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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각범 칼럼] 한동훈號, 새 정치가 열어야 할 변화의 새 길

[이각범 칼럼] 한동훈號, 새 정치가 열어야 할 변화의 새 길

기사승인 2024. 01. 01.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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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각범 한국과학기술원 명예교수
새해 새 정치를 여는 밝은 날이 시작되었다. 새 정치란 나라의 발전과 국민의 행복을 위한 정치이다. 반대로 낡은 정치란 정치인을 위한 정치, 자기네 패거리를 위한 정치, 팬덤에 의존하는 대중정치이다.

우리나라의 낡은 정치판은 나라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국가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민주주의의 낭비와 비능률이 심하다. 여야의 파쟁적 갈등 속에서 국가대계를 위한 사업마저도 정치공학적 시빗거리로 전락하고 있다. 옳고 그름의 잣대가 사라진 무질서 속에서 정치허무주의는 국가허무주의로 치닫고 있다.

이제 새 정치를 위한 개혁이 절실하다. 단순히 올해 총선 승리를 위한 새판 짜기 차원을 넘어선 발상의 전환이 불가피하다. 그래야 나라의 미래가 새롭게 열린다. 5년 집권기간 동안 50년간 축적해 온 발전의 자산을 탕진하고, 나라를 복합위기 상황으로 내몬 전임 정권은 잊어버려야 한다. 대한민국 역사상 경험 해보지 못한 정권이다. 지금까지 전 정권 탓을 한 차기정권의 행태는 숱하게 보았다. 반면 자신들이 저지른 안보위기와 민생문제 해결을 위해 전전긍긍하는 후임정권에 대고 반성하라, 사죄하라며 을러대는 야당은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 본다. 그들과 시시비비를 가리려고 해보았자, 대한민국의 혁신 시계는 그만큼 늦추어질 뿐이다.

비정치인 한동훈이 선택한 새 정치는 무책임성과 정략의 희생물이 된 대한민국 정치를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다. 여의도 정가에서 내세우는 '정치적 경험'은 새 정치에 자산이 아닌 부채가 될 뿐이다.

정치학은 원래 국가학에서 출발하였다. 국가의 질서와 변화가 담론의 주제였다. 근대 실증주의가 미국 정치학의 주류로 되면서는 실증적 분석이 가능한 '권력(power)'이 정치학의 주제로 되었다. 여기에 더하여 나치 독일의 법학자 카를 슈미트(Carl Schmitt)가 정의한 정치란 '적과 우리 편의 집합적 대결'이라는 인식이 강력하게 자리 잡고 있다.

한동훈이 갈파하는 새로운 정치는 국가의 발전과 민생의 안정을 위한 것이다. 이에 반해 기존의 정치세력 간 경쟁은 권력획득을 도모하는 진영정치에 지나치게 함몰되어 있었다. 한동훈은 국가론적 정치관을, 현 정치의 주류세력은 진영론적 권력론을 따르고 있다.

특히 86운동권을 중심으로 이제 적지 않은 정치경험을 쌓은 그들은 많은 정치공학적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다. 대중을 결집시키는 능력뿐만 아니라, 진실을 거짓으로, 거짓을 진실로 바꿀 수 있는 능력도 탁월하다. 역대 가장 무능했던 대통령을 화려하게 포장하여 퇴임 때까지 지지율 고공행진을 하게 만들었다. 정치공학적 기획능력만으로 본다면 정치초년생 한동훈을 비웃을 이유는 충분히 있다.

이미 거짓말은 사회적 시스템이 되어버렸다. 국내외에 있는 소수의 그룹이 가짜뉴스를 정교하게 만들어 퍼뜨리고 있으나, 이를 실제인 양 믿고, 퍼나르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거짓말 시스템 속에서 행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극초속기로 두는 바둑이나 체스처럼 사이버 공간에서는 생각할 시간 없이 감각에만 의존해서 행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광장에 모여 촛불시위로 정권교체를 이루어낸 그들에게 승리의 추억은 아직 뜨겁다. 그들 중 일부는 조국사태 이후 성찰의 시간을 갖고, 본질적 의문을 갖게 되었으나, 거짓 선동 시스템의 위력은 아직도 유효하다. 무엇이 진실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광장에서 나누었던 연대감은 생각의 관성을 벗어나기 어렵게 만든다.

한동훈 위원장은 이미 기성정치로부터의 차별성, 참신함, 실력으로 저주 섞인 모욕을 되받아치는 용기와 명석함을 보여주었다. 한동훈의 새 정치는 양심의 힘과 참신함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양심은 힘이 없다는 착각'을 깨어주고, 거짓 선전선동에 익숙한 여의도 문법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편의 최강무기는 나라의 미래를 설계하고 장기적 민생안정을 확보할 수 있는 정책능력이고, 저편의 최강무기는 포퓰리즘, 임기응변식 선전선동이다.

4년 전 4·15 총선의 경우, 포퓰리즘 선거의 위력은 가공할 만하였다. 그렇다고 전 정권이 남겨준 빚더미의 부담이 너무 큰 상황에서, 이제 또다시 포퓰리즘 선거를 치를 수는 없다. 그렇게 되면 정권 교체 이후 힘들게 지켜온 재정안정기조가 무너질 것이며, 그동안 억제해 왔던 물가는 돈이 풀린 총선 직후부터 천정부지로 치솟게 될 것이다. 2023년에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좋은 경제적 성과를 올렸다고 칭송받은 한국의 지위도 급추락할 것이다.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는 자유의 원천이며, 온 국민이 함께하는 공동체다. 국가가 있으므로 시민은 자유를 누릴 수 있고, 공동체 속에서 생활의 터전을 가꿀 수 있다. 조정훈 의원이 근자에 "진정한 보수는 질서 있는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한 이야기는, 정치의 목적 그 자체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보수는 질서에 더 큰 역점을 두고, 진보는 변화에 방점을 찍으면서 '질서 있는 변화'에 동참한다.

그러나 국민이 보기에 보수는 기득권 질서 유지로, 진보는 철 지난 운동권 마인드로 나라를 퇴보시키고 있다. 두 진영은 공공선을 추구하기보다 서로 자기 진영에 많은 이득을 가져오기 위한 제로섬 게임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진운을 새롭게 개척하려는 한동훈호에 보수와 진보의 구분을 넘어서 지식과 용기를 갖춘 참신한 인물이 많이 승선하기를 바란다. 전문지식과 국제적 감각을 갖춘 건전한 생활인이면 더욱 좋다. 새로운 정치를 추진하는 주력은 우리나라가 해결해 나가야 될 국가적 과제를 우선시하면서, 막무가내로 남을 공격하는 언어 폭력적 행태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 정파에 휘둘리지 않고, 국회의 가장 중요한 입법기능을 회복할 수 있는 아이디어와 실력을 갖춘 인사가 모여야 한다.

우리나라 정치생산성은 OECD 국가 중에서도 매우 낮은 수준이고, 운동권정치의 폐해가 쉽게 청산되지 않는다면 가장 낮은 수준에 이를 수도 있다.

이러한 비관적 상황 속에서도 우리 민족의 저력을 믿어야 한다. 우리 민족은 기동성과 적응능력이 뛰어나다. 새 정치를 추구하는 한동훈호의 순항으로 입법부의 개혁이 이루어질 것을 새해 새 아침에 소망한다. 가장 바람직한 발전경로는 민주당에도 한동훈 같은 개혁적 지도자가 나와 여야 두 당이 윈-윈 경기를 펼침으로써 우리나라의 '질서 있는 변화'를 이루어내는 것이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이각범 한국과학기술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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