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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마을자재병원 능행스님 “선한 이는 죽음의 질도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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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황의중 기자

승인 : 2024. 04. 02. 13:42

불교계 첫 호스피스 병원 설립...전문기관으로 운영
다양한 임종 지켜보며 죽음에 대한 준비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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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마을자재병원 이사장 능행스님과 동백꽃. 불교계 최초로 호스피스 병원을 설립한 능행스님은 죽음을 못 받아들이던 환자에게 동백꽃 비유로 회심시키기도 했다./사진=황의중 기자
울산 정토마을자재병원 이사장 능행스님(64)은 최초로 불교계 호스피스 전문병원을 지은 '죽음 전문가'다. 스님이 죽음이 임박한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호스피스 일을 하게 된 것은 타 종교 병원에서 임종을 맞은 스님을 보면서다. 개종 압박을 받으며 생의 마지막을 의탁하는 모습에 능행스님은 불교 호스피스 병원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이후 1999년 충북 청원군 미원면에 15병상의 '정토마을'로 첫발을 내딛었다. 2013년에는 울산 울주군에 병원을 열고, 2022년 말 보건복지부로부터 '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기관'으로 지정받아 운영 중이다.

최근 정토마을자재병원에서 만난 스님은 우리 사회가 갈수록 세속적·물질적으로 변하면서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스님은 선한 이는 암마저도 '착하다'며 죽음의 질을 높이는 선한 삶과 지혜 닦음을 강조했다. 다음은 스님과 나눈 대화다.

-많은 사람의 임종을 함께 하셨다. 죽음에 대해 준비가 된 사람이 많지 않았을 것 같다.

"정확한 통계를 낼 수 없겠지만 경험상 매우 적다. 자기 죽음에 대한 준비와 사후 세계에 대한 앎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은 5000만명 국민 중에 1만명 정도 될까 싶다. 그나마 웰다잉(Well-Dying·존엄사) 운동과 세월호 사건, 코로나19로 과거보다 늘어난 셈이다. 특히 코로나19는 당장은 멀쩡해도 언제든 내가 죽을 수 있다는 인식을 가져다준 것 같다."

-현재는 어떤가.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과거보다 늘었나.

"안타깝게도 전혀 아니다. 처음 이 일을 할 때보다 사람들의 삶에 대한 집착이 더 강해진 것 같다. 저는 우리나라가 고령화를 뛰어넘어 초고령화 사회가 될 걸로 본다. 말기 암 판정에 절규하고 한탄하는 것도 과거 일이 됐다. 지금은 독한 항암제에 어떤 수단을 쓰든 살려고 한다. 갈수록 오감 만족만 극대로 추구하는 사회가 되다 보니까 결국에는 죽는다는 사실 자체를 머릿속에서 지우고 사는 것 같다. 대부분 죽음에 대해 준비 없이 마지막까지 생에 집착하다가 숨이 끊어진다. 안타까운 건 죽은 다음에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망자에 대한 애도조차 사치가 됐다. 가족과 제대로 된 이별 의식도 치르지 못하고 사망 판정 후 시신은 냉동고에 보내져 48시간 안에 화장터에서 유골함으로 돌아오는 시대다. 죽음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찾기 힘들어졌다."
-죽음을 제대로 준비한 사람의 임종은 다른가.

"놀랍게도 다르다. 천주교에서 선종(善終·거룩한 끝맺음)이란 말을 쓰는데, 이런 분들은 말 그대로 선종하신다. 이분들의 공통점은 죽음에 대한 성찰이 돼 있고 평소 선업(善業)을 닦아왔다는 것이다. 선한 사람은 심지어 암마저도 착하더라. 말기암임에도 통증이 덜해서 약을 덜 쓴거나 안 쓰기도 한다. 선한 이의 죽음은 질적으로 우수하더라."

-가장 기억 남는 사례가 있다면.

