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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용 칼럼]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얻는 교훈

[김영용 칼럼]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얻는 교훈

기사승인 2023. 11. 27.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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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용 전남대 명예교수·경제학
지난 19일(현지 시간) 치러진 아르헨티나 대통령 선거의 결선 투표에서 하비에르 밀레이 '자유전진당' 후보(55.7% 득표)가 '조국을 위한 연합'의 세르히오 마사 후보(44.29% 득표)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유권자들이 후안 도밍고 페론 전 대통령의 집권 이후 아르헨티나 경제를 완전히 망가뜨린 좌파 정권을 심판한 것이다. 페론은 1946~1955년과 1973~1974년 동안 대통령을 지내면서 분배 우선과 폭넓은 사회보장 정책을 실시했고 무자비하게 정적을 탄압했다. 이후 아르헨티나의 경제는 형편없이 망가졌고 군사 쿠데타와 독재가 다반사가 되었다. 페론 집권 이전에 세계 5대 경제 대국이었던 아르헨티나가 작년 1인당 소득 1만3620달러(한국의 1/3 수준)의 그저 축구 잘하는 나라로 전락한 것이다. 이에 유권자들은 자신을 자유주의자라고 칭하는 밀레이를 대통령으로 선택함으로써 아르헨티나의 경제 부흥과 사회 안정을 기대하는 것 같다.

한국의 주요 언론은 거친 언동을 일삼는 밀레이를 트럼프 닮은 극우파라고 표현한다. 이는 물론 언론이나 일반인들이 보기에 그의 공약이 지금까지의 것들과는 크게 다른 파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밀레이는 사유재산을 바탕으로 하는 자유시장경제를 주창하는 우파 정치인일 뿐이다. 이는 "나는 약속을 이행하고 사유재산과 자유무역을 존중하는 정부를 원한다"는 당선 소감과 공영 방송을 포함한 공기업 민영화, 페소화 폐지로 표현된 중앙은행 제도의 문제점 인식 등에 잘 드러나고 있다. 보호무역이 미국의 부를 늘리고 미국의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트럼프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번 아르헨티나의 대선을 계기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은 한 사회의 흥망성쇠를 가름하는 것은 이를 떠받치는 사상과 철학이라는 사실이다. 그런 사실에 따라 아르헨티나의 경제 운용을 국가 주도에서 자유시장으로 전환하여 부흥을 꾀하겠다는 것이 밀레이 당선자의 구체적 계획이다. 그는 자유시장경제 체제가 한 사회를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번영으로 인도하는 길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페소화를 폐지하고 달러를 화폐로 사용하겠다는, 이른바 달러라이제이션(dollarization)을 극단적 공약이라고 비판하지만, 밀레이의 참뜻은 중앙은행의 화폐 공급 증가로 어지럽혀진 경제 질서를 바로잡겠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아르헨티나는 페소화의 막대한 공급 증가로 높은 인플레이션과 페소화 가치 하락을 경험하며 여러 차례의 국가부도 상황에 빠졌기 때문이다. 물론 달러라이제이션을 실천하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이다. 헌법 개정을 거쳐야 하는 등의 어려움도 있지만, 미국 달러 역시 그런 문제를 항상 안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는 장기간의 저금리 정책에 따른 신용 증가에 기인한 것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화폐는 경제·사회 질서의 한 축을 형성하는 교환의 공통된 매개물로서 생산재나 소비재가 아니다. 그런 화폐의 공급을 크게 늘려 복지 등을 위한 정부 재원으로 사용하면 초인플레이션을 야기하여 경제·사회 질서를 근본적으로 파괴한다. 화폐를 법으로 지정하고 공급량을 정부의 자의대로 결정하는 관리통화제도의 심각한 문제점이다. 이 또한 아르헨티나 대선을 통해 명확하게 인식해야 하는 교훈이다.

아르헨티나 유권자들이 에비타 페론의 무덤 앞에 장미꽃을 바치는 측은지심에 인간적 차원을 넘어 이전의 체제로 돌아가려는 생각이 들어 있다면, 아르헨티나는 다시 빈곤의 수렁에 빠져들 것이다. 이번 대선을 계기로 남미의 좌파 세력을 상징하는 핑크타이드가 멈춰 서는 것은 남미 국가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도 바람직하다. 다만 밀레이는 페론 이전의 정권이 왜 페론에게 넘어갔는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검토해 봐야 할 것이다. 비록 오늘의 아르헨티나를 초래한 것이 유권자들의 어리석은 선택의 결과였다고 하더라도, 그 연유를 면밀히 분석하여 좌파에 정권이 넘어가지 않도록 한다면 머지않아 경제 대국으로 올라설 것이다.

지금의 한국 경제는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남미 국가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아주 건전한 편이다. 이는 물론 돈 잘 버는 튼튼한 기업들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전 정권처럼 사유재산을 침해하고 개인과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억압한다면, 그동안 쌓아 올린 부를 탕진하는 데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대중적 인기영합주의에 빠진 남미 국가들의 재판(再版)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현 정권이 이전 정권에 비해 '자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확장에 애쓰고 있는 점이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해 다행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지금 불행한 것은 한국의 미래를 위한 생산적 토론을 공론화하는 지식인들 간의 수준 높은 담론은 사라지고, 파편화되고 설익은 지식의 갑옷을 두르고 좌우 진영으로 나뉘어 다투고만 있는 모습이다. 그런 점에서 대선 기간에 아르헨티나 지식인들이 밀레이 낙선운동을 벌였다는 사실은 아르헨티나의 경제가 침몰하게 된 저간의 사정을 잘 보여준다. 이 또한 한국이 새겨야 할 교훈이다.

결국 한국 경제의 튼튼함과 번영을 위해서는 지식인들과 일반 유권자들이 크게 깨어나야 한다. 내가 땀 흘려 일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내 호주머니에 들어오는 곶감은 우선은 달지만, 곧바로 나와 한국 사회 전체에 독이 되어 돌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고도로 분업화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운행 원리를 외면하고 수렵 채취 시대에 획득한 문화적 DNA에서 탈피하지 못한다면, 한국은 번영은커녕 아르헨티나가 지금까지 경험하고 있는 빈곤과 절망의 늪에 빠질 것이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김영용 전남대 명예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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