의 자연 에세이] 소나기, 무더위를 달래주는 세찬 비

[이효성의 자연 에세이] 소나기, 무더위를 달래주는 세찬 비

기사승인 2021. 07. 18.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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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주필
이효성의 자연 에세이 최종 컷
요즘과 같은 무더운 여름날에, 특히 오후에, 커다란 뇌성벽력과 함께 소나기가 세차게 쏟아지는 경우가 많다. 소나기가 내리는 동안은 잠시 더위가 가시기도 하지만 소나기가 그치면 다시 태양이 작열하며 언제 그랬나 싶게 다시 무더워진다. 이처럼 무더운 한여름을 특징짓는 물상 가운데 하나가 소나기다. 소나기는 일부 지역에서 느닷없이 구름이 짙어져서 굵은 빗방울이 1~2시간의 짧은 시간 동안 세차고 시끄럽게 내리다가 곧 멈추는 비를 일컫는다.

국어사전에도 소나기는 “갑자기 세차게 쏟아지다 곧 그치는 비”로 되어 있다. 소나기를 한자어로는 빨리 달린다는 뜻을 가진 취(驟)자를 써서 취우(驟雨)라고 한다. 이처럼 소나기는 갑자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한동안 내리쏟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멎어버리는 특징을 가진 비인 것이다. 그래서 “소나기 종일 오나”라는 속담이 있다. 문자 그대로는 소나기는 종일 오지 못한다는 뜻인데, 비유적으로는 지금 한창 성한 것 같은 어떤 현상이 얼마 못 가서 곧 사그라지거나 멎어 버리게 된다는 뜻이다. 소나기는 그런 특성을 가진 비인 것이다.

“오뉴월 소나기는 쇠등을 두고 다툰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소나기는 매우 국지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이 속담은 공간적 국지성을 일컫고 있지만 시간적으로도 국지적이다. 소나기는 보통은 오후 늦게 내리고 번개와 천둥을 동반할 때가 많고 더러는 강풍을 동반하기도 하지만 잠시 오다 금세 그친다. 소나기는 한랭전선이 통과할 때 내리는 경우가 있어서 여름 이외의 계절에도 가끔 내린다. 황순원의 저 유명한 단편 소설 <소나기>는 ‘초가을’에 개울가에서 알게 된 시골 소년과 도시에서 온 소녀가 소나기로 겪게 되는 가슴 아린 이야기다.

하지만 소나기는 주로 여름철에 자주 있는 현상으로, 맑고 무더운 날에 뭉게구름이 발달하여 된 쌘비구름 또는 소나기구름[한자어로 적란운(積亂雲)]이 통과할 때 내리는 것이 상례다. 이런 조건 탓으로 여름날에 소나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흔히 있을 만한 일이니 조금도 놀랄 것이 없다는 뜻으로 “여름 하늘에 소낙비”라는 속담도 있다. 소나기는 여름의 전유물은 아니지만 여름에 주로 발생하는 자연 현상인 것이다.

낮에 소나기가 쏟아지는 경우 그 직전에 대개 온 하늘에 흔히 먹구름으로 불리는 매지구름이 갑자기 끼어 태양이 가려지면서 사위가 어둑어둑해진다. 환하던 대낮이 졸지에 어두워지면서 서늘한 빗줄기가 쏟아지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청량감을 주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당황스러울 뿐만 아니라 무섭기조차 하다. 게다가, 소나기가 내릴 때 흔히 그렇듯이, 번개로 하늘이 갈라지고 천둥으로 지축이 흔들리면 공포감은 더욱더 커지기 마련이다. 세상물정을 모르는 어린아이들에게는 더욱더 그럴 것이다. 개도 천둥이 치면 공포에 떤다.

이처럼 소나기는 사위에 어둠을 드리우고 아주 세차게 쏟아지며 사람들을 허둥대게 하다가도, 금세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뚝 그쳐버리곤 한다. 그리고 소나기가 그치기 무섭게 어둑하던 하늘이 다시 환하게 열리면서 소나기에 맑아지고 산뜻해진 대기가 청량감을 풍기고 갠 하늘 밑으로 먼 산이 또렷이 자태를 드러낸다. 그와 함께 뜨거운 열기로 시들시들하던 식물의 잎들이 다시 생기를 얻어 꼿꼿해진다. 소나기가 그치면서 아주 신선하고 생기 있는 새로운 풍광이 펼쳐지는 것이다. 소나기는 여름 풍경을 재설정(reset)하는 셈이다.

소나기는 그 갑작스러움과 세참을 특징으로 하고 이 특징으로 많은 풍경과 장면을 연출한다. 갑자기 주위를 어둡게 만들고, 우레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함석지붕에 떨어지면 우당탕탕 굉음을 내고, 소나기를 피하거나 비설거지를 하려고 사람들을 허둥대게 하고, 피하지 못한 이들을 흠뻑 젖게 하고, 길을 물로 질펀하게 만들고, 도랑이나 내를 범람하게 한다. 그러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뚝 그치면 세상은 전혀 새로운 모습이 된다. 사람들은 소나기로 골탕을 먹기도 하지만 그 덕에 산뜻하고 새로운 풍광을 즐기며 무더위와 지루함을 잊게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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