"우리 병원 와서 3개월 정도 있다가 가신 45세 비구스님이 떠오른다. 이분은 위암에 걸리자 남보다 빨리 떠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쓰던 물품을 정리하고, 병원비·어머니에게 드릴 돈까지 다 준비했다. 또 한국에 다시 태어나 공부를 이어가겠다며 전국 7개 선방에 남은 돈을 보시했다. 그 스님은 위암 말기였음에도 합병증이 없었다. 죽는 날 아침에는 깨끗이 씻고 삭발한 후 승복을 갖춰 입었다. 그러고는 '스님, 제가 오늘 갈 것 같습니다. 제 옆에 잠시 계셔주세요'라고 말했다. 이후 어머니가 오길 기다렸다가 모친께 마지막 절을 올린 뒤 방에 돌아와 앉아서 조용히 임종하셨다. 안팎으로 준비하고 생사 앞에 당당한 기백이 정말로 훌륭했다."

-자재병원에 와서 극적으로 달라진 사례가 있나.

"70세 가까이 되는 환자가 있었는데 이분은 죽으면 모든 게 끝이며 아무것도 없다고 믿는 분이었다. 자재병원에 와서까지도 죽음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셨다. 병원 정원에 있는 동백꽃 앞에서 그분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꽃이 떨어져도 동백꽃은 뿌리가 있기에 다음 해 다시 꽃이 핀다는 비유로 그분의 마음을 돌릴 수 있었다. 그분도 더 이상 살기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다만 감정적으로 못 받아들이면서 분노에 사로잡혀 있었다. 화 때문에 병의 고통도 심했다. 그런데 진심으로 죽음을 받아들이고 다음 생을 진지하게 준비하니까 사람이 달라지더라. 지난 삶을 참회하고 자식과 좋은 관계를 회복하면서 비교적 편안하게 가셨다."

-아름다운 임종을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

"종교와 상관없이 무조건 수행하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 참선이든 염불이든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내 마음이 선해지고 선한 행동을 하게 만드는 수행이면 된다. 그래야 죽음도 선해지고 병도 선해진다. 자재병원은 지혜 없이 사라지는 많은 생명들이 좋은 성품의 씨앗을 가지고 다시 태어나도록 돕는 곳이다. 이생보다 더 나은 생으로 나와 열반으로 향하도록 돕고자 한다. 모든 생명체는 생주이멸(生住異滅)한다. 젊든, 늙든, 언제, 어디서든 죽을 수 있다는 건 변함없는 진리다. 죽음에 대해 탐구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인 사성제(苦集滅道)를 깨닫게 해주고 선행과 해탈로 이끄는 유익한 일이다."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경전이 있다면.

"반야심경이다. 깨끗한 것도 더러운 것도 없고, 늙고 죽음도 없다는 반야심경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호스피스 병원 일은 감당하지 못 했을 것이다. 그다음으로는 금강경, 법화경을 중요하게 본다. 특히 법화경은 우리 정토마을 공동체의 소의경전(의지하는 근본 경전)이다. 법화경은 어떻게 하든, 어디로 가든 결국 부처가 되는 길로 가고 있다는 '일불승(一佛乘)' 사상이 있기 때문이다."

-죽음이 다가 오는 줄 모르고 사는 사람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씀은.

"죽음은 고치에서 나비가 되는 극적인 변화며 건널 다리와 같다. 외면하지 말고 거부하지 마라. 근심하든 근심하지 않든 죽음은 그것과 아무 상관 없다. 죽음은 언제든지 우리의 목숨을 거둬간다. 내 노력이 통하지 않는 분야가 죽음이다. 많은 이의 임종을 곁에서 보니까 대책 없이 살던 사람은 대책 없이 죽더라, 그런 분이 다시 태어난들 다음 생에 탈출구가 있겠냐. 불법(佛法)을 공부하는 것은 이 같은 무지에서 벗어나고자 함이다. 죽음의 질은 부자와 가난한 이, 스님과 일반인을 따지 않는다. 그저 그 사람의 선한 업보와 생사에 대한 통찰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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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마을자재병원 병원 시설 옆에 자리잡은 간월사. 간월사는 스리랑카에서 가져온 진신사리와 티베트에서 가져온 사리가 모셔져 있다./제공=정토마을자재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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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월사에 모셔진 부처님 앞에서 기도하는 능행스님./제공=정토마을자재병원
황의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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