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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욱 칼럼] 런치플레이션과 대기업의 역할

[이경욱 칼럼] 런치플레이션과 대기업의 역할

기사승인 2023. 11. 2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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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대기자
서울 종로의 중견기업에 다니는 30대 직장인의 경험담이다. 언젠가 GS건설 본사가 있는 그랑서울 빌딩 지하를 찾았다. 그곳에 구내식당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터라 한 끼 해결하기 위함이었다. 경비원이 "직원증이 있느냐"고 막아섰고 "없다"고 하자 이용할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얼핏 들여다본 식당은 엄청난 규모여서 점심시간임에도 제법 빈자리가 있었다. "나도 이용할 수 있었으면…"

이런 얘기를 들은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GS건설 간부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그 직장인 사례를 말해줬다. 그랬더니 그분은 "요즘처럼 물가가 비싼 상황에서 대기업들이 구내식당을 주변 직장인들에게 개방하면 어떨까 싶다"고 말했다.

구내식당이 일반 음식점에 비해 가격도 저렴하고 위생적으로 관리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나름대로 식단조절도 할 수 있어서 여러모로 이득이지만 외부인에게 개방돼 있는 구내식당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직장인들이 몰려 있는 서울 여의도만 해도 한국경제인협회(옛 전국경제인연합회) 구내식당 정도만 외부인이 이용할 수 있다. 다만 남의 회사 건물에 들어가는 게 눈치가 보여서 외부인 이용은 그다지 많은 것 같지는 않다.

요즘 직장인 사이에서는 런치플레이션(Lunchplation·점심+인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가 유행이란다. 고물가가 장기화하면서 직장인 사이에 점심 한 끼 먹는 게 큰 부담이 되고 있음을 뜻하는 표현이다. 그래서 간편식 도시락을 구매하거나 집에서 준비해 온 도시락으로 한 끼 해결을 추구하는 '도시락족'도 늘어간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몰려 있는 광화문 일대 편의점에는 점심시간 도시락, 삼각김밥 등 간편식이 빠른 속도로 동이 난다고 한다. 간편식이 한 끼를 때우는 데 긴요하기는 하겠지만 건강에는 글쎄다. 하루 종일 사무실에서 일을 해야 하는 직장인의 허기를 채우는 데 부족하지 않을까.

통계청의 '2023년 3·4분기 지역경제동향'에 따르면 올해 3·4분기 전국 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3.1% 올랐다. 전국 평균보다 물가가 많이 오른 지역은 서울(3.7%)로, 1위를 차지했다. KB국민카드가 주요 업무지구 내 신용·체크카드 매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가장 비싼 점심값을 지불한 지역은 광화문(1만6000원)이었다. 1인당 월평균 이용금액 증가가 높은 곳도 강남에 이어 광화문이 2위로, 2019년 대비 약 1300원(12%) 늘었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1만원 초반대에서 때울 수 있는 점심 메뉴가 점점 줄어 밥값을 서로 먼저 내려고 밀고 당기는 우리만의 아름다운 풍경이 사라지고 있는 분위기다.

반면 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구내식당을 찾는 발길이 늘면서 주요 단체 급식 사업자들의 경기가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는 4000~5000원에서 1만원 이내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구내식당의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리라. 급식 사업자의 이런 즐거운 비명과는 달리 식재료 가격 상승에 따라 구내식당 식대도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어 이래저래 알뜰한 직장인들의 지갑은 상대적으로 가벼워지고 있다.

이럴 때 대기업이 나서주면 어떨까 싶다. 대기업들이 외부인들에게 구내식당을 개방해 직장인들이 편하게 한 끼를 해결하도록 하면 좋을 것 같다. 대기업으로서는 보안 문제 등이 난제이기는 하겠지만 지혜를 모은다면 안 될 것도 없다.

정부가 나서서 구내식당 개방 기업에 세제 혜택을 부여하고 원산지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식자재를 공급받을 수 있는 유통망을 갖춰 주는 등 구내식당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제도적 개선에 나서면 좋겠다. 구내식당 주변 음식점들이 불편해하겠지만 외식비 증가에 따른 물가 상승 압박을 사회 전체가 덜어낼 수 있는 만큼 상생(相生)의 장점도 기대해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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