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힝야족은 당초 영국령 인도의 뱅골만 일대에 거주했다. 다수가 이슬람 교도였던 이들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영국의 필요에 의해 미얀마로 이주됐다. 이유는 식민통치의 원활화. 미얀마는 1886년 영국과의 치열한 전쟁 끝에 패해 식민지가 되기 전까지 무려 60여년 동안 싸웠다. 식민통치 하에서도 저항했다. 이에 영국은 대도시 및 주요 농경지에서 미얀마의 다수 민족인 버마족을 내쫓고 그 자리에 로힝야족을 채워넣었다. 버마족이 로힝야족을 영국과 동일시하며 미워하게 된 배경이다.
로힝야족에 대한 버마족의 분노가 극에 달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미얀마로 진격해 들어오자 버마족 독립군 세력은 일본과 연합해 영국과 싸웠고, 영국은 로힝야족을 무장시켜 버마족을 학살했다. 영국은 1948년 미얀마 독립 당시 대규모 복수극을 예상했으면서도 로힝야족에 대한 조치없어 떠나 버렸다. 미얀마 정부는 로힝야족 100만명을 영국이 데려가든 현재의 방글라데시인 뱅골만 일대로 이주시키든 책임을 지라고 했지만 아무런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 현재의 로힝야족 사태는 결국 영국 식민통치의 잔재인 셈.
23일 마무리된 제34회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정상회의에서도 로힝야족 문제가 의제로 다뤄졌다. 태국 방콕에서 열린 이번 정상회의 성명 초안에는 “로힝야 난민의 귀환을 추진하기 위해 아세안의 역할을 보다 눈에 보이는 형태로 보여줄 것”이라는 표현이 포함됐다. 미얀마의 평화와 안전을 지원하겠다는 내용도 있다. 반면 인권단체는 미얀마의 로힝야족 학살 행위에 대해서는 언급을 삼가고 난민 귀환 문제만 해결하려는 아세안 국가들에 경고했다. 역사는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반복된다. 로힝야족의 평화로운 귀환을 위해서는 본질적 해결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 물론 백년이 넘은 민족간 갈등을 한 번에 풀 수는 없다. 다만 아세안 국가들은 빠른 난민 귀환보다는 갈등 해결 지원과 로힝야족 난민에 대한 재(再)학살 위험 방지에 먼저 힘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