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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법과 정의, 그리고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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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4. 04. 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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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호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영국과 미국의 법률 및 법학(1884년)'을 저술한 법관 딜런은 "선험적으로 법을 정의하는 것이 쉽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엄청난 실수"라고 하였다. 그만큼 법을 한마디로 定義(정의)내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법은 正義(정의)를 실현하는 가장 유효한 수단이라는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법을 의미하는 영어 'law'는 'lagu'에서 온 것으로 이는 "어떤 분야에서 사람들이 따라야 할 규칙"을 뜻하는 용어였다. 이처럼 서양에서 '법'이란 사람들과 공동체가 지켜야 할 기준을 확립한 규칙이나 규정을 말하는 것이어서, 입법부인 의회를 행정부에 앞세워 국가의 근본적이고 강력한 권위를 인정하는 배경이었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법을 제정하여 공동체의 안정과 발전을 이끌 일차적 책임을 부여한 까닭이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법전 중 하나로 알려진 함무라비 법전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알려진 '탈리오법칙'을 담고 있다. 이는 함무라비 법전의 야만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무차별적으로 이뤄지던 복수를 제한하고 피해자가 입은 피해와 동등한 수준의 보복만 가능하도록 제약하였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아니된다. 사형에 처할 때도 화형이나 능지형 같이 필요 이상의 고통을 주지 않도록 한 점도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이다. 결국 함무라비 법전은 보복이라는 악순환을 끊어 공동체 소멸을 막는 기능을 했었고, 죄형법정주의를 확립해서 법치주의의 기초를 놓는 역할을 했었다. 이를 통해 당시의 정의와 공정이 어떠한 것인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한자어로는 '法(법 법)'이 사용되는데, 이는 '水(물 수)'와 '去(갈 거)'를 조합한 글자이다. 한자가 뜻글자임을 고려하면,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이 자연의 이치임에 착안한 글자임을 추론할 수 있다.

원래의 한자는 '法'과 해태를 의미하는 '치'를 합성한 것이다. 해태는 중국 전설 속에 등장하는 영물로, 옳고 그름과 선악을 판단한다는 동물이다. 물의 자연적 흐름이 갖는 항상성에 더해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는 의미가 보태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화문화권에서도 '법'이란 글자는 공정과 정의를 뜻한다. 공자가 법의 한계성을 직설한 것도 그러한 의미로 이해할 수 있고, 법 보다 덕을 강조한 맹자에게서도 그런 취지를 엿볼 수 있다. 공자는 사회적 문제해결의 실마리로 인과 예를 강조하였고, 법적 분쟁이 없는 사회를 정치적 이상으로 삼았다. 법은 인간이 사회생활에서 지켜야 할 최소한이자 의무일 뿐, 법을 절대화하지 않은 것이다. 또한 정치는 바른 것(政者正也)이라 하였는데, 그가 말하는 正(바를 정) 또한 공정과 정의로 해석함에 무리가 없을 것이다.
공동체가 커지고 사회가 발전함으로써 법의 내용과 범위가 크게 늘어났지만, 정의와 공정이 다른 것으로 대체되지 않았고 그 본질 또한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플라톤의 말처럼 착한 사람들은 법이 없어도 책임감 있게 행동하지만, 나쁜 사람들은 법망을 피해가는 경우가 늘 수 있다. 키케로의 말처럼 법이 많아질수록 정의가 줄어드는 역설적 상황에 부닥치게 되는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입법부의 역할은 지대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입법부를 지칭하는 용어로 '국회'를 사용하고 있다. '논하는 것' 보다 '모이는 것'에 방점을 둔 것으로 여겨질 수 있음에도 말이다.

명칭이 본질을 바꾸지 않겠지만, 이름이라도 바꿔서 공정과 정의를 법에 담는 논하는 정치가 복원되고 대립과 갈등이 논의로 극복되는 장으로 바뀐다면 많은 이들이 공감하지 않을까. 군자는 두루두루 소통하되 끼리끼리 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는데, 의원들이 사자성어를 말하는 대신 두루두루 논하는 군자로 거듭나길 바라는 국민이 적지 않다. 국회 앞에 해태상을 둔 취지가 조선시대 사헌부가 해태를 상징으로 삼은 것과 같은 맥락이라면,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의회의 본래 기능에 더 충실하는게 맞을 것이다. 갈등과 대립의 전면에서 격한 투쟁으로 주목끄는 국회의원이 아니라, 공동체로서의 나라와 국민을 위한 논의에 힘을 쏟는 군자로서 존경받는 입법기관을 만들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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