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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32만 참전용사가 전하는 ‘베트남 전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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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원 기자

승인 : 2013. 09. 09. 06:10

* 내년 베트남 참전 50년...한-베트남, 전쟁을 넘어 새로운 시대를 꿈꾸는 노병의 마지막 희망
베트남 참전용사로 한글과 영어로 생생한 참전기를 국내 처음 책으로 펴낸 김풍씨가 8일 오후  한국과 베트남이 진정한 화해와 평화의 새로운 협력 동반자 시대를 열었으면 한다고 말하고 있다. / 김종원 기자 

아시아투데이 김종원 기자 = 베트남 참전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한국과 미국은 베트남 전쟁을 통해 무엇을 얻고 잃었는가? 내년이면 한국군의 베트남 참전 50년이 되는 해가 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8일부터 11일까지 베트남을 국빈 방문하고 있다. 베트남은 이제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 한국·미국과의 중요한 경제 파트너가 될 정도로 성장했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8년 9월부터 70년 5월까지 21개월간의 생생한 전장의 체험을 일기로 기록하고, 그 기록을 한글과 영문으로 국내 처음으로 펴낸 베트남참전 노병이 있다.  

육군 9사단 독수리연대 2대대 6중대 화기소대 말단 소총수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김풍씨(63·경기도 광주시 장지동·사진). 공주사범대 영어교육과 2학년에 재학 중이던 그는 1968년 1월 육군 38사단 군수처 행정병으로 근무하다 베트남 전쟁에 자원해 참전했다.

강원도 화천군 오음리 훈련장에서 한 달간 파병 교육을 받고 68년 9월 12일 부산항을 출발해 5박 6일 만에 베트남 나트랑 항구에 도착했다. 일기는 부산항을 출발하는 날부터 시작해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터 이야기를 볼펜과 만년필로 포켓용 작은 수첩과 노트에 매일 한글과 영어 메모 형식으로 기록해 남긴 것이다.

그는 오는 13일 ‘평화의 십자군 베트남 1969’(344쪽·우신출판사) 한글판과 ‘The Peace Crusade Vietnam 1969’(360쪽·우신출판사) 영문판을 일기 형식의 에세이로 동시에 펴낸다.

책의 제목인 ‘평화의 십자군’은 소속 부대였던 백마사단(9사단) 용사들의 파월을 위한 행진곡에서 따왔다. 부제인 ‘베트남 1969’는 한국군 5만명과 미군 54만명이 주둔해 베트남 전쟁의 최정점이었던 시기를 상징한다.

베트남 참전용사 김풍씨가 21개월간의 생생한 참전기를 일기 에세이식으로 펴낸 '평화의 십자군 베트남 1969' 한글본 책 표지. 
그는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아시아투데이 편집국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과 베트남이 진정한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동반자 시대를 열어 나갔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1999년부터 책을 쓰기 시작했다”면서 “32만 참전 전우들과 함께 기록한 베트남 전쟁의 생생한 역사의 한 페이지”라고 했다. 그는 “영문판을 동시에 만든 것은 전쟁의 주역이었던 미국인들이 전쟁의 파트너였던 한국군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지금도 68년 12월에 나갔던 승마 15호 베트콩 소탕 대대작전이 눈앞에 생생하다. 그 전투에서 앞길이 창창하던 이민엽 중대장이 베트콩들의 7발 총탄을 맞고 전사했다. 황창호·김차삼 하사도 함께 희생됐다. 소대원들의 등에 업혀 죽어간 전우들도 있었다. 그 당시 참혹했던 전쟁의 상흔들은 아직도 악몽으로 되살아나곤 한다. 

21개월간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고 살아 돌아온 그는 11사단에서 육군 병장으로 70년 9월 전역했다. 74년부터 99년까지 고향인 군산에서 고등학교 영어교사를 하다가 전쟁 후유증으로 온 건강 악화로 명예 퇴직을 해야만 했다. 그는 고엽제 고도 후유 장애 판정을 받았다.

퇴직 후 과거를 조금씩 정리해 나가다 우연히 서재에서 베트남 전쟁터에서 썼던 손때 묻은 빛바랜 일기장을 발견했다. 전쟁의 실상이 그대로 묻어났다. 정말로 뛰는 가슴으로 수없이 읽고 또 읽었다. 99년 3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정리를 시작했다. 

이 책은 단순히 전쟁의 기록만 엮은 것이 아니다. 베트남의 풍토와 사회 관습, 문화, 상식, 전쟁 중의 한국군의 온정과 평화도 곳곳에 묻어난다. 베트남전의 시작과 과정, 끝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베트남전을 이해하기 위한 한·영 지침서로서도 손색이 없다. 

