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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장박사]日 고시엔에서 울려 퍼진 우리말 교가 “동해바다 건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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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4. 08. 29.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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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엔 구장에서 지난 8월 23일 열린 제106회 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 결승전, 한국계 민족학교 교토국제고와 간토다이이치고 간 결승전을 관람하고 있는 필자.
아시아투데이는 다채로운 경력의 장원재 박사를 문화부 전문기자로 영입했다. 장 박사는 매주 '기발한 장 박사'와 '육성 박정희' 코너를 번갈아 쓴다. 이번 주에는 장 박사가 일본으로 건너가 한국계 민족학교 교토국제고(京都國際高)의 우승 후 우리말 교가를 부르는 장면을 '직관'하고 쓴 칼럼을 싣는다. <편집자주>

한국계 민족학교 교토국제고(京都國際高)가 제106회 (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다. 8월 23일 효고현 니시노미야시의 한신 고시엔(甲子園) 구장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도쿄 대표 간토다이이치고(關東第一高)를 10회 연장 접전 끝에 2-1로 물리쳤다. 금년으로 건축 100주년을 맞은 유서 깊은 경기장에서 '동해바다 건너서~'로 시작하는 교가가 울려 퍼졌다.

교가 제창은 고시엔의 전통이자 명물이다. 승리팀이 홈베이스를 중심으로 횡으로 도열해 전광판 쪽을 바라보며 노래한다. 패자는 자기 덕아웃 앞에 도열해 승자의 노래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며 예를 표한다. 이것은 외래적(外來的) 전통이다. 1920년 안티워프 대회 때부터 올림픽에 참가한 일본은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 삼단뛰기의 오다 미키오(1905~1998년)가 사상 첫 금메달을 땄다. 탈아입구(脫亞入歐)를 국가 슬로건으로 내걸고 근대화에 매진하던 일본인들은 열광했다.

그리고 올림픽 시상식에서 금메달리스트에게 국가를 연주해주는 세리머니를 고교야구에 도입했다. 봄 고시엔은 1929년부터, 여름 고시엔은 1957년부터 승리교 교가를 연주한다. 응원단과 선수들이 눈물을 훔치며 교가를 부르기에, '고시엔에서 교가를 부르자!'라는 말은 '반드시 이기자!'의 관용적 표현이다. 우리도 이 전통을 도입, 한때 봉황기 고교야구대회에서 승리팀 교가를 연주하기도 했다. 1970년대 이 대회에 참가했던 재일동포 학생야구단의 교가는 '고향의 봄'이었다.
그래서 묻는다. 만약 화교학교나 외국계 국제학교, 혹은 일본학교가 우승하고 목동야구장에서 자국어 교가를 불렀다면 우리 반응은 어땠을까? 그런 일이 가능하기는 했을까? 일부 한국 언론이 보도하는 '한국어 교가 제창을 둘러싼 혐한(嫌韓) 논란'은 일본 내의 주류반응이 아니다. 소수 혐한론자들의 행태에 대해서는 한 일본 야구 사이트의 댓글이 통렬하다. '고시엔에서 한국어 교가 나오는 게 싫다고 하는 바보들이 있는데, 만약 미국계 고교가 참가할 수 있어서 영어로 교가 부르면 멋있다고 할 거면서.'

교가 논쟁보다도 더 큰 이슈가 있다. 교육혁명이다. 2024년 여름 고시엔은 3715개 학교가 지역예선에 참가, 단 49개 팀만 본선 고지를 밟았다. 금년도 한국 고교야구팀은 클럽팀들을 포함, 모두 99개다. 이 차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일본 고교야구팀의 숫자는 전문선수반과 취미반을 합친 숫자다. '전문선수반'은 200여 팀에 불과하다. 일본 고교야구가 알루미늄 배트를 사용하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 나무 배트는 생각보다 잘 부러진다. 전문선수반이라면 몰라도, 취미반 선수들은 나무 배트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이 점은 국제대회 일본 고교대표팀의 부진으로 이어진다. 국제대회에 나가 나무 배트에 적응할 즈음이면 대회가 끝나기 때문이다.

고시엔은 이제까지 '전문선수반'을 육성하는 야구 명문고들의 독무대였다. 교토국제고같은 소규모 특수학교가 우승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1947년 재일동포들이 민족교육을 위해 돈을 모아 개교한 교토국제고는 1999년대 후반 학생 수가 급감하며 폐교 위기에 몰렸다. 학생 감소와 재정난이라는 2중고의 타개를 위한 특단의 대책이 '1조교 전환'이다.

