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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시간] “호구XX 돈 다 뺏자”…軍 동료 극단선택 몰고간 은밀한 제안

[사건의 시간] “호구XX 돈 다 뺏자”…軍 동료 극단선택 몰고간 은밀한 제안

기사승인 2023. 04. 19.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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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대 동료 선임과 공모해 전역한 지 1주일 된 다른 선임병 폭행·강요
"1000만원 돈 조달할 방법 각서 써라"…피해자 김모씨 끌고 다녀
폭행 당일 결국 투신…法 "피해자 극단 선택 예상" 주범 징역 11년
GettyImages-jv11368060
/제공=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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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호구'가 한 명 있는데…. 이 ××돈을 다 뺏어야 해. (우리가) 다 뺏으면 반띵 (하자)."

2021년 7월 29일. 현역병 김민철(가명)이 지인 최승호(가명)에게 은밀한 제안을 했다. 김민철이 지인에게 말한 '호구'는 군 선임이었던 김모씨(같은 해 8월 1일 전역)였다. 최승호는 김씨를 협박해 돈을 뺏자는 김민철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 은밀한 모의에 피해자 김씨의 선임이었던 한인구(가명)도 가담했다. 일명 '서산 손도끼 사건'으로 불리는 비극적 사건의 발단이었다.

김민철과 한인구, 피해자 김씨는 같은 군부대에서 근무했다. 한인구는 '파워볼'이라는 인터넷 불법 도박게임에 빠져 있었다. 그는 대출금을 변제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를 만큼 돈을 잃었다. 이에 김민철은 한인구에게 "김씨에게 강제로 대출신청을 하게 한 뒤 돈을 뺏자"며 범행을 제안했다.

2021년 8월 8일 이른 오전. 한인구는 피해자 김씨를 충남 서산 A아파트 옥상으로 불러냈다. 선뜻 한인구의 부름을 받아들인 피해자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김민철이었다. 김민철은 손에 쥐고 있던 손도끼로 피해자 부근의 벽을 수차례 가격하며 위협했다.

"내가 지금 장난치는 것으로 보이냐."

이후 김민철 일당은 머리채를 잡고 옥상 난간쪽으로 피해자를 밀어냈다. 갑작스러운 린치에 피해자는 몸을 피할 겨를도 없이 추락 위기를 맞아야 했다. 범인들은 피해자 김씨에게 속옷만 걸치도록 했다.

결국 피해자 입에서 한마디가 불쑥 튀어나왔다.

"잘못했어요.."

김민철은 원했던 대답을 듣자 대기하던 최승호에게 연락을 했다.

"(지금) 옥상인데 오자마자 (피해자를) 때려라. 그리고 A4용지하고 인주, 담배 가지고 와."

최승호는 지시대로 물건을 갖고 옥상에 올라왔다. 그리고 최승호의 위협이 다시 시작됐다.

얼마 후 김민철은 피해자 김씨에게 각서를 들이 밀었다. 각서에는 '오후 6시까지 1000만원 구할 해결책을 알려주기로 한다. 불이행시 전 재산을 압류하는 것에 동의한다'는 취지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김민철은 각서를 받자 한인구에게 피해자를 더 괴롭혀 돈을 받아낼 것을 지시했다. 한인구는 피해자를 차에 태워 이날 오전 오전 9시부터 오후 12시까지 서산 일대를 돌아다니며 김씨가 김민철 계좌로 35만원을 송금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한인구는 피해자 김씨에게 "대출 500만원, 적금 500만원으로 하자"는 등 1000만원 조달 방법을 지시하고 협박했다. 결국 피해자는 이튿날인 8월 9일 돈을 주기로 약속하고서야 범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결국 피해자 김씨는 김민철 일당의 금전요구와 폭행·협박에 의한 심리적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는 손도끼 사건이 일어난 당일 오후 4시20분께 협박이 이뤄진 아파트 15층 옥상에서 투신해 생을 마감했다. 이날은 피해자가 전역한 지 일주일 되는 날이었다.

김민철 일당은 이후 수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한인구 징역 10년, 최승호 징역 8년을 선고했고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다만 당시 현역병이었던 김민철의 1심은 군사법원에서 이뤄졌다. 군사법원은 강도치사보다 형이 가벼운 특수강도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5년을 선고했다. 강도행위와 피해자 사망 간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김민철은 민간법원에서 진행된 2심에서 강도치사 혐의가 인정돼 징역 11년을 선고받았다. 2심은 "피고인들은 피해자가 일반인보다 소심한 성격임을 인지하고 있었다"며 "특수강도 범행으로 인해 피해자가 극단 선택을 할 수 있음을 예견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올해 2월 23일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이동원)는 김민철에게 징역 11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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