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김태우 칼럼] 계묘년 안보를 되돌아보며, 갑진년을 전망한다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atooauto.asiatoday.co.kr/kn/view.php?key=20231225010015062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3. 12. 25. 18:16

2023120401000224400010391
김태우 한국군사문제연구원 핵안보연구실장·전 통일연구원장
토끼의 해 계묘년(癸卯年)이 저물고 청룡의 해 갑진년(甲辰年)이 밝아오고 있다. 끝자락에서 되돌아보는 한 해치고 다사다난하지 않은 해는 없다지만 2023년의 안보도 그랬다. 올해는 신냉전의 심화, 우크라이나 전쟁의 반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군비경쟁 시대의 재개막, 핵질서 및 유엔체제의 붕괴 위기, 중남미의 석유 분쟁 등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한 해였다. 당연히, 최대 이슈는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을 추구하는 '새로운 악의 축(new axis of evil)' 세력 또는 '불량국가들'의 발호와 그로 인한 대결구도의 심화였다. 그 연장선에서 지구촌 이곳저곳에서 안보 문제들이 수두룩하게 돌출했는데, 혹자들이 이를 '미국 지도력의 퇴조 현상'이라 보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한반도 안보와 관련해서도 북핵 위협의 가중, 9·19 군사합의 파기, 남북 우주경쟁 개막, 한국군의 뿌리 논쟁, 채 상병 사건 등 크고 작은 이슈들이 등장했다.

2024년의 안보 전망도 신통치 못하다. 올해의 문제들 중 상당수가 내년으로 이어지거나 악화하여 더 큰 위기를 잉태시킬 수 있기 때문이며, 그렇게 되면 대만해협, 한반도, 중남미, 아덴만 등이 전쟁 위기를 맞을 수 있는 후보지들이다. 이런 가운데서 '상대편은 맞는 말을 해도 비난하고 우리편은 틀리는 말을 해도 박수치는' 망국적 이념적·지역적 분열을 이어가고 정치권은 국운(國運) 문제는 안중에도 두지 않고 권력싸움에 열중했던 대한민국이 2023년 '난장판 안보' 속에서 용케도 살아남았다. 6·25 이후 전쟁 발발 위험성이 가장 큰 시기가 될 수 있는 2024년에도 그렇게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신냉전, 우크라이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그리고 군비경쟁 시대의 재개막

1991년 미국의 걸프 전쟁 승리와 소련연방 해체로 탈냉전과 함께 도래한 단극시대는 길지 못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중국이 군사적 강대화를 그리고 러시아가 초강대국 복귀를 시도하면서 새로운 대결구도가 형성되었다. 미국에 도전장을 던진 중국에 러시아, 이란, 북한 등이 가세하여 '새로운 악의 축' 또는 '불량국가 카르텔'을 형성하고 자유민주주의 서방세력이 이들의 도전에 맞서면서 '독재세력 대 민주세력'이라는 대결구도가 자리 잡았다. 2023년 동안 동유럽에서는 러시아가 그리고 아시아-태평양에서는 중국이 현상 변경을 시도했고, 중동에서는 이란이 '폭풍의 핵'으로 등장했으며 한반도에서는 핵무력을 앞세운 북한의 현상변경 시도가 이어졌다.
우선 동유럽에서는 올해 전반 동안 나토(NATO)의 지원을 업은 우크라이나군의 선전으로 러시아군이 고전했으나, 북한이 러시아에 탄약과 재래무기를 제공하면서 그리고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서방의 관심이 중동으로 쏠리면서 전세는 반전되었다. 이제 서방이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못하면 이 전쟁은 우크라이나의 인명·영토의 손실, 미국의 지도력 손상, 나토의 결속력 약화 등으로 귀결될 공산이 크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10월 7일 하마스의 선공으로 시작되었으나 이스라엘은 대응작전을 통해 하마스를 붕괴 위기로 내몰았다. 이 전쟁은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 간의 영토·종교·민족 갈등이라는 전통적 분석틀에서 보면 지역문제일 뿐이지만, 신냉전 분석틀에서 보면 중동질서의 재편을 원하는 이란과 이란을 성원하는 불량국가들에 대한 서방의 저항이며, 후티 반군의 바브엘만데브(Bab-el-Mandeb) 해협 봉쇄로 이미 그런 편가름이 시작되었다. 이 대결에서 서방이 나약함을 보인다면 중동질서 재편이 가속화는 물론 미증유의 해상 물류 대란이 발생할 것이며, 그 경우 한국을 위시한 무역대국들은 치명적인 손실을 입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 대만해협이나 한반도가 '다음 전장(戰場)'이 될 수도 있다.

