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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서울의 봄

[칼럼] 서울의 봄

기사승인 2023. 12. 1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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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석 문화평론가
영화 '서울의 봄'이 흥행 가도다. 모처럼 침체된 극장가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관객으로 하여금 분노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게 만들고선,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영화 자신은 흥에 넘친다. 영화는 대중의 감정을 먹고 사는 괴물이다.

극중 인물 전두광은 부하는 물론 친구, 선후배 장성들의 감정을 통제한다. 어떤 이도 자신의 감정을 앞서 나아가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다. 영화의 도입부, 정상호 계엄사령관은 회의 석상에서 정치군인들이 활개 칠 것을 걱정하며, 서둘러 계엄을 끝내고 민정으로 권력을 이양할 것을 확고히 한다. 이에 반발하는 하나회 소속 장성들의 불만과 항의의 웅성거림을 전두광은 가만두지 않는다. 턱을 이죽거리며 그들의 감정을 통제한다.

최초로 반란을 모의하는 연희동 회식 장면, 동요하는 하나회 멤버들이 두려운 감정을 드러낼 때, 전두광은 전등을 꺼버린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소등시킨 채, 절대 혼자 독식하지 않겠다는 말로 스멀대며 선후배 군인들의 욕망을 부추긴다.

12월 12일 당시 반란을 주도하던 장소, 수경사 30경비단에 모여서도 마찬가지다. 시시각각 반전이 오가는 상황, 예의 전두광은 술렁이는 무리의 감정을 통제하고 절대 자신의 감정을 앞서가지 못하게 한다.

밤새 서울 시내에서 벌인 내전 상황을 합법화하기 위해 새벽 시간 최한규 대통령에게 장성 무리를 몰고 간 반란의 수괴 전두광은 여기서도 감정을 통제한다. 1군단장 한영모가 대통령을 다그치듯 겁박하자, 전두광은 곧장 선배 장성인 그에게 호통을 치며 막아선다. 그러곤 이내 대통령에게 사과하는 모양새를 취한다.

사실 그가 통제한 감정은 곧 자신의 감정이자 속내다. 쿠데타를 모의하면서 품었을 두려움도, 소위 거사를 치르면서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가졌을 안달복달하는 자신의 마음 상태를 들키지 않게 도리어 반란군 무리의 동요를 억제한다. 그렇게 전두광은 그들의 감정을 제어하며 자신의 감정도 숨긴다. 진급과 돈을 미끼로 패거리들의 욕망을 통제함으로써 자신의 나약함을 감춘 채, 영화의 서사 내내 전두광은 교활함과 광포함을 작열한다.

그러나 극이 진행될수록 관객의 감정은 통제되지 않는다. 분출되지 않는 감정은 폭발 직전인데, 국가권력 찬탈 1단계를 마무리한 전두광은 화장실에서 혼자 미치광이처럼 웃는다. 그러고 나선 자신의 성기를 호기롭게 꺼낸 채 변기에 오줌을 갈긴다. 이때 일반 대중이 영화를 보는 이유인 카타르시스는 오로지 전두광의 몫이다. 배설은 극장 안의 관객 그 누구에게도 허락되지 않는다. 그의 방광이 비워지고, 그의 두려움이 광기의 웃음소리와 함께 소멸해 갈 때 관객의 분노는 팽창하지만, 감정의 요도가 막혀 분출하지 못한다.

권위주의체제 하에 저항과 분노의 감정이 불허되는 일상에서 유일한 카타르시스의 공간은 화장실뿐, 그러나 그조차 서울의 봄은 두 번에 걸쳐 전두광의 몫으로 배정한다. 첫 번째 화장실신, 전두광은 세면대에 가득 담긴 물에 얼굴을 파묻으며 감정을 숨긴다. 얼굴의 물기를 닦았을 때 두려움이 밴 표정이 드러나지 않게 수건으로 얼굴 대신 발바닥을 씻는다. 자신의 감정의 흔적을 지우기라도 하듯 군화 바닥을 수건을 깔고 연신 비벼댄다. 두 번째 화장실신이 바로 앞서 이야기한 배설신이다. 이제 관객은 분노라는 감정을 방광에 가득 채운 채 배설하지 못한 상태로 극장을 나서게 된다.

롤랑 바르트는 일찍이 영화를 페티시(fetish)라고 진단했다. 대중은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결핍을 영화라는 가상을 통해 채운다. 하지만 영화 '서울의 봄'은 결핍을 채우기보단 우리에게 결핍된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다.

'서울의 봄'은 비극적 현대사를 영화적 현실로 재현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결핍된 것이 무엇인지 촉각적으로 느끼게 한다. 현재 우리에게 결핍된 감정은 분노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서 "젊은이여 분노하라"는 프랑스의 사회운동가 스테판 에셀의 조언이 과거의 것이 아닌 우리가 직면한 현실의 문제라는 점을 영화는 짐짓 이야기하고 있다.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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