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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율의 아테네에 길을 묻다] 대한민국은 안세영 선수에게 답하라 <下>

[한상율의 아테네에 길을 묻다] 대한민국은 안세영 선수에게 답하라 <下>

기사승인 2024. 08. 20.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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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 직전까지 내몰렸던 아테네가 겪은 5000년의 고통이 '디오니소스'적 창조성을 되살려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다. 우리 민족도 3000년에 걸쳐 추위와 굶주림에 맞서면서 중앙아시아 이식쿨 호수를 지나 알타이 산맥을 넘어 한반도로 들어왔다. 이런 고통 속에 길러진 창조적 역동성이 '아폴론'적 권위주의와 피라미드식 계층적 위계에 저항한다. 그런 저항이 표출된 것이 바로 안세영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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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율 전 국세청장
3200년 전 그리스를 포함한 지중해 연안에 극심한 한발이 300년 넘게 이어졌다. B.C. 1150년 무렵 지중해 연안의 청동기 문명은 몰락하였고, 암흑 속으로 사라졌다. 그중에서도 아테네의 피해가 가장 심각하였다. 지금도 아테네가 있는 그리스의 아티카 지방은 연간 강수량 450㎜ 미만의 반(半)사막성 기후다.

이곳은 다른 지역보다 더 혹독한 가뭄이 100년 이상 더 지속되었고, 아테네는 멸종되기 직전의 상태까지 내몰렸다. 그야말로 기아의 고통과 죽음의 공포로 점철된 암흑기 400년이었다.

우리 민족이 겪은 고난 또한 그에 못지않다. 중앙아시아의 이식쿨 호수를 출발한 우리 민족은 북동쪽으로 길을 잡고 알타이 산맥을 넘어 훕스골 호수를 거처 바이칼 호수로 이어지는('쿨', '골' '칼'은 우리말의 '호'로 이어진다) 남(南)시베리아 루트를 지나왔다.

이들은 3000년에 걸쳐 극한의 추위와 굶주림에 맞서야 했다. 2000년 전 천신만고 끝에 만주벌판을 거쳐 한반도에 들어온 이후에도 그들의 고난은 끝나지 않았다. 홍수와 가뭄이 반복하여 교차하는 몬순기후 아래 벼농사를 짓는 일은 목숨을 건 도박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메마른 땅의 소나무가 더 많은 솔방울을 매단다. 열악한 생존 조건이 강한 생명력의 반작용을 불러온다는 증거이다. 아테네도 그러했다. 400년 암흑기의 참혹한 고통이 위대한 문명을 잉태했고, 지금은 우리가 누리고 있는 지구 문명의 초석이 되었다. 호머(Homer)는 일리아드(Iliad)와 오디세이아(Odysseia)에서 아킬레스(Achiles)와 오디세우스(Odusseus)를 통하여 아레테(Arete, 탁월함의 추구)를 가르쳤고, 신에게도 굴복하지 않는 자유의지를 일깨웠다.

디오니소스 축제(Dionysian Festival)는 고통에 지친 사람들에게 강인한 생명력의 에너지를 되살려 주었고, 아테네의 비극은 고통을 기쁨으로 승화시켰다. 이렇게 되살아난 생명 의지와 기쁨으로 승화된 고통이 문명창조의 강력한 원동력이었다. 이것이 바로 디오니소스적 창조성의 비밀이다.

지금 대한민국도 고대의 아테네와 똑같다. 5000년의 고통이 잉태한 디오니소스적 창조성이 권위적인 아폴론적 질서의 딱딱한 껍데기를 깨고 밖으로 나오려고 안에서 꿈틀대고 있다. BTS, 블랙핑크, 기생충, 오징어 게임, 임윤찬, 안세영 등등은 그 시작에 불과하다. 아니, 시작도 되지 않았다. 아직은 맛보기일 뿐이다.

조선왕조 500년간 굳어질 대로 굳어진 아폴론적인 권위적 절서와 피라미드식 산업사회의 유물인 상명하복의 계층적 위계를 깨뜨리기만 하면 디오니소스적 창조의 내재적 역동성(力動性 Dynamism)이 폭발할 것이다. 이것은 이미 2002월드컵 때 증명되었다.

지금 지구 문명은 "대~전환(大~轉換, The Grand Conversion)"의 소용돌이 앞에 서 있다. 반도체와 AI, ChatGPT가 몰고 올 이 대전환의 본질은 두뇌의 확장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에 걸맞은 새로운 문명이 탄생해야만 한다. 그런 일을 감당할 아폴론적 이성과 디오니소스적 창조성을 아울러 지닌 민족은 흔치 않다. 어쩌면 우리 민족이 유일할지도 모른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것이 넘치도록 충만하다.

문제는 어떻게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든 아폴론적 권위주의의 뿌리를 캐내고 단단하게 굳어버린 피라미드를 허무느냐에 달려 있다. 하여, 안세영 선수가 던진 질문의 시초는 물론 체육계를 향한 것이었지만, 그 해답은 정치권과 정부, 공공기관, 학계, 언론계, 문화예술계, 그리고 기업과 산업현장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 분야의 뼈를 깎는 혁신적 변화에서 찾아야 한다. 그것은 한마디로 우리 사회의 곳곳에 널려있는, 그리고 우리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피라미드를 허무는 일'이다.

그리하여, 안세영 선수가 쏘아 올린 작은 셔틀콕이 부디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의 하늘로 높이 높이 날아올라 '새로운 지구 문명'의 신호탄이 되기를 염원해 본다.

한상율 (전 국세청장)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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