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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철 칼럼] 학자가 만들고, 전쟁이 검증한 신기술

[김동철 칼럼] 학자가 만들고, 전쟁이 검증한 신기술

기사승인 2024. 02. 0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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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철 공학박사
김동철(공학박사, 숭실대 겸임교수)
영화 오펜하이머(2023)를 보기 전까지는 원자폭탄이 만들어진 배경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핵분열의 미세한 세계를 연구하는 이론물리학자들이 모여서 인공적인 장치를 만들고 그것이 가공할 살상무기가 되었다. 영화의 주인공이자 실제 인물인 오펜하이머는 정신적 고충을 겪는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파괴해야 한다는 임무는 보통사람들은 생각해 내기도 실행하기도 어려운 화두다. 이러한 사례들이 현재에도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지만 자극적인 뉴스에 무감각해진 세상은 또 다른 자극을 기다리거나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기술이 사용되는 계기를 만들어내기에 전쟁만큼 절실한 상황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2차 세계대전에 사용됐던 원자폭탄 리틀 보이와 팻 맨은 과도한 살상력과 환경파괴로 이후로는 어떠한 전쟁에서도 사용되지 않았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결과적으로 패했는데 이 전쟁은 처절하게 반성하는 계기가 됐다. 크리스 밀러가 저술한 칩 워(Chip War, 2023)에 따르면 베트남 전쟁에 미국이 쏟아부은 폭탄은 태평양전쟁에 쓰인 양보다 많았지만, 사용된 미사일의 명중률은 9.2%에 불과했다. 이미 유도무기체계가 전쟁에 사용됐지만 구형폭탄에 진공관을 납땜질한 조악한 수준이었다. 베트남 전쟁 말기쯤 미국은 진공관을 트랜지스터로 교체하고 레이저 유도장치로 유도폭탄을 만들 수 있었고, 그 결과 무수한 폭격에도 살아남았던 베트남의 전략적 요충지였던 타인호아 다리를 정밀 폭격하는 데 성공한다. 폭탄과 마이크로 전자기술의 결합으로 유도폭탄이 탄생했지만 전쟁은 이미 막바지였으므로 그것이 결과를 바꾸지는 못했다.

1991년에 발발한 걸프전을 시작으로 최근의 이스라엘전쟁까지 고집적 반도체 덕분에 정밀폭격은 가능한 것은 물론이고 최신의 무선 송수신 네트워크로 전 세계가 전쟁의 참상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상황에 이르렀다. 대량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반도체 기술과 무선 기술의 발달로 2G폰에서 사진을 주고받는 일이 가능해졌고, 3G폰에서 웹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게 되었다. 4G폰에서는 실시간 비디오 감상이 가능한 수준으로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현재 서비스 중인 5G폰에서는 비약적인 대역폭의 성능향상이 제공되고 있다. 1995년 국내은행에 사용되던 규모의 컴퓨터를 손에 들고 다니는 셈이다. 최초로 생중계된 걸프전에서는 베트남전쟁보다 수십 배의 정밀도로 목표물에 대한 항공폭격이 이뤄졌고, 과거의 전쟁에서 무차별 폭격으로 발생했던 의도치 않은 민간인 피해가 최소화됐다. 현재 전쟁에서 사용되고 있는 무기체계는 개인소총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조준하고 발사하는 방식이 아니다. 목표물을 입력하고 발사 버튼을 누르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다수의 이동 중인 목표물을 최적의 경로로 정밀 타격하는 무기가 사용 중이다. 심지어 공격당하기 전까지 상대방이 알 수 없도록 스텔스 기능도 장착돼 있다. 미사일의 진행 경로는 인공지능이 스스로 계산해서 날아가니, 기술 수준이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핵심요인이 됐다.

미국의 과학자들이 주도한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전쟁을 통해 효과가 입증이 되었고, 기술의 선구자들이 설립한 회사들을 지금은 비즈니스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 운영하고 있다. 트랜지스터를 고도로 집적한 반도체를 전쟁 말고도 모든 일상생활에서 사용한다면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던 사람들이다. 전쟁을 포함한 세상만사를 시장으로 바라보는 생각의 전환 또한 미국에서 시작되었는데, 러시아와 중국 입장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따라잡아야 할 분야가 됐다. 한국도 반도체 생산 분야에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고 있지만, 설계나 반도체 제조 장비를 만드는 원천기술은 모두 미국에 있다. 중국이 만든 인공지능도 역시 미국이 설계한 운영체계와 반도체 위에서 작동한다는 사실은 원천기술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시사한다. 미국은 이러한 기술을 만들어 내기 위해 국가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천문학적인 투자를 했다. 첨단 분야의 아이디어들이 그저 개인들의 호기심 발현 수준이 아닌 국가적인 프로젝트로 지원받을 때, 결국 그 결실이 국가의 미래로 돌아올 것이다.

김동철(공학박사, 숭실대 겸임교수)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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