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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 총리는 당선 직후 브렉시트 공식 로드맵을 발표하며 보수당·노동당 간 입장차를 좁히기 위해 꾸준히 협상을 진행해 왔지만 합의안이 네 차례 부결되는 진통을 겪었다. 사실 브렉시트는 오래 전부터 예견된 일이다. 영국은 초기 유럽 공동체 당시부터 프랑스·독일·이탈리아와 겉돌았다. 2차 세계대전 전후 복구에 골골대던 다른 유럽 국가와는 달리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50년대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유럽경제공동체(EEC) 등 유럽 공동체 내에서 우위를 점할 수 없다고 판단한 영국은 이들과 거리를 둔다. 이후 유로화 도입은 물론 EU 내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쉥겐조약 가입도 거부한다. 마거릿 대처 수상은 지난 1988년 공식 석상에서 “공동체는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다”고 말했다. 오래 전부터 영국은 국가 간 통합에 있어 경제적 필요 이상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사고가 지배적이었던 것이다.
영국은 EU가 제공하는 단일시장, 관세동맹 등의 혜택보다 EU에 지불해야 하는 7조원의 분담금(2017년 기준)과 복지 지출을 늘리는 이민자들이 탐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프랑스와 독일에 끌려다니는 모양새가 되면서 분담금에 비해 받는 대우가 형편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영국의 선택, 즉 브렉시트에 대한 시비(是非)는 무의미하다. 이해 당사자인 영국민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다만 토론과 타협을 기본으로 하는 내각제를 선택해 전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대의민주주의 시스템을 갖췄다는 영국의 오늘은 초라해 보인다. 자부심을 가질 정도의 시스템도 결국 당략이나 리더십 부재를 넘어서지 못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