그는 “베트남전 참전 전우와 그 가족들, 베트남전에 관심이 있는 지구촌 사람들에게 필독서가 됐으면 한다”면서 “세계 평화와 조국의 발전을 위해 조건없이 목숨을 바친 전우들과 진한 피·땀을 흘렸던 전우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그는 “국가는 더 늦기 전에 32만 참전 전우들이 이 나라 발전에 기여한 공을 인정하고 합당한 예우를 해야 한다”면서 “전쟁의 비극과 함께 베트남인들이 어떻게 통일을 이뤘는지에 대한 생생한 리포트”라고 설명했다.

베트남 참전용사 김풍씨가 21개월간의 생생한 참전기를 일기 에세이식으로 펴낸 '평화의 십자군 베트남 1969' 영문본 책 표지. 

오는 24일 서울 송파구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리는 대규모 베트남참전 기념행사에서 그는 참전 소대원 모임인 ‘월캄전우회’ 회원들과 함께 저자 사인회를 연다. 이날 수익금은 어려운 베트남 참전 전우들과 베트남 사람을 돕는 기금으로 쓸 예정이다. 

그는 “만일 다시 사이공 시를 방문하게 된다면 베트남어를 가르쳐 주었던 군사어학교 교관인 배(Bae) 중위를 만나고 싶다”면서 “당시 영어를 제1외국어로,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배우고 있던 사이공여고 2학년 옌(Yen)을 죽기 전에 꼭 한번 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한국어·영어에 이어 베트남어 판을 내고 싶다고 했다.

그는 “옌을 만나게 된다면 이 책을 베트남어로 번역하는 일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싶다”면서 “50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그녀의 사진과 내 일기장이 있었기 때문에 그녀를 잊지 않았다”며 ‘잃어버린 시절’에 대한 진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이젠 한국과 베트남은 주요 교역국 관계로 발전했고 한국의 대학 입시 수학능력고사에서 베트남어를 외국어 과목으로 선택할 정도로 밝은 미래가 보인다”면서 “진정한 승리자는 자신의 밥그릇을 챙기는 자가 아니라 내 주머니를 털어서라도 올바른 일에 헌신하는 자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는 “베트남 전쟁의 진정한 승리자가 되는 길은 단순하지 만은 않고 전쟁이라는 것의 상처가 그렇게 단순하고 쉽게 아무는 것이 아니다”면서 “상처는 참전자인 우리에게도 있지만 베트남인들에게는 더 많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입히고 온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이미 한국 땅에 많이 들어와 있는 베트남인들은 좋은 기회”라면서 “한국군이 베트남에서 자매마을이나 형제부대로 다가갔던 것과 같이 우리가 다시 한번 그들에게 다가갈 좋은 기회”라고 했다.

그는 미국이 스스로 패전을 인정하면서 베트남참전 미군이 패잔병이 돼 숨죽이고 지내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그들의 상처는 두 세대 정도의 세월이 지나면 새로운 시각의 전쟁 평가가 이뤄지면서 영광의 상처로 바뀔 수도 있다”면서 “개인적으로 그들이 결코 전쟁에 패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한 이유는 엄청난 정글 때문이라고 처음에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많은 베트남인들은 그들의 적은 베트콩이 아니라 미국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데서 그 해답을 찾았다. 

베트콩들은 동족을 포섭하며 그들을 적으로 만들지 않고 생업에도 지장이 없게 했다. 베트콩은 민간인 동족들에게 결코 총을 쏘지 않았고 민간인들은 그들을 피해 도망갈 필요가 없었다. 그들의 지지를 받았고 미군이 철수하자 곧 전쟁도 끝나고 무리가 없는 통일을 이룰 수 있었다고 그는 보고 있다. 

그는 군과 베트콩의 싸움은 사자와 모기의 싸움이었다면서 아무리 힘이 세어도 사자가 모기와 싸워서 이길 수 없고 체면만 구길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미군들이 아무리 무섭게 155mm 포를 쏘아도 베트남인들은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자기들을 도와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면서 한국군은 태권도와 아리랑, 대민 봉사, 주민 진료·건설 지원, 보급, 군사훈련 등 맨손으로 그들의 굳게 닫힌 마음의 벽을 무너뜨리는 차원 높은 작전과 평화 전술을 펼쳤다고 회상했다. 

그는 말과 문화와 그들의 생활을 체험했기 때문에 베트남인들을 좋아한다. 또 프랑스나 미국 같은 강대국들과 자력으로 싸워 이긴 강한 민족정신도 존경이 간다. 

그는 “그들은 통일을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면서 “자연 자원이 풍부하고 아름다운 나라에서 그들은 복을 누리며 평화롭게 살 자격이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김풍씨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지 않고 죽기 전에 꼭 만나고 싶어하는 베트남 사이공여고 여고생이었던 옌(오른쪽 사진 맨 왼쪽)과 베트남어를 가르쳤던 교관 배 중위(왼쪽 사진 오른쪽 다섯째).

김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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