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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투 유머펀치] 노익장과 노욕

[아투 유머펀치] 노익장과 노욕

기사승인 2021. 04. 25.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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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투유머펀치

이른바 ‘식(食)’ 자 돌림 유머가 한시절을 풍미한 적이 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아무도 이 와이(Y)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공감 때문인지 남성들의 술자리에서 자조적인 웃음을 유발하는 단골 메뉴가 되기도 했다. 오랜 직장생활에서 은퇴를 하고도 늘 공사(公私)가 다망하여 삼시(三時)세끼 식사를 밖에서 해결하는 능력 있는 남자에게는 ‘영식(零食)선생’이라는 존칭이 따라붙었다.

한 끼의 식사만 아내의 손을 빌리는 사람은 ‘일식(一食)씨’라 하여 최소한의 자존을 지키는 셈이었다. 그런데 두 끼를 집에서 해결해야 하는 사람은 ‘이식(二食)군’으로 격하됐다. 문제는 세 끼의 식사 모두 아내의 상차림에 의존해야 하는 사람들, 이런 남성들은 여지없이 ‘삼식(三食)새끼’로 추락하고 말았다. 후한(後漢) 광무제 때 대장군 마원은 환갑이 넘은 나이에 반란군 진압과 흉노 토벌의 전공을 세웠다.

그리고 ‘대장부는 어려울수록 굳세어야 하고 늙을수록 건장해야 한다(窮當益堅 老當益壯)’는 말을 남겼다. ‘노익장(老益壯)’이란 고사성어의 유래이다. ‘영식선생’은 ‘노익장’과 상통한다. 평생 책이나 들여다보고 낚시질만 일삼던 강태공이 주(周)나라 무왕을 도와 천하를 평정한 것은 칠십이 넘어서였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아들 장수왕은 우리 역사상 최대 규모의 영토를 이루고 98살에 눈을 감았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가문을 멸망시키고 에도막부를 열면서 일본 전국시대의 마지막 패자가 되었을 때도 나이 칠십이 넘었다. 역사상 노익장들이다. 하지만 노익장은 노욕(老慾)과 양날의 검이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아들(고종)을 왕위에 올리면서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를 물리치고 한때 국리민복의 과감한 개혁정치를 펼쳤다. 하지만 고종의 친정(親政)으로 권좌에서 밀려난 뒤가 문제였다.

권력에 집착하며 끊임없이 정계 복귀를 꾀하다가 개인과 국가의 명운에 재를 뿌리고 말았다. 여당과 야당, 그리고 보수와 진보를 넘나들며 이른바 ‘선거의 귀재’ ‘킹메이커’의 역할을 자처해온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행보를 보는 국민의 시선이 마뜩잖다. 재·보궐 선거 후 기립박수를 받고 떠난 ‘친정’에 뒤돌아서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는 것은 노익장의 여력일까. 아니면 노욕의 연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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