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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자동차 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현대차와 기아마저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의 영향권에 들자 우리 정부도 칼을 빼 들었다. 정부는 지난 4일 ‘미래차·반도체 연대 협력 협의체’를 발족한 데 이어 차량용 반도체 국산화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내년까지 연구·개발에 2047억원을 투입한다고 선언했다. 이 같은 정부 정책에 대한 후속 조치로 민관도 지난 17일 ‘차량용 반도체 수요 업체·팹리스 기술교류회를 열고 양해각서 체결을 통해 상호 협력을 약속했다.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 장기화 대책을 모색하는 한편 생산라인 증설, 기업 간 공동 기술 개발 등을 통해 1대당 2000개 이상의 반도체가 들어가는 자율주행차 시대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정작 국내 반도체·완성차 업계 안팎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차량용 반도체 생산을 위한 설비를 아직 갖추지 못한 데다 향후 생산공정 확보를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자금 투입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기존 주력 제품인 D램,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보다 제조·품질 관리가 까다롭고 수익성이 불투명한 점도 이들 기업이 차량용 반도체 개발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배경으로 지목된다. 무엇보다 차량용 반도체 특성상 생산설비를 한번 교체하면 다시 변경하기까지 최대 한 달 반 이상이 걸리는 만큼 그 사이 반도체 공급이 다시 원활해지면 기업으로서는 투자 금액을 회수하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만약 정부가 차량용 반도체 국산화에 성공하더라도 국내 완성차 업계가 이를 실제 적용할지도 미지수다. 차량용 반도체의 경우 높은 안전성과 보안성이 필수적인 데다 진입장벽이 높아 후발주자인 우리나라의 경우 단기간 내 성과를 내기 어려운 탓이다. 10여 년 전 산업부 주도로 삼성전자가 차량용 반도체를 개발하고 현대차가 이를 신차에 적용하는 계획을 추진했지만,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던 사례도 차량용 반도체 시장의 높은 진입장벽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전기차, 수소차, 자율주행차 등 미래차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단기 미봉책이 아닌 정부의 실효성 있는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