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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범 칼럼] 우리의 안보는 궁극적으로 우리의 책임

[전인범 칼럼] 우리의 안보는 궁극적으로 우리의 책임

기사승인 2021. 08. 23.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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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전 유엔사 군정위 수석대표
전 특전사령관·전 유엔사 군정위 수석대표
1975년 4월 30일 월남(지금의 베트남)의 수도 사이공이 월맹 정규군에 함락됐다. 고등학생이던 필자는 지금도 주월미국대사관 옥상에서 탈출하던 미군 헬기를 기억한다. 그 뒤 캄보디아가 공산화되고 크메르루즈의 잔학행위는 킬링필드로 우리가 기억하고 있다. 월남에서는 대량학살은 없었지만 공산주의를 피해 월남을 탈출하던 보트 피플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인도차이나 지역에 관여했고 월남에는 1955년부터 분쟁에 휘말리다가 1973년에 평화협정을 맺고 ‘명예롭게’ 철수했다. 그 후 월맹 정규군이 평화협정을 어기고 군사력을 증강했지만 미국은 모른 체했다. 월맹군은 1974년에 공세를 시작해 4개월 만에 월남군을 괴멸시켰다. 월남군은 당시 최첨단 무기인 헬기를 1000대나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이를 막지 못했다.

지난 트럼프 행정부는 2020년 2월 탈레반과 미군철수를 합의하고 2021년 5월까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키로 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막대한 군 장비와 돈으로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을 무장시켰지만 소용없었다. 탈레반은 합의 후 거점 점령을 시작으로 군사작전을 준비했고 공세 개시 후 1주일 만에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괴멸시켜 9월 11일까지 ‘체계적으로’ 철수하려던 미국에게 단단히 창피를 주었다.

아프가니스탄과 베트남 패망의 공통점은 정치권의 부정부패다. 월남은 패망 직전 일선부대에서 포병사격이나 헬기지원을 요청하면 돈을 얼마 줄 거냐고 물었다. 아프가니스탄의 경우 미국이 지원한 무기와 탄약이 암시장으로 흘러들어갔고 일선지휘관들은 유령군인을 만들어 중앙정부로부터 봉급을 갈취했다. 지원에 의존했던 패망한 나라의 군대가 보인 공통 현상이었다.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고 6·25전쟁을 겪은 우리로서는 베트남과 아프가니스탄의 패망이 남의 일로 보이지 않는다. 그래선지 한편에서는 주한미군이 떠나지 않도록 미국의 모든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고 말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미중관계와 한국의 지정학적 중요성, 세계 10위의 경제력과 세계 6위의 군사력이란 위상을 가진 대한민국이기 때문에 미군이 철수해도 문제없다고 말한다. 둘 다 동의하지 않는 견해다. 특히 후자의 주장은 대단히 위험하다.

미국인 상당수가 미군을 해외에 주둔시키려 하지 않는다. 주한미군이 너무 오래 한국에 주둔했다고 믿는 미국인들도 많다. 이런 사람들은 한국에서 미군을 철수할 이유만 찾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지금처럼 미국을 약 올리는 일은 삼가야한다. 한국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한국의 민주화과정을 지켜본 미국인들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는 무엇보다 부정부패 없는 깨끗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매진해야 한다. 미국에게 잘해 주기 전에, 우리 국민에게 잘해서 부정부패 없는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 때 미국과 우방국들도 우리를 도와줄 마음을 갖게 된다.

미군은 세계 최강의 군대지만 미국만 믿어서는 안 된다. 지금 대한민국 국군은 여러 진통을 겪고 있지만 이 과정만 잘 거치면 강한 군대가 될 수 있다. 그 성공의 열쇠는 국민이 쥐고 있다. 군의 잘못을 질타해도 애정으로 응원도 해야 한다. 노력하는 자식을 매질만 해선 안 된다.

또한 한미동맹을 근간으로 한 대한민국의 방위체제를 유지하면서 균형 있는 군대 전력의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공군은 F35 스텔스기를 운용하면서 육군은 무전이 잘 안돼서야 어떻게 군사력 세계 6위라고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베트남이나 아프가니스탄과 다르다. 그러나 미군이 영원히 한국에 주둔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우리의 안보는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 안보에 대해 막연한 걱정만 하지 말고 애정 어린 관심으로 우리 군을 지원하고 사기를 진작시켜야 한다. 국방은 생사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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