신냉전의 심화와 더불어 군비경쟁도 가열되었다. 중국의 급속한 군비증강과 전랑(戰狼) 외교에 대항하여 미국과 아시아 국가들이 군비증강에 나서는 가운데, 유럽에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군비경쟁을 촉발했다. 러시아가 유럽 재래식무기감축조약(CFE)에서 정식 탈퇴함에 따라 더 이상 제어장치가 존재하지 않는 가운데 국방비 증액 경쟁도 시작되었다. 중국의 국방비는 연 7% 내외의 증액을 지속하여 2023년에 1조5537억 위안(293조원)에 달했고, 미국은 2024년 국방비로 14.6%가 늘어난 8860억 달러(1160조원)를 책정했다. 일본은 1960년대 이후 GDP 대비 1% 수준을 유지해 온 방위비를 2%로 늘리기로 하고 2024년 방위비로 13%가 늘어난 7조7000억엔(70조 1000억원)을 편성할 예정이다. 나토 국가들도 GDP 대비 2%까지 늘리기로 했고, 특히 폴란드는 4%로 늘린다고 발표했다. 국방비 증액 바람은 인도, 중동, 아시아에서도 불고 있는데, 핵보유 군사강국을 지향하면서 대리세력들을 통해 중동을 흔들고 있는 이란은 '폭풍의 핵'이다.

◇핵질서와 유엔체제의 붕괴조짐 그리고 중남미의 전운(戰雲)

핵질서와 유엔체제도 붕괴 위기에 직면했다. 북한의 핵 및 미사일 증강과 이란의 핵개발 징후로 핵비(非)확산 체제는 크게 흔들렸고, 2019년 중거리핵폐기조약(INFT, 1987)의 붕괴에 이어 2023년에 러시아가 신전략핵감축조약(New START, 2010)과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1996)에서 탈퇴하고 핵사용 위협을 반복하면서 핵전쟁 공포도 확산되었다. 유엔도 불량국가들의 거부권 오남용으로 1945년 창설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러시아군 철수를 요구하는 안보리 결의안과 점령지 합병을 규탄하는 결의안에 연거푸 셀프 거부권을 행사했고, 중·러는 2017년 결의 2397호를 끝으로 모든 대북 제재 결의안을 보이콧했다. 그래서 2024년은 유엔 무용론과 핵 아마겟돈 공포가 크게 확산되는 해가 될 것으로 우려된다. 중남미에서는 빈국 가이아나에서 2015년 석유가 발견된 것을 기회로 베네수엘라가 가이아나 영토의 75%에 달하는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군사적 위협과 국민투표를 통해 합병을 추진한 사태는 미국에 대한 노골적인 도전이었다. 19세기 이래 'NIMBY(not in my back yard),' 즉 '미국의 뒷마당'에서는 반미(反美)를 용인하지 않는 정책을 실행해 온 미국의 대응이 초미의 관심사다.

이렇듯 안보를 '난장판'으로 만든 이슈들이 도처에서 돌출했지만, 미국은 패권국가의 경찰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다. 우크라이나 전세가 러시아 쪽으로 기울고 있는 중에 피로증(症)을 노출했고, 나토의 결속을 해치는 튀르키예와 헝가리의 일탈을 단속하는 데에도 한계를 드러냈다. 아시아-태평양에서는 인도의 이중 외교와 호주 노동당 정부의 등장으로 쿼드(QUAD)와 미·영·호 안보파트너십(AUKUS)의 존재감은 희석되었다. 오바마 행정부 이래 미국이 중동에서 발을 빼는 동안 그리고 미-사우디 관계가 악화하는 동안 중국은 틈새를 파고들어 영향력을 키웠다. 중동에서는 이란이 그리고 중남미에서는 베네수엘라가 미국의 인내력을 시험하고 있다. 이런 무질서의 원인에 대해 '내년 대선을 의식한 확전 회피 정책,' '바이든 행정부의 무능,' '미국 비중의 축소에 따른 경찰력 퇴조,' '미국 내 신고립주의' 등 다양한 분석이 있지만, 이를 '국제질서의 재편 조짐'으로 보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이들에게 2023년은 세계가 현상 타파 세력, 현상 유지 세력 그리고 중립적·이중적인 제3지대 세력으로 삼분되는 조짐을 보인 한 해였을 것이다.

