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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베트남의 한국인들

[기자의눈] 베트남의 한국인들

기사승인 2020. 12. 17.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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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부 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베트남 하노이 카페에 앉아 있다 보면 종종 한국인인 것을 알아채고 베트남 사람들이 말을 걸어오곤 한다. 최근 몇 년간은 부쩍 방탄소년단(BTS) 팬들이 늘었다. 더듬거리는 한국어로 “나는 군대입니다”하는 말에 처음엔 대체 무슨 말인가 했는데, 자신이 방탄소년단의 팬이란 뜻이었다. 팬클럽 이름이 아미(ARMY)였고 구글 번역기로 번역을 하다 보니 벌어진 해프닝이다.

그렇게 말을 걸어온 베트남 친구들 중에는 어린 중·고등학생도 있었고, 회사를 다니는 또래도 있었고, 때로는 그런 자녀들을 두었다는 부모도 있었다. 다들 각양각색의 이유로 방탄소년단을 좋아하고, 그래서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했다. BTS팬클럽에서 나름 중책을 맡고 있는 친구의 주요 업무는 신곡이 나오거나 SNS에 새로운 게시물이 올라오면 재빨리 베트남어로 번역해 베트남 팬커뮤니티에 옮기는 것이다. 수 년 전 베트남어를 공부하던 기자도 종종 한국 뉴스와 아이돌 신곡 가사를 번역해 날랐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도 없거니와 이들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케이팝 뿐만 아니라 한국의 주요 소식도 케이팝 팬클럽 사이트를 통해 금방 전해진다.

이렇게 뿌듯한 순간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베트남에 있다 보면 부끄러워지는 순간도 있다. 직원들에게 “야, 여기, 이거”하는 반말을 쏘아 붙이거나 삿대질을 하는 무례한 한국인들도 심심찮게 보인다. 때로는 딸이나 손녀뻘로 보이는 베트남 여성들과 오가는 사람들도 있다. 영어로도, 베트남어로도 제대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그들을 보며 베트남 사람들도, 다른 한국인들도 애써 눈을 돌린다.

한국인들이 모여 사는 한인타운 인근 큰 길에는 가라오케 같은 유흥업소가 즐비하고 그 뒷골목에는 냐응이(여관)들이 밤을 밝힌다. 접대와 친목을 이유로 가라오케를 찾는 사람들도 있거니와 때로는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발길을 돌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늦은 밤 아파트 로비에서 벌어지곤 하는 베트남 여성을 데리고 들어가려는 한국사람과 그를 제지하는 경비의 실랑이가 보기 싫어 한인지역에서 먼 곳으로 이사한지도 오래다.

얼마 전, 베트남 호찌민시에서 한국인들 사이에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처음에는 한국 남성이 베트남 여성을 죽였다는 소문으로 와전됐다. 모니터 속 방탄소년단이 아닌, 베트남에서 이들이 보는 한국인들에 대한 인식이 어떤지 미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태호 외교부 제2차관의 베트남 방문을 계기로 코로나19에도 불구, 한·베트남 특별입국이 시행된다는 베트남 뉴스에는 한국과의 교류도 다시 본격적으로 재개될 것이란 베트남인들의 기대가 가득했다. 그러나 그 기대 속에서도 조두순이 풀려나 위험하다는 반응이나 케이팝·한류 속 한국과 현실의 한국·한국인들은 다르다는 반응들이 곳곳에 가시처럼 솟아있었다. ‘기자의 눈’으로 베트남을 들여다보며, 이들의 눈에는 한국이 어떻게 비칠지 때로는 참담해진다. 베트남의 한국인, 우리는 대체 언제까지 한류와 방탄소년단, 박항서 감독에게 편승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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