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가 법치 위에 서고, 정치적 힘이 공정과 상식을 뒤엎는 사회
- 기본으로 돌아가 거짓말과 폭력에 대해 국민과의 소통으로 대처해야
- 법치가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돼
- 다수를 앞세운 저질 정치에 품격 있는 정치로 맞서야
- 여당은 책임공방을 멈추고, 자중자애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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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사회에서는 도덕적 기초가 허물어지고 있다. 권선징악의 도덕감정은 약화되고, '강함이 정의'가 되는 사회가 돼버렸다.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사는 중대범죄혐의자와 이미 1, 2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이 대한민국 국회 의석수 3분의 2에 육박하는 정당을 지휘하고 있다.
이제 그들이 마음먹은 대로 의회독재가 현실화될지 모른다. 국민들은 아직 그것이 국민의 삶과 나라의 미래에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그 길로 가는 마지막 게이트를 대통령의 거부권과 여당의원 108명이 힘겹게나마 지켜낼 수 있을지 걱정되지만, 이 108명이 비록 양으로는 소수일지라도 질적으로 높은 차원에서 의정활동을 할 수만 있다면 의회독재로부터 이 나라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는 철학의 빈곤이다. 사회의 도덕적 기준이 심하게 낮아졌다. 정치지도자가 심하게 부패하고, 심하게 거짓말하고, 힘으로 진실을 덮으려고 하지만 지난 총선에서 보듯이 우리 국민이 이를 보고도 표를 주니까 그들은 부패하고 거짓선동하면서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정치가 법치 위에 서고, 정치적 힘이 공정과 상식을 뒤엎는 사회에 살게 되었다.
사회적 상징을 생산하는 문화계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진보 여성운동가는 공공 토론장에서 말한다. "우리가 결혼하는 이유는 금전적, 성적 만족을 얻기 위해서다." 그동안 사회에서 가족애의 소중함 속에 간수해 놓았던 인간의 탐욕이 부끄러움 없이 튀어나온 모습이다. 폭력 영상물이 과도하게 범람하고 있다.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아도 너무 심하게 욕하고, 고함치고 때린다. 학교폭력은 교실을 위협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독일에서는 평화교육(Friedenserziehung)이 1970년대에 시민운동 차원에서 시작되어 점차 정부 정책으로 정착되었다. 그 결과 영화 검열에서 폭력 콘텐츠는 엄격하게 관리되고 적나라한 폭력의 서술은 제한되고 있다. '평화'를 북한과의 화해적 관계라는 한정적 의미로 쓰고 있는 우리와 대조적이다. 폭력시위와 폭력 콘텐츠에 대하여 관대하므로, 미국 대사관저의 담을 넘어 침입하는 폭력행위조차 평화의 이름으로 눈감아 주어야 했다.
지난 총선은 이렇게 막장으로 간 우리사회의 반영이다. 어두움이 극에 달했을 때 이 어두움은 새로운 밝음을 받아들이기 위한 전조가 된다. 우리가 지금부터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그동안 우리 사회에 쌓여 있던 적폐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국가 전진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 요소들을 분석하고 점검할 수 있다.
우선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부와 여당이 가치와 철학을 공유하여야 한다. 그 바탕 위에서 함께 노력하여 이루고자 하는 우리나라 내일의 모습이 비전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오래 탐독한 분이다. 그의 정치참여 연설문부터 대통령취임사에 이르기까지 〈자유〉의 철학이 흐른다. 대통령의 철학이 대통령실의 참모진과 내각과 국민과 공유되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오늘의 문제가 있다. 기업에서 아무리 좋은 제품을 생산하여도 그 제품이 시장에서 판매되지 못하면 그 제품은 재생산될 수 없다. 대통령의 시책이 아무리 옳아도 국민이 이를 수긍하여 사주지 않으면 그 정책은 실현될 수 없다. 대통령의 철학과 정부의 비전이 널리 국민의 가슴속에 퍼질 수 있도록 하려면 대통령실과 정부, 여당이 일체가 되어 국민에 정책마케팅을 하여야 한다. 사실에 기반한 홍보체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다면 선거의 결정적 국면에서 '대파 한 단 875원'의 어처구니없는 공세에 변명 한마디 못 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민주주의의 요체인 법치가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근대사회에 이르러 개인은 개별적 자유를 향유할 수 있게 되었고, 국가는 공화제를 채택하였다. 나의 자유가 중요한 만큼 남의 자유 또한 침해하지 말아야 하는 자유민주주의의 원칙 아래에서 자유를 사회적으로 배분하고, 규율하는 제도적 장치가 법이다. 그러므로 법치의 침해는 전체 국민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며, 국가의 미래 기반을 허무는 것이다.
국민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대통령으로 불러낸 것은 그가 권력의 외압에 맞서서 법치를 지켜냈기 때문이다. 아무리 국회의 절대다수의석을 차지한 권력자라 할지라도 대통령이 그 외압에 흔들리지 않고 법치를 지켜낼 것으로 국민은 믿고 있다.
지난 총선 막바지에 유세판에 뛰어든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정말 제가 칠십 평생 살면서 여러 정부를 경험해 봤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못 하는 정부는 처음 본다"고 하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미 2022 대선에서 승리함으로써 나라를 구했다. 지난 70년간 대통령 중에서 전진하던 대한민국을 후진시킨 유일한 대통령은 전임 문재인 대통령이다.
세계 10위 강국이 재임 중 몇 단계 뒷걸음질 쳤고, 재임 단 5년 만에 400조원이 넘는 국가부채를 추가로 만들었다. 후임 윤석열 대통령에게 물려준 것은 저생산성, 고물가, 고금리 경제에 안보불안의 위기상황이었다. 지난 총선 때 막장공천을 하고도 야당이 크게 재미 본 정권심판론은 집에 불 낸 사람이 불 끄러온 소방수를 심판하겠다는 격이었다. 이번에 국민의 힘은 총선결과를 냉정하게 분석한 백서를 반드시 써야 하고, 동시에 문재인 정부 5년의 실정에 대한 백서 또한 반드시 써야 한다.
야당은 또다시 거짓뉴스, 모략에 이어 돈 풀기로 국민지지를 받으려는 노골적인 포퓰리즘 정치를 하려고 한다. 이에 대해 정부와 여당은 왜 그래서는 안 되는지 끊임없이 국민을 설득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품격 있는 정치로 야당과의 차별성을 부각하는 것이다. 비록 의회의 소수세력이지만, 자중자애(自重自愛)해야 한다. 어렵게 험지에서 신승하고 온 조정훈, 김재섭, 김용태 같은 인재가 중심이 되어 아깝게 낙선한 윤희숙, 구자룡 같은 대한민국의 인재와 힘을 합쳐야 한다. 마지막까지 분전하다가 탈진한 한동훈 위원장 같은 귀중한 자산도 아껴야 한다. 결국 대한민국이 또 다시 후진할 것인가, 아니면 새롭게 전진할 것인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이각범 한국과학기술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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