◇다사다난했던 2023년 한반도 안보

한반도에서도 다양한 안보 사건들이 있었는데, 북핵 위협의 가중, 한국의 핵무장 여론 비등, 북한의 핵탑재 잠수함 진수, 한·미동맹 강화와 한·일관계 정상화 시도,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 남북 우주 경쟁, 9·19 군사합의 파기, 북·러 무기거래와 군사기술 공조, K-방산의 도약 등이 굵직한 이슈들이었다. 베트남 참전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피해 손해 배상 판결, 한국군의 뿌리 논쟁, 해병대 채 상병 순직 등 안보에 악영향을 미칠 국내 사건들도 많았다. 최대 안보 이슈인 북핵 위협의 가중은 오랫동안 진행되어 온 것이지만, 2023년은 북한이 2021년 1월 제8차 당대회 때 공언했던 5대 전략무기 개발 목표와 2022년 12월 노동당 제8기 제6차 중앙위전원회의가 제시한 '국방력 강화 4대 목표'를 향한 유의미한 진전을 이룬 한 해였다. 북한은 한국과 미국을 향해 끊임없이 핵위협을 가하면서 9월에 전술핵 공격잠수함 '김군옥영웅함'을 진수했고, 11월에는 군사용 정찰위성 발사에 성공했으며, 12월에는 고체연료 ICBM을 쏘았다.

2023년 4월의 '워싱턴 선언'은 '미 전술핵의 한국 내 또는 주변 상시 배치'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핵우산을 또는 확장억제력을 강화한 소중한 '반 잔의 물'이었다. 최초의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이었던 2023년 8월의 캠프 데이비드 회담을 통해서는 3국이 정상회담 정례화, 핵·미사일 위협 대응 정보 및 경보 공유, 대북 사이버 공조, 과학기술 협력, 해상 미사일 훈련과 대잠수함 훈련을 위시한 3국 합동훈련 등에 합의했다. 윤석열 정부의 동맹강화 및 한·미·일 안보공조 강화 기조는 현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으며, 동시에 전임 정부의 '통북(通北)·종중(從中)·탈미(脫美)·반일(反日)' 외교·안보 노선을 '연미(聯美)·협일(協日)·극북(克北)' 노선으로 전환했다는 평가를 받게 한 이정표적 사건이었다.

북한의 첫 정찰위성 발사 직후 한국도 최초의 군사정찰용 광학 위성을 발사한데다 2025년부터 1기의 광학(EO/IR) 위성과 4기의 레이더(SAR) 위성을 운용하는 '425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정찰위성 경쟁에서 절대 우위를 차지하겠지만, 러시아가 새로운 변수로 부상했다. 북한이 러시아에 탄약과 재래무기를 제공하는 대가로 군사기술을 제공받는 상황이 전개되면서 이것이 북핵의 고도화나 정찰위성 첨단화에 얼마나 기여할 것인지가 한반도 안보에 새로운 변수로 부상한 것이다.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 이후 조성된 안보국면이 한국에게 새로운 당면 안보과제를 부여하고 있음도 간과할 수 없다. 이런 가운데 한국이 FA-50 경공격기, 레드백 장갑차, K-2 전차, K-9 자주포, 천무 다연장로켓, 천궁-2 대공미사일 등 '명품'들을 앞세워 세계 9위의 무기수출국으로 발돋움한 것은 모처럼 신나는 일이었다.

◇항재전장(恒在戰場)·일치단결(一致團結)·강군건설(强軍建設)

한마디로, 2023년 동안 글로벌 안보상황은 '난장판'이었고 2024년의 전망도 불투명하고 불안하다. 한반도 안보도 그럴 것이다. 북핵 고도화는 계속될 것이며, 중·러의 북핵 비호도 이어질 것이다. 중·러의 빈번한 한·일 방공식별구역(ADIZ) 침범, 자원무기화를 통한 주변국에 대한 중국의 경제적 괴롭힘 등도 간단없이 이어질 전망이다. 이러한 시기에 한국은 '자강(自彊)과 동맹'이라는 안보의 정론을 재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의 경찰력이 시험대에 올랐다고는 하나, 세계 최강국과의 동맹과 자유우방과의 협력을 소중히 여기고 유사시 이들의 도움을 담보하는 것이 한국의 당면과제다. 물론, 그보다 시급한 것은 스스로의 힘을 기르는 것이다. 그래서 새해의 구호로 '항재전장(恒在戰場)·일치단결(一致團結)·강군건설(强軍建設)'을 강조하고자 한다. 군은 늘 전장에 있다는 자세로 도발에 대비하여 위험한 시기를 넘겨야 하고, 국민과 정부 그리고 군은 안보에 있어 한마음 한뜻이어야 하며, 그것을 기반으로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강군을 건설해나가야 한다. 그것이 두둥실 떠오른 갑진년 새해의 태양을 바라보며 외치고 싶은 말이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김태우 한국군사문제연구원 핵안보연구실장·전 통일연구원장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