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13조→62조원 확대…순차입금 감소
배터리사업 회복 우선…올해 투자 마무리
연 5000억원에 달하는 캐시 카우가 적자 상태의 SK온에 더해진 게 핵심이다. 대규모 차입에 따른 이자, 추가 설비투자에 대한 외부 요소를 제외한다면 영업활동 자체만으로는 이익을 낼 수 있는 회사가 됐다는 데 의미가 크다. 이는 SK온의 성장 잠재력을 보여주고, 추가 투자 유치를 가능케 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보다 한발 먼저 천문학적 SK온 설비투자비를 감내하며 부채가 50조원대로 급증한 SK이노베이션이 E&S와 결합해 연 2조원가량의 캐시를 추가로 유입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업계에선 배터리 부진을 계기로, 화학산업 재편을 가장 순발력 있게 추진한 모범적 사례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2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SK온은 이달 1일자로 SK온-SK트레이딩인터내셔널(SKTI)-SK엔텀 3사간 합병을 완료, 당초 그룹이 구상한 'SK리밸런싱' 소기의 목적을 199일만에 이뤘다. 채 200일도 되기 전 결단하고 단행한 속도전으로 평가된다. 3사 합병 법인의 이름은 SK온이다.
SK온의 현상황을 단적으로 얘기하자면 지난해 3분기 기준 6351억원의 대출 이자비용을 내야 했지만 오히려 7676억원의 영업 손실로 이자보상배율도 산정하지 못하는 신세다. 당장 이익을 내는 계열사를 붙여주며 감내하게끔 한 배경이다.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은 국내 유일의 원유 및 석유제품 전문 트레이딩 회사며, SK엔텀은 국내 최대 사업용 탱크 터미널 운영 회사다.
구체적으로 SK온은 3사 합병 전 13조원, 33조원이었던 SK온의 매출 규모와 자산 규모(2023년 말 기준)는 합병 후 각각 62조원, 40조원으로 확대된다. 또 지난해 3분기 기준 8조2393억원인 SK온의 순차입금도 개선될 예정이다. SKTI의 현금성자산은 8844억원(2023년 말 기준)으로, 총차입금(548억원)에 비해 훨씬 많은 상황이라 SK온의 순차입금을 줄이는 데 기여한다.
SK온 측에서는 이번 합병으로 연간 5000억원 이상의 상각전 영업이익(EBITA, 에비타)이 추가될 것으로 내다봤다. 현금 창출 능력을 강조해 신용등급을 올리고 향후 더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SKTI의 에비타는 2021년 6270억원, 2022년 4608억원, 2023년 4533억원으로 최근 3년간 평균 5000억원대의 안정적인 수익을 거두고 있다. 지난해 1월 SK에너지에서 인적분할해 신설법인으로 출범한 SK엔텀은 매 분기 100억원대의 영업이익을 거두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11월 E&S와의 합병을 완료한 SK이노베이션은 그간 SK온의 투자로 인해 쌓였던 부채를 덜 수 있게 됐다. SK이노베이션의 지난해 3분기 말 부채 규모는 53조1760억원, 부채 비율은 166%에 달했다. SK E&S 부채를 합산하면 통합법인의 부채비율은 160%로 떨어진다. 합병회사의 에비타는 합병 전(3조9000억원)보다 2조원가량 늘어나 5조8000억원 수준에 이른다.
다만 SK온의 자체적인 회복이 최우선적인 숙제다. SK온은 지난해에도 연간 1조원에 가까운 적자가 예상되고 있다. 당초 2023년 에비타 흑자, 2024년 영업이익 흑자를 목표로 했으나, 사실상 모두 무산된 것이다. 현재로선 적어도 절반 이상의 손실을 줄여야 SKTI과 엔텀을 등에 업고 연간 흑자를 기대할 수 있는 셈이다.
다행인 점은 SK온은 지난해 3분기 240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며 출범 이후 첫 분기 흑자에 성공했다. 올해는 대부분의 현지 투자를 마무리하면서 생산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미국 포드자동차와 합작한 SK블루오벌의 켄터키주 1공장과 테네시주 공장, 현대차와 합작한 조지아주 공장 가동이 잇달아 예정돼 있다.
미국 내 배터리 생산능력은 기존 22GWh(기가와트시)에서 115GWh로 늘어나며, 업계에서는 지난해 2000억원대였던 IRA(인플레이션감축법) 상 AMPC(생산세액공제)가 1조5000억원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향후 SK온과 SKTI와의 배터리 시너지 효과도 기대된다. 당초 SKTI과 SK엔텀은 석유 사업이 주력이나, 트레이딩이 강점이라는 점에서 리튬, 니켈 등 배터리 원소재 공급망을 확대하는 SK온에 기여할 가능성이 높다. 기존 SK엔텀의 탱크 터미널 자산을 활용한 트레이딩 효율성과 수익성 향상도 꾀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합병 완수는 SK온의 상장 현실화의 발판이 될 전망이다. 당초 SK이노베이션은 2026년 중으로 SK온 상장을 예정했으나, 실적 지연으로 최대 2028년까지 연기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이번 합병으로 기업 가치를 높인다면 기존 계획대로 상장을 추진할 것이란 의견이 제기된다.
SK온 관계자는 "합병을 통한 시너지 창출로 차별적 경쟁력을 확보하고 장기적 성장의 발판이 마련될 것"이라며 "SK온은 성장성과 안정성을 고루 갖춘 '글로벌 배터리&트레이딩 회사'로 거듭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