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람들이 여가 시간을 즐기는 모습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지인들이 모여 밤 늦게 술과 가라오케를 즐기던 문화는 점점 사라져가고, 여가 시간에 여행이나 스포츠, 공연, 전시 등 문화 예술을 즐기는 일이 늘어났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23년 1년간 박물관, 미술관, 연주회 등을 한 번이라도 관람한 적 있는 사람들은 전체 인구의 55.3%로, 이들의 연 평균 관람 횟수는 7회인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 전인 2017년 1인당 문화예술 관람 횟수는 연간 9회까지 증가했으나, 코로나 기간 중 공연이 취소되고 관람이 제한되면서 급격히 감소했던 참여율은 코로나 이후 다시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최근 다양한 OTT 플랫폼의 활성화로 데이트나 여가의 큰 비중을 차지했던 영화 관람을 집에서 즐기면서,야외 활동에서 문화 예술을 향유하는 트렌드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이런 문화예술의 가장 큰 변화 중의 하나는 '디지털 미디어의 접목'이라고 할 수 있다. 2010년 이후 공연, 예술 업계에서 미디어를 접목하기 시작했으며, 지금은 뮤지컬과 공연, 전시 등에 미디어를 활용하지 않은 사례를 찾기가 더 힘들 정도이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중국 아르떼뮤지엄, 일본 팁랩, 영국 엑서비션허브, 프랑스 컬처스페이스. |
요즘에는 미디어만으로 구성된 전시나 공연도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 2019년 12월 프랑스 컬처스페이스의 전시 '빛의 벙커'가 제주에 오픈하면서, 국내 디지털 전시 문화가 열리기 시작했다. 이듬 해인 2020년 9월 세계적인 디지털아트그룹 일본 팁랩의 전시 '팀랩:라이프'와 '아르떼뮤지엄-제주'가 열리면서, 국내 디지털 전시의 트렌드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특히 아르떼뮤지엄은 2020년 제주에 이어, 2021년 여수와 강릉에 아르떼뮤지엄을 연이어 개관했고, 2년간 누적 320만명의 관람객을 모으며 큰 인기를 모았다. 이러한 디지털전시관은 모두 코로나 기간 중에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코로나가 무색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으며, 코로나 종식 이후 이런 디지털 전시의 확산은 더욱 가속화되어 가고 있다. 안타까운 점은, 우리에게 알려진 이런 큰 전시 업체에 '한국 기업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BTS라 칭했던 아르떼뮤지엄을 만든 회사인 디스트릭트는 지분의 87% 이상을 중국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중국 기업이며, 2024년에는 글로벌 전시 업체인 영국의 엑서비션 허브(Exhibition Hub)가 '다이노스 얼라이언스와 반고흐 몰입형 체험' 전시 등으로 한국 진출을 가속화하며, 실질적으로 한국의 디지털 전시 시장은 '중국-프랑스-영국'의 기업들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우리나라 기업들의 움직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 IPO 투자유치를 진행하고 있는 닷밀은 글로우 사파리, 루나폴 등 디지털 전시를 이어가고 있고, 자체 기술과 콘텐츠로 디지털 전시를 이어가고 있는 아이랩미디어는 아이뮤지엄 여수, 군산에 이어 2024년 말, 태국 전시관을 오픈할 예정이다. 하지만 거대 자본과 과감한 투자로 글로벌 진출을 이어가고 있는 해외 기업들에 비하면, 규모나 확산 속도에서 매우 미미한 정도이다. 디스트릭트 역시 작년과 올해 홍콩, 두바이, 라스베이거스에 초대형 디지털 전시관 아르떼뮤지엄을 오픈했으며, 글로벌 전시 회사 중 손꼽히는 일본 팀랩과 프랑스 컬처스페이스, 영국 엑서비션 허브, 중국 아르떼뮤지엄 모두 글로벌 회사로서의 입지를 다지며, 과감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디지털 전시의 트렌드는 현재는 문화 예술 분야에 한정되어 있는 듯하지만, 머지않아 XR, AI기술과 결합되며 우리의 삶 곳곳에 더욱 깊숙이 자리잡게 될 것이다. 또한 이러한 콘텐츠는 단순히 관람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람과 상호작용하며, 유비쿼터스, 메타버스 등 다양한 산업으로 융합되는 확장성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과 유럽의 문화를 배우고 따라가던 우리나라는 어느덧 K-팝을 시작으로 K-드라마, 영화까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문화콘텐츠 강국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K-콘텐츠 파워의 경쟁력이 비단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콘텐츠 산업으로 확장되며, 다음 세대까지 지속적인 콘텐츠 강국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윤현정 시인·아이랩미디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