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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선 칼럼] ‘남 탓’ 문화 속 기업의 대표이사

[최준선 칼럼] ‘남 탓’ 문화 속 기업의 대표이사

기사승인 2023. 12. 28.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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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한국에서 기업의 대표이사가 된다는 것은 언제든 민사적 손해배상 책임과 기소되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몇 년간 한국 국회가 통과시킨 법률들을 보면 모든 책임은 불문곡직하고 기업 대표에게 일단 책임을 돌린다. '중대재해처벌법'이 그렇고,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이라고 할 '금융회사지배구조법' 개정안이 그렇다.

2022년 일본 오사카(大阪) 지방법원 판결을 보면 한국 대표이사들은 부러움을 느낄 것 같다. 사건의 내용을 보면, Z사는 단일 매출액이 일본 돈 1조엔이 넘고 종업원 1만4000명이 넘는 경영 규모가 매우 큰 오사카 소재 회사다. 그런데 P사가 Z사에 도쿄도 시나가와구 소재 부동산을 70억엔 정도에 매각할 의사가 있다는 것을 알려왔다. P에 따르면 이 부동산은 A 소유라고 하였다. 이에 따라 Z사 도쿄 맨션 사업부는 이 사건 부동산 매입을 추진하기로 하고, 그 승낙을 구하는 품의서를 작성해 본사에 제출했다. 이 품의서에는 A 본인의 신원이나 그의 부동산 소유에 대한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할 만한 사정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또한 Z사 대표이사·사장 Y는 이 사건 각 부동산을 시찰까지 하고, 맨션사업본부장 B로부터 사업성 등에 관한 상세한 설명을 들었다. 그 후 Y는 이 사건 품의서를 승인하는 결재를 하였고, Z사는 이 사건 각 부동산을 매수한다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최종적으로 총 약 55억엔(한국 돈 약 500억원)을 지급했다.

그런데 이 부동산의 실제 소유자는 이 사건 부동산을 양도하지 않았고, 이 사건 거래는 P사 등이 기획한 가공의 거래였음이 나중에 밝혀졌다. Z사 주주 X는 대표이사·사장 Y가 임무를 게을리해 Z사에 약 55억엔의 손해가 발생하였다며, Y에게 일본 회사법 제423조 제1항(한국 상법 제399조 제1항과 같은 내용)에 따라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위 오사카 지방법원은 X의 청구를 기각했으며, X가 항소하여 오사카 고등법원 역시 지방법원 판결문을 인용하면서 2022년 12월 8일 X의 항소를 기각했다.

오사카 지방법원 판결문을 일부 인용해 보면, "이사에게 요구되는 (부동산 매입결재)의 판단이 해당 회사의 경영상태나 해당 부동산의 매입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 등 여러 가지 사정에 근거한 경영판단이라는 점에서 … 해당 이사의 지위나 담당업무 등을 고려할 때, 해당 판단의 전제가 된 사실 등의 인식이나 평가에 이르는 과정이 합리적이라면, 그러한 사실 등에 대한 판단의 추론과정과 내용이 현저하게 불합리하지 않는 한, 해당 이사는 선관주의의무위반 … 으로 인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리고 … 회사가 … 대규모로 분업화된 조직형태로 되어 있는 경우에는 이사가 각 부서에서 검토된 결과를 신뢰하여 그 경영상 판단을 하는 것은 이사에게 요구되는 역할이라는 관점에서 보아도 합리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당해 회사가 대규모로 분업화된 조직형태로 되어 있는 경우에는 해당 이사의 지위 및 담당 직무, 그가 가진 지식 및 경험 해당 안건과의 관련 정도와 해당 안건에 관하여 인식하고 있던 사정 등을 고려하여, 하부조직이 제공한 사실관계나 그 분석 및 검토 결과에 의존하여 판단하는 것을 주저하게 하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해당 임원이 위 사실 등에 근거하여 판단한 경우는 그 판단의 전제가 된 사실 등의 인식이나 평가에 이르는 과정은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위 일본의 판결은 경영자의 '경영판단의 원칙'을 인정한 것으로 경영자의 경영행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민·형사 책임을 광범위하게 면책시켜 준다. 본래 미국 판례법에서 확립된 '경영판단의 원칙(business judgement rule)'이란 회사의 이사나 임원이 개인적인 이해관계 없이, 합리적인 정보에 의한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 회사의 최선의 이익에 합치한다고 믿고 임무를 수행한 경우, 비록 그 판단이 결과적으로 회사에 손해를 가져오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법원이 사후적으로 개입하여 이사의 의무 위반에 대한 책임 문제를 따지지 않는다는 법리이다(최준선, 회사법, 제18판, 2023, 592면 이하 참조).

경영판단의 원칙이 적용된 사례는 미국은 물론 일본에서는 드물지 않다. 대규모로 분업화된 조직을 갖춘 대기업에서 대표이사는 각 부문의 업무 전반을 종합적으로 지휘 통제할 의무가 있고, 부동산 구입에 대해서도 최종 결재권도 있다. 그러나 실무자가 속아서 올린 결재에 대해서도 경영 전반을 총괄하는 입장에서 검토하면 충분하고, 오사카와 멀리 떨어진 도쿄도에서 실무자가 속았는지 여부까지 파악하는 데는 물리적 한계도 있어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상식이 아닐까. 그는 직접 도쿄도를 방문하여 해당 부동산을 확인까지 했으므로 직원들을 믿었던 것은 지극히 정상이 아니었을까.

한국의 '남 탓 문화'는 외국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을 것 같다. 서해상에서 사고가 나도, 이태원에서 사람이 죽어도 모두 대통령 탓이고 정권 탓이라고 우기는 건 너무하지 않나. 그래서 한국에서는 게임에 지는 것도 대통령 때문이라는 농담도 있다. 골프운동을 하다가 공이 해저드에 빠져도, 벙커에 빠져도 '이게 다 대통령 때문이야!'라고 외친다. 물론 한국 사람의 '남 탓 문화'를 반어법으로 비꼬면서 웃자고 하는 소리겠지만 말이다.

한국 기업의 대표이사는 민사적 손해배상은 물론이고, 당장 무슨 일로 감옥에 갈지 알 수 없는 참으로 한심하고 위험한 처지에 있기도 하다. 이런 나라에서 불철주야 무언가 해 보려고 애쓰는 기업 대표와 임직원 여러분들에게 2024년에도 영광과 축복이 있으라!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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