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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칼럼] ‘출산’이 아닌 ‘가족’을 지원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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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4. 03. 12. 17:48

여성의 권리이자 선택인 출산을 여성에게 강요하는 출산지원은 실효성 없어
종합적인 가족지원 정책으로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자녀를 양육할 수 있게 해야
전향적인 이민정책과 함께 진정한 일과 가정의 양립을 가능케 하는 노동시장의 개혁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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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노력한 지 거의 20년이 되었다. 합계출산율이 1.09명을 기록한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 기본법'이 제정되었고 2006년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이 채택되어 5년마다 수립되고 있다. 그러나 합계출산율은 2012년 1.3명 이후 지속 하락하여 2018년 0.98명 이래 1명 미만이 지속되면서 2023년 0.72명이 되었다. 지방소멸을 넘어 인구소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사실 저출산 현상은 선진국들이 모두 겪는 문제다. 산업구조가 변화하고 여성들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서 경제활동도 증가하고 사회문화적으로 가족의 의미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가족 전체를 위한 충분한 임금이 보장되지 않는 한 기혼 여성의 경제활동은 불가피하다. 여성들의 교육 수준과 직업적 역량이 높아지면서 여성 자신도 경제활동을 원한다. 그러나 여성이 육아를 비롯한 가사노동을 전담하면서 남성은 가사노동의 보조자 역할에 머무르는 사회에서 여성에게 출산을 요구하는 것은 불공정하다. 노동시장의 근본적 변화 없이 '일과 가정생활의 양립'을 강조하는 정책은 여성들이 가정과 직장에서 이중 노동에 시달리도록 만든다. 좋은 의도를 가진 출산 지원정책은 현실적으로는 가족뿐만 아니라 국가가 여성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결과를 낳고 실효성도 별로 없다.

더욱이 한국을 비롯한 초저출산 현상을 겪는 아시아 국가들은 결혼을 전제로 하는 출산만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때문에 여성이 스스로 임신과 출산을 선택하기도 어렵다. 저출산 극복정책이나 가족정책이 결혼제도의 틀 내에서 이루어지게 되면 비혼(非婚)을 원하는 인구가 늘어날수록 지원정책의 실효성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정부의 재정지원은 증가하지만 비혼 인구가 늘어가면서 출생률도 하락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서만 출생을 합법화하는 제도들과 사회적 인식의 전면적 개혁 없이 저출산을 극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합계출산율이 2020년 기준 1.82명이고 지난 40년 동안 상대적으로 높은 출산율을 유지하고 있는 프랑스의 비결은 이민 인구의 증가와 함께 결혼을 출산의 전제조건이 아니라 출산과 분리하여 인식하고 있는 점이다. 2022년 기준 출산아의 부모 모두 프랑스인인 경우는 4분의 3 정도이며, 혼외 출산아의 비중은 1994년 37.2%에서 2022년 63.8%로 증가하였다. 특히 프랑스 정부는 출산 자체를 강조하기보다 가족이 아동의 최소한의 삶 수준을 보장하고 자녀를 양육하고 출생과 교육에 따른 금전적 부담을 감당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가족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프랑스의 가족정책 수단은 아동수당, 가족수당, 주거급여 등 현금지원부터 유급휴가, 보육시설, 사회서비스, 임산부 의료서비스, 조세지원 등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일용직 근로자도 양육을 위해 휴직하는 경우 수당을 받을 수 있다. 가족 급여의 대상이 되기 위해 자녀를 양육하는 사람과 자녀 사이에 친자관계가 있을 필요도 없다. 입양이나 형제, 조카 혹은 혈연관계가 없는 위탁 아동의 양육에 대해서도 정책적 지원이 동일하게 이루어진다.

특히 가족 급여는 부모 중 한 사람이 일하지 않거나 파트 타임으로 일하는 가족에게 더 많이 제공된다. 다양한 보육시설은 있지만, 기본적으로 부모 중 한 사람이 아동을 가정에서 온전하게 돌보는 것을 주요한 정책목표로 하고 있다. 모성 유급휴가 기간은 출산할 아이와 이미 양육을 책임지고 있는 아동의 수에 따라 달라진다. 가족 지수를 만들어 가족의 구성, 아동수나 부모들의 상황을 반영하는 소득세 체계도 가지고 있다. 가족 급여와 가족 지수 모두 아동들의 수에 따라 차등화된다. 부유한 가정에 대한 혜택을 제한하기 위해 지원 한도 및 소득 수준 등도 고려한다. 프랑스의 다양한 가족정책이 출산율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출산 지원정책보다는 가족 지원정책이 더 실효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출산은 여성의 권리이자 선택이다. 여성에게 출산을 강요하는 정책이 아니라 가족정책의 확대와 강화가 필요하다. 출산 지원의 목적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출산이라는 행위에 대해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임신과 출산을 선택한 여성과 태아의 건강을 지원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출산율 상승은 가족 지원정책의 성과물이지 목표 자체가 될 수는 없다.

따라서 출산 지원에서 가족 지원으로 정책 패러다임이 전환되어야 한다. 출산율 제고에 급급한 정책이 아니라 단기적으로는 저출산에 맞추어 사회경제적 구조를 재편하면서, 중장기적으로는 가족정책을 통해 출산율 제고를 위한 사회문화적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가족 지원정책의 확대를 위해 결혼과 그를 통한 자녀로 구성되는 혈연 기반의 가족 개념을 넘어 입양가정뿐만 아니라 위탁 가정이나 비혼 가정, 한부모 가정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이를 통해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 프랑스뿐만 아니라 미국을 비롯하여 유럽에서 이민자의 높은 출산율을 고려해 보면 노동력과 인구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전향적인 이민정책도 필요하다.

가족 지원정책으로만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으므로 다양한 정책 조합과 제도적 개혁도 필요하다. 많은 부모가 가능하면 보육시설보다는 가정에서 보육하기를 원한다. 경제활동이 필요한 여성들을 저임금 임시직에 취업하도록 하거나 일과 가정에서 이중으로 착취하는 정책을 벗어나야 한다. 보육과 양육을 하면서 경제활동을 원하는 부모들을 위해 전일제 정규직보다 노동시간만 짧은 좋은 시간제 정규직을 제도화하여 진정으로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전일제 정규직 중심의 경직적인 노동시장과 임금체계를 전면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정책적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행정부 내 모든 부처 사업에 가족 지원이라는 개념이 일관되게 반영되는 것도 필요하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김은경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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