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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동훈의 “동료 시민”(Fellow Citizen)이란 말의 시원(始原)

[칼럼] 한동훈의 “동료 시민”(Fellow Citizen)이란 말의 시원(始原)

기사승인 2024. 01. 15.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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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율 전 국세청장

요즈음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동료 시민"이란 표현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대부분의 반응이 "참신하다"는 쪽이지만, "뜬금없다"는 의견도 적잖다. 평가는 각자의 몫이지만, 이 말의 시원(始原)을 정확히 알고 나서 판단하면 더 좋지 않을까.


2500년 전 아테네는 특정인이 아니라 '시민들의 집합체(Polis)'가 이끌어 가는 나라였다. 그곳에서 모든 사람은 동등하였다. 모든 시민에게 '동등한 권리(Isonomia)'를 인정하였고, 지도자는 시민들 위에 군림하지 않았으며, 시민들은 군림하는 지도자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같은 맥락에서, 아테네 시민들은 마라톤 전투의 전쟁영웅 밀티아데스를 몰아냈고, 지중해를 누비며 아테네 제국 건설의 주역을 맡았던 키몬도 축출하였다.

군림하는 지도자뿐만 아니라 군림할 염려가 있는 지도자를 몰아내기 위해 도편추방이라는 제도도 만들었다. 이것은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으려는 '평등주의 정신'(Egalitarian Ethos)의 발로이다. 이들은 시민과 지도자의 사이를 지배와 복종의 관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도자에게 어떠한 특권도 인정되지 않았고, 시민들은 서로를 평등한 동료로 여겼다. 이것이 아테네 시민들이 생각하는 동료 의식의 뿌리였고, 이것이 아테네를 강하게 결속시켰다.

이 동료 의식을 더욱 굳건하게 만든 것은 중장보병(重裝步兵, Hoplite)의 밀집대형(密集隊形, Phalanx)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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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제공 그림/ 중장보병의 밀집대형


이 전투방식은 내 몸의 오른쪽 반을 오른쪽 동료의 방패에 내맡겨야 한다. 모두 똑같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대오를 유지해야 한다. 장군에게도 예외는 없다. 오히려 맨 앞에서 동료 병사들과 대오를 유지한 채 적과 싸워야 했다. 밀집대형을 유지하면 모두가 안전하지만 무너지면 상대방의 공격에 모두가 노출된다. 이
러한 전투 경험을 통하여 공동체에 좋은 것이 나에게도 좋다는 시민정신과 함께 끈끈한 동료애를 체득했다. 말이나 글로 배운 것이 아니라 동료시민과 몸으로 부대끼며 깨쳤다는 말이다.

그래서 아테네 시민들은 신분의 귀천이나 빈부의 차이에 상관없이 모두 다 동등한 동료라고 여겼다. 이것을 잘 나타내는 말이 "우리(We)"다. 아테네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페리클레스는 유명한 그의 '전몰용사 추도사(Funeral Oration)' 38, 39문단(A4 한쪽 분량)에서 "우리"란 말을 29회나 사용하였다.

그리스 문명의 복사판이라는 평가를 받는 로마가 이러한 고대 그리스인들의 생각을 그대로 복제했다. 그리고 "동등한 사람들 가운데 첫 번째(Primus inter Pares, First among the Equals)"란 말을 만들어냈다. 지도자란 특권을 누리는 사람이 아니라 동등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일 뿐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로마의 공화정 역시 지도자에게 맨 먼저 연설하는 권한을 제외하고, 어떠한 특권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도자들은 시민들을 "동료 시민(Fellow Citizen)"이라고 불렀다.

결론적으로 아테네의 민주정에 뿌리를 두고 로마의 공화정 때 생겨난 "동료 시민"이란 말은 지도자의 입장에서 지도자와 시민의 평등을 강조한 표현이고, 어떠한 특권도 누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내포한 말이다. 물론 말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시민들의 생사여탈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로마제국의 황제들조차 "동료 시민"이란 말을 즐겨 썼고, 요즈음은 서구권 정치인들이 이 말을 관행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한동훈 위원장이 어떠한 생각에서 "동료 시민"이란 말을 즐겨 쓰는지 알 수 없다. 그가 이 말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고 특권과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는 취지라면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다. 실제로 그렇게 하는지 지켜볼 일이다. 비판은 실천하지 않을 때 해도 늦지 않다. "동료 시민"이란 용어 자체를 폄훼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모독이자 무식의 소치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한상율 (전 국세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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