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시, 독립운동 성지 임청각 복원 박차

기사승인 2023. 08. 16.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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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 이상룡 생가 3대 걸쳐 11명 독립운동가 배출
독립운동 역사문화 가치 재정립
임청각
독립운동의 성지 임청각/안동시
경북 안동시는 독립운동의 성지인 임청각을 전 국민이 공유하는 문화거점 공간으로 형성할 수 있도록 복원 사업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임청각은 영남산 기슭에 위치한 고성이씨 종택으로 도연명의 귀거래사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임청각과 군자정 현판은 퇴계 이황이 썼다고 하며 조선시대 왕이 아닌 사람이 지을 수 있는 최대 규모인 99칸으로 현존하는 살림집 중 가장 크고 오래됐으며 대한민국 보물 제182호로도 지정됐다.

이곳에서 석주 이상룡이 출생했으며 1910년 일제가 한일합병을 감행하자 1911년 당시 54세에 50여 명의 가솔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 서간도로 망명했다.

석주 이상룡은 "공자·맹자는 시렁 위에 두고, 나라를 되찾은 뒤에 읽어도 늦지 않다"며 사당의 신주를 땅에 묻고, 노비문서도 불태우고1911년 정월에 "차라리 내 목이 잘릴지언정 무릎 꿇어 종이 되지 않으리"라며 압록강을 건넜다.

또 무장독립투쟁 자금이 부족하자 아들을 다시 안동으로 보내 임청각을 2000원에 일본인 오카마 후사지로에게 팔고 군자금으로 보탰으며 얼어붙은 만주 땅에서 백만 동포의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항일 독립운동단체 경학사를 만들어 독립정신을 일깨우며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해 독립군을 양성했다.

1925년 석주 이상룡은 초대 국무령을 맡았으나 다시 간도로 돌아와 무장 항일투쟁에 심혈을 기울였으나 끝내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32년 5월 길림성 서란현에서 74세에 순국했다.

석주 일가는 이상룡을 비롯해 부인 김우락, 동생 이봉희, 아들 이준형, 조카 이광민, 손자 이병화, 손자며느리 허은 등 3대를 거쳐 모두 11명의 독립운동 서훈자를 배출했다.

16일 안동시에 따르면 일제가 놓은 철길로 반 토막 난 임청각은 2025년까지 예산 280억원을 들여 일제강점기(1941년) 중앙선 철로가 놓이기 이전의 옛 모습으로 복원되고 있다.

시는 2017년 11월 고성이씨 후손과 관계 기관의 전문가 등 16명 등과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2018년 12월 임청각 종합정비계획을 수립했으며 2019~2020년까지 임청각 주변 가옥과 토지를 매입했고 2021년 12월 임청각 정비 실시설계 용역을 마쳤으며 2021년 12월 구 중앙선 철로가 철거되면서 사업추진이 급물살을 타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임청각은 좌·우측 재현 가옥 2동을 복원하고 도로와 주차장 정비가 이뤄지고 지하 2층 지상 1층 규모로 연면적 800㎡ 공유관 건립도 추진된다. 공유관은 독립운동의 역사문화 가치를 재정립하고 문화·관광·교육하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권기창 안동시장은 "독립운동의 역사와 민족의 정체성이 그대로 남아 있는 임청각은 대한민국의 훌륭한 역사 교육장이다"고 말했다.

한편 석주 이상룡 선생의 독립운동 이야기는 '서간도 바람소리'라는 실경 역사극으로 9월 9일까지 매주 금·토요일 오후 7시 30분에 총 12회에 걸쳐 안동 태사묘에서 상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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