1조교는 일본 '학교교육법 1조'에 해당하는 학교다. 일본의 교육과정을 준수하고 일본 검정교과서를 사용해야 한다. 학교가 없어지는 것보다는, 한국 일본 양국 정부의 지원을 다 받아 생존을 도모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폐교를 막기 위한 또 하나의 대책이 바로 야구부 창단이었다. 1999년 외국계 학교로는 처음으로 교토부 야구연맹에 가입해 첫 공식 경기를 치른 결과는 0-34의 기록적 대패. 당시 상대 팀 선수 중 하나가 지금의 감독이다. 신화와 반전 드라마의 시작으로 손색이 없는 서사(敍事)다.

2003년 일본 정부의 인가를 얻은 이후론 일본 학생의 입학도 가능하다. 한국사, 한국어 교육도 병행하며 한일 친선의 가교역할을 한다. 교토국제고 전교생은 137명이다. 인근의 다른 학교로부터 밴드부를 지원받고, 합동 응원단을 꾸려 관중석을 채운 이유다. 재학생의 60% 이상이 일본인이고 나머지는 한국 또는 일본 국적의 재일동포와 한국 유학생이다. 결승 상대였던 간토다이이치고는 재학생이 2500여 명, 야구부가 92명이다.

교토국제고의 재학생 중 절반인 68명이 남학생이고 그 가운데 61명이 야구부원이다. 금년 봄에 퇴임한 박경수 교장은 '야구에 미친 남학생과 한류에 미친 여학생들이 오는 학교'라고 했다. 야구에 미친 학생들이라고 하지만, 일류는 오지 않는다. 중학 정상급 선수는 여기까지 찾아올 이유가 없다. 그런데 우승했다? 한국이나 일본 사회엔 '대다수가 가는 길'을 벗어나 '자기만의 길'을 가는 사람들을 불온시(不穩時)하는 분위기가 있다. 개성을 중시하고 파격을 추구하는 교토국제고의 성취는 그래서 시사적이다.

21일에 열린 준결승 0-2로 뒤진 5회말 중간 휴식 시간(여름 고시엔 선수들은 온열 질환 방지를 위해 5회를 마치고 10분간 휴식한다), 고마키 노리츠구(41) 감독은 '당황하지 말고 마음껏 놀아라. 기회는 반드시 또 온다'며 선수들 긴장을 풀어줬다고 한다. 선수들은 6회말 곧바로 3점을 내며 역전에 성공했다.

일생일대의 꿈이 걸린 중요한 순간에 진지한 훈육 대신 '마음껏 놀라'고 하는 것은 발상의 대전환이다. 개성을 존중하는 교육자는 있다. 하지만, 그런 교육법으로 최고의 성적을 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성취다.

교토국제고는 신성현 현 두산베어스 전력분석원(33)을 필두로, 황목차승(LG), 소네 카이세이(히로시마), 우에노 쿄헤이(닛폰햄) 등 현재까지 한일 양국 통틀어 총 11명의 프로 선수를 배출했다. 덕수중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간 신성현은 2008년 일본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 4라운드 히로시마 도요카프의 지명을 받았다. 대한민국 출생 대한민국 국적자 최초의 드래프트를 통한 일본 프로야구 입단이다.
이때를 기점으로 교토국제고에 오는 선수들의 수준이 높아졌다. 고시엔엔 나가지 못했지만, '일본 프로구단에 선수를 입단시킨 학교'였기 때문이다. 2021년 대망의 고시엔에 진출하고 2024년 마침내 우승까지 했으니 이제 교토국제고의 명성은 불멸이 되었을 터이다. 학교도 야구부도 더욱 발전하기를 빈다. 그대들이 가는 길이 곧 '새로운 길'이다.

/장원재 본지 문화부 전문기자

장원재 박사는…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기고, 고대 국문과룰 졸업하고 런던대 연극학과에서 석·박사를 마쳤다. 숭실대 문창과 교수, 경기영어마을 사무총장,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 역임. MBC 라디오, TV 조선 등에서 앵커로 활동. 박정희대통령 기념재단 자문위원으로, 현재 생생현대사 유튜브를 통해 박정희 대통령의 육성, 영상자료 발굴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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