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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기자의 눈]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기사승인 2020. 05. 06.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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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구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암약되던 성착취물이 n번방과 박사방 등을 통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국민적 분노가 극에 달하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 성범죄’라는 새로운 유형의 범죄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지만 정치권의 상황 인식은 관련 법안 추진 과정만 봐도 여전히 후진적이다.

사실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인 ‘웰컴투비디오’ 운영자, 손정우의 아버지가 “우리 애가 강간이라도 했냐”며 손 씨의 미국 송환을 거부해달라는 취지의 탄원서를 제출한 것만 봐도,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몰이해도 심각하다.

이에 법무부는 지난달 ‘디지털 성범죄 근절대책’을 발표하면서, 총 41개 세부과제를 마련했다. 대책안은 처벌강화는 물론, 피해자 보호·지원, 예방 교육 등 그동안 국민들이 원했던 내용을 모두 담았다.

하지만 법무부가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려 국민들이 ‘듣고 싶어 하는 좋은 이야기’만 적어놓은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10여년 전 8세 여아를 상대로 잔혹한 성폭행 범행을 저질렀던 조두순을 기억할 것이다. 당시 국민들은 조두순이 무기징역·사형 등 법정최고형을 선고 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법원은 조두순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국민 법 감정과 실제 법원 판결의 괴리만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가 됐다.

처벌 강화를 전면에 내세운 법무부의 취지는 이해가 된다. 그러나 디지털 성범죄의 양형만을 대폭 강화하는 것이 실질적인 대책이 될지는 의문이다. 다른 유사 범죄의 양형기준과 형평성 문제를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선심성 공약’을 내세운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법무부가 도입하겠다고 밝힌 잠입 수사도 허점이 보인다. 수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일반인 사찰 등 부작용에 대한 대비책이 빠졌다. 피해자 지원센터와 관련한 인력 충원이나 운용방식 등도 마찬가지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하는데, 핵심은 빠진 채 변죽만 울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부는 이미 2차례에 걸쳐 디지털 성범죄 엄단 의지를 밝혔으나, 세계적 규모의 성착취물 사이트들은 버젓이 운영됐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피해자 중심의 종합적이고 실질적인 대책을 내놔야한다. 지금도 너무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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