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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선 칼럼] 4·10 총선이 소환한 슘페터와 하이에크의 경고

[최준선 칼럼] 4·10 총선이 소환한 슘페터와 하이에크의 경고

기사승인 2024. 05. 06.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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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슘페터, "반자본주의 세력에 대한 효과적 대응의 실패"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로 잘 알려진 슘페터(Joseph Alois Schumpeter)는 그의 책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에서 자본주의의 종말을 예측한다. 그는 자본주의를 채택한 국가가 성공하면 사회주의 국가로 진화한다고 했다. 자본주의 내 지식인 집단이 합리적으로 자본주의를 공격하면 자본주의는 방어할 수 없으며, 사회는 전체적으로 반자본주의적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고 결국은 사회주의의 길을 밟게 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스스로 키운 반자본주의 세력에 대해 효과적으로 맞서지 못하는 이유를 슘페터는 이렇게 설명했다. 자본주의 체제의 지배자이자 주인공들은 사고방식 자체가 합리적인 인간들일 뿐 아니라, 직접적인 무력을 가지고 있지도 못한 무기력한 존재들인 반면, 반자본주의자들은 매우 조직적이고 강력하며 대중적 조작과 선전에 매우 능한 상태에서 매스 미디어의 등장은 이를 더욱 촉진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4·10 총선, 사회주의 색채 정당의 승리
지난달 10일 한국 총선 결과 자유시장경제를 신봉하는 정당이 사회주의적 색채를 가진 정당에 완패했다. 현상유지일 뿐 완패하지는 않았다는 주장도 있지만, 자기 위로일 뿐이다. 합리적 시장주의자들은 스스로 판단해 투표하지만, 반(反)자유시장 세력들은 맹목적으로 투표한다. 지난 총선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민심은 언제나 옳다"거나,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들어" 등의 말들이 난무하기도 했다. 허무맹랑한 말이다. 국민의 수준을 완전히 오해했다. 영악한 민심은 이익에 따라 움직였을 뿐이다. 밴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은 "상대를 설득하고 싶다면 이성이 아니라 이익에 호소하라"고 했다.

히틀러(Adolf Hitler)는 "생활고에서 벗어나 더 나은 삶을 살게 해 주겠다"고 약속해 정권을 잡았다.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는 "자기 땅을 잃으면서까지 조국의 통일을 바라는 사람은 없다"고 했고, "아비 죽인 원수는 세월이 가면 잊히지만 아내와 땅을 빼앗아간 사람은 죽어도 잊지 못한다"고 그의 책 '군주론'에 썼다. 모두 거창한 명분이 아니라 이익이 사람을 움직인다는 것을 말해준다. "가장 효과적인 보상은 경제적 보상이다."

◇"아무리 불만 있어도 민주당의 손을 잡는 호남의 이해관계"
조귀동씨는 "중앙 정치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아무리 불만이 있어도 민주당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다는 게 호남의 이해관계"라고 썼다('전라디언의 굴레', 135면). 국민의힘 당에는 '책임당원'이라는 게 있고, 더불어민주당에는 '권리당원'이라는 게 있다. 전남과 전북 및 광주의 인구대비 권리당원 비율은 영남의 인구대비 책임당원 비율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지역에서 웬만한 사람은 다 당원인 셈이다"(위의 책, 104면). 호남 사람들에게 뭐라 할 건 없다. 당원이 자기 당에 투표하지 어디다 투표하겠나.

민주당은, 민심은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는 점을 확실하게 알고 있고, 알고 있는 바를 현실에 적용했다. '민생지원금 25만원 공약'이 그렇다. 문재인 정부의 코로나 지원금처럼 민주당은 이 공약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뭐라도 주려고 애쓴다"는 인상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 이 공약을 지키려면 최소 13조원이 소모되는데, 이 돈이면 전기차 공장을 7개 세울 수 있고, 최신형 APR 1400 원전 2기 이상 만들 수 있다고 한다(박정훈). 허공에 뿌리는 이 돈은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고, 치솟는 물가를 더욱 높여 이 정권 후반기 경제는 더욱 추락하고, 민심 이반은 심화된다.

그렇게 되면 3년 후 대통령 선거에서는 자유시장경제를 신봉하는 후보는 반드시 패한다. 야당 대표는 대통령과의 면담에서도 이 공약을 관철시키려 무던히 애썼다. 대통령은, 현명하게도, 거절했다.

◇자유시장 덕에 빠르게 성공한 한국경제, 이제 무너지나
한국은 과거 자유시장 경제 원칙을 충실히 따랐기에 30년이라는 단기간에 성공한 시장경제 국가로 성장했다. 서서히 성숙한 자본주의와는 달리, 성장 속도가 빠른 만큼 늙는 속도도 빠른 것일까.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한국 경제 기적은 끝났다"고 진단했다. 슘페터의 말대로 사회주의로의 진입이 목전에 다다르고 있다고 본다.

토드 부크홀츠(Todd G. Buchholz)는 그의 책 '다시, 국가를 생각한다'에서 경제적 번영에서 출발해 쇠퇴기로 접어드는 데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고 썼다. 빈곤에서 탈출한 경제적 번영은 출산율 저하와 공공부채의 증가로 파국이 시작된다. 공공부채는 무분별한 복지와 비대한 관료조직으로 이어진다. 사회갈등은 미봉책으로 대응하며,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는 늘고, 사회는 부패해 결국 몰락으로 치닫는다는 것이다. '전 국민 25만원 지급'은 무분별한 복지의 전형이다. 지난 정권 5년간 공무원 수는 15만명 늘었고 인건비만도 9조원 이상 늘었다. 사회갈등에 대한 해결에는 손을 놓아 의대 정원이나 국민연금 개혁이란 시한폭탄은 차기 정권으로 넘겼다. 부크홀츠의 분석 딱 그대로다.

현 야당 대표가 사회주의자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포퓰리스트인 점은 분명하다. 그가 포퓰리스트가 된 이유는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대통령이 되고야 말겠다는 집념 때문이다. 대중은 장기적으로는 손해가 나든 말든 당장 자기에게 사탕을 주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고 실천할 힘과 지지 세력이 있다. 합리적 자유시장경제 주체들은 무기력하고 맞설 무기도 없다.

◇"사회주의는 노예의 길" 갈파한 하이에크를 배워야
슘페터의 '사회주의 도래론'은 사회주의가 필연적으로 도래한다는 주장이라기보다는 자본주의 사회에 경고를 보내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사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Hayek)는 그의 스승 루트비히 폰 미제스가 시작한 '사회주의 계산' 논쟁에서 사유재산을 철폐해서 이의 거래를 통한 가격의 생성이 불가능한 사회주의 계획경제는 작동할 수 없음을 이미 논증했다.

그리고 그는 그런 사회주의 사회로 가는 길은 노예의 길이라고 일갈했다(김이석 번역, '노예의 길' 참조). 이런 하이에크의 가르침을 지식인과 일반인들이 제대로 인식하게만 될 수 있다면, 그런 참담한 노예의 길로 가지 않을 수도 있지 있을까.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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