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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칼럼] 법 안 지키는 법조인의 나라

[김정호 칼럼] 법 안 지키는 법조인의 나라

기사승인 2024. 01. 2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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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대학원 겸임교수·김정호의 경제TV 대표
우리나라는 법조인의 나라가 되었다. 대통령부터 여당의 비상대책위원장, 야당 대표가 모두 검사 또는 변호사 출신이다. 그럴수록 법이 잘 지켜져야 할 텐데, 정작 현실은 그 반대다. 법이 쉽게 무시되곤 한다. 야당 대표의 법률 및 재판 무시 행보는 사정이 그나마 나은 편이다. 많은 사람이 그의 그런 행동이 법을 거부하는 것임을 알고 있으며 비난의 대상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대다수의 사람이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최소한 알고는 있다는 차원에서 불행 중 다행이다.

아예 명백한 불법임에도 국민 다수가 그렇다는 사실조차 인식 못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특히 헌법과 관련해서는 그렇다. 대한민국 헌법 제13조 제2항은 소급입법에 의한 재산권 박탈을 금지하고 있는데 이 조항은 쉽게 통째로 무시되곤 한다. 등록 임대사업자에 대한 세제 혜택 박탈 입법이 최근의 대표적 사례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출범과 더불어 두 줄기의 부동산 정책을 추진했다. 하나는 종합부동산세로 대표되는 다주택자 중과세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임대주택 공급과 전월세 시장 안정을 위해 임대사업자로 등록한 다주택자에게는 여러 세제 혜택(종합부동산세 합산 배제, 양도세 감면 등)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제도 시행과 더불어 집값이 급등하기 시작하자 그 혜택들을 줄이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했다. 관련법을 믿고 투자와 등록을 했던 국민은 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두고 국회의원들은 '진정 소급'이 아니라 '부진정 소급'이어서 괜찮다는 식으로 교묘하게 위헌 논란을 빠져나갔지만, 불소급의 원칙을 천명한 헌법의 정신을 정면으로 위배한 것은 분명하다. 어쩌면 위헌 법률을 교묘하게 합헌으로 포장해 주는 것이 법조 출신 국회의원의 역할인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그런 억울함을 해결하라고 헌법재판소가 마련되어 있지만 피해자들은 별로 이용을 안 하는 듯하다. 헌법소원을 해봤자 돈과 노력만 들 뿐 아니라 승산이 별로 없음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헌재가 특정 법률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결을 낸 경우조차도 국회가 무시해 버리기 일쑤다. 약사가 법인 형태의 약국을 개설하는 것을 금지하는 약사법 조항이 헌법 불합치라고 2002년에 헌재가 결정했다. 그러나 국회는 아직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 법인 약국은 위헌인 법률에 따라서 여전히 불법인 상태로 남아 있다. 국회에 의해서 무시당하고 있는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이 42개에 이른다고 한다. 누구보다 헌법을 존중해야 할 국회의원들이 전혀 그럴 생각들이 없다. 아마도 표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명백한 사안들에서조차 헌법이 무시되는 판이니, 재산권 같은 애매한 개념은 아예 설 자리가 없어졌다. 노조의 불법 파업 행위로 기업에 끼친 손해를 면책하자는 법 같은 것이 만들어진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어져 버렸다.

진보당 같은 정당은 아예 대놓고 위헌 입법을 요구하기도 한다. 국회는 2021년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이 터져 나오자 택지 개발 관련 미공개정보 이용행위에 최고 무기징역 또는 부당이익의 3~5배에 달하는 벌금을 물리고 취득한 재산은 몰수한다는 내용의 법을 제정했다. 다행히 법 시행 전 사례는 적용 대상에서 배제되었다. 그런데 진보당은 해당 법을 국회의원에 대해서부터 소급 적용할 것을 요구하며 거리 시위에 나섰다. 그래도 대한민국 헌법에 의해 설립된 공적인 정당인데, 대놓고 헌법 파괴를 요구하는 것이 우리나라 법치주의의 현실이다.

정치인들의 그런 행태는 대중이 헌법보다 당장의 감정을 더 중시하기 때문이다. 부동산 커뮤니티의 댓글들을 보면 그런 사정을 잘 알 수 있다. "왜 임대차법은 소급 적용했나" "투기꾼은 소급 적용이 안 되고 집주인과 임대인은 소급 적용 대상인가" 등의 불만이 쏟아진다. 억울하고 약 오르는 심정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소급입법은 헌법 위반이다. 소급 적용된 임대차법을 바로잡을 생각은 하지 않고, 다른 법률까지 위헌 상태로 만들자는 것이 대중의 정서가 되어 있다.

나라의 주인, 다수의 국민이 법치주의에 심각한 위협으로 등장했다. 현대적 헌법은 바로 그런 위험에 대비해서 만들어졌다. 잠깐 그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자.

현대적 헌법은 1776년 독립한 미국에서 출발했다. 그 이전에는 나라의 주인이 왕이었고, 왕 마음대로 나라를 다스렸다. 특이하게도 영국만은 왕의 횡포를 막기 위한 여러 가지 장치들을 발전시켰다. 이 나라를 민주주의 뿌리라고 부르는 이유다. 그에 바탕을 둔 절제된 통치, 즉 입헌 군주제가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강력한 나라로 만들어줬다.

새로 태어난 미국의 주인은 왕이 아니라 유권자, 즉 대중이었다. 대통령, 의회의 의원이 통치하기는 하지만 결국 유권자의 뜻에 따라야 했다. 독립운동가들, 건국의 아버지들은 그 대중의 변덕과 탐욕을 무척 우려했다. 그래서 어떤 입법으로도 뺏을 수 없는 국민 각자의 기본권과, 대통령과 입법자들의 임기 및 권한의 한계 같은 것들을 명문화한 후, 웬만하면 고치기 힘든 법으로 만들었다. 그것이 현대적 헌법의 출발이다.

우리나라도 건국과 더불어 그런 헌법을 제정했다. 그런데 그 헌법이 무시되고 있다. 헌법 설계자들이 우려했던 그 유권자 대중의 감정에 의해서.

경영자가 절제와 원칙을 잃을 때 기업은 파멸에 이른다. 국가 역시 다르지 않다. 주인인 다수 국민이 절제와 원칙을 잃으면 나라는 혼란과 파멸로 치닫는다.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가 대표적 사례다. 민주국가 대한민국도 이런 나라들을 닮아가는 것 같아 두렵다.

김정호 서강대 대학원 겸임교수·김정호의 경제TV 대표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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