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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날 르포]발달장애로 말·행동 느릴뿐인데 “사람들 눈총에 포기가 일상이죠”

[장애인의 날 르포]발달장애로 말·행동 느릴뿐인데 “사람들 눈총에 포기가 일상이죠”

기사승인 2024. 04. 18.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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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날 앞두고 동행해 보니
비대면 주문 씨름하다 진이 빠져
발달장애인 해마다 8000여명씩 증가
"평등한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인식개선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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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전 서울 중구 한 패스트푸드 음식점에서 발달장애인 김대범씨가 키오스크를 이용해 햄버거를 주문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박주연 기자
"말과 행동이 느린 것뿐인데, 빠르게 발전하는 디지털 세상을 못 따라가 매 번 눈총을 삽니다.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는 것은 일상이고 포기하는 게 습관이 됐습니다."

장애인의 날을 이틀 앞둔 18일 오전 11시께 서울 중구의 한 패스트푸드 음식점에서 발달장애인 김대범씨(31)는 햄버거를 주문하려고 키오스크 앞에 섰지만 첫 화면부터 손가락을 빙빙 돌리며 진땀을 뺐다. 주문 첫 단계인 '주문하기' '포인트를 적립하세요' '언어선택' 등의 단어들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10여 분 넘게 헤매던 김씨는 결국 직원이 있는 주문대로 발길을 옮겼다. 점심시간 대기줄이 길게 늘어지면서 뒷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느꼈기 때문이다. 김씨는 이날 햄버거 세트 1개 주문하는데 무려 20분이나 걸렸다. 비장애인이면 1~2분이면 할 일을 김씨는 10배 넘게 걸린 것이다.

지능 발달이 더딘 김씨는 신체는 멀쩡해 사람들로부터 '좀 더딘 사람'으로 오해를 받는다. 김씨는 단어 이해의 어려움이 가장 큰데, 매번 주변 사람들의 무시와 차가운 시선이 무섭다. 김씨는 "지난달 편의점에서 새로운 음료수와 도시락들이 보이길래 제품을 들고 무슨 맛인지, 유통기한을 읽어보고 있었는데, 주인이 나한테 살 거 아니면 그만 좀 보고 나가라고 소리친 적이 있었다"며 "신체가 멀쩡해서 내가 입을 열지 않으면 사람들이 날 장애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느리고 답답한 내 행동에 대해 화를 버럭 낸다"고 속상한 마음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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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국내 등록장애인 수는 늘고 있지만 여전히 장애인들을 향한 시선은 따갑다. 특히 일상생활이 디지털화가 대중화되면서 지능 발달이 더딘 발달장애인들은 '보호자 동행' 등 필요 이상의 차별을 강요받고 있어 시민사회의 인식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전국의 등록장애인은 264만1896명으로 지난해 신규 등록된 장애인 8만6287명이었다. 이중 발달장애인은 해마다 약 7000~8000명 증가하고 있다. 장애 유형 중 발달장애의 비중이 크게 증가했다. 2010년 등록된 발달장애인은 17만6137명이었는데 지난해 27만2524명으로 54.72% 증가했다.

발달장애인들은 '보호자 동행' 요구에 소외감을 느낀다. 발달장애인 박모씨(30)는 식당과 병원, AS센터 등을 방문할 때마다 보호자가 없으면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등 잦은 거절을 당했다. 박씨는 "식당 입구에서 직원에게 '자리 있어요?'라고 물어보면 어눌한 말투에 장애인임을 안 직원은 '다음에 보호자하고 같이 오세요'라는 답변을 자주 듣는다"고 했다. 박씨는 "휠체어나 어떤 보호 장치를 이용하지 않는 나도 평범한 일상을 생활하기 어려운데, 보호자가 꼭 필요한 장애인은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을 매번 한다"며 "장애 진단을 받은 10대 때부터 거절과 무시는 자주 있는 일이지만, 상황을 겪을 때마다 늘 상처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와 뇌병변장애 등 중복 장애를 갖은 송지연씨(33)는 지난 총선 공보물을 받아보았지만 전혀 이해되지 않아 속상했다고 토로했다. 송씨는 "'재개발' '비례대표' 등의 단어를 읽어도 이해가 전혀되지 않았다"며 "나도 투표에 참여하고 싶은데 이해는 되지 않고, 어쩔 수 없이 느낌 가는 사람에게 투표했었다"고 말했다. 송씨는 "정말로 이해가 안가서 물어보면 상대방이 자꾸 물어보지 말라고 버럭 화를 내는 경우가 많다"며 "어린 나이에 상처가 커서 이제는 이해가 안가도 알아듣는 척을 자주하곤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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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전 서울 중구 한 패스트푸드 음식점에서 발달장애인 김대범씨가 키오스크 대신 카운터에서 직원에게 음식을 주문하고 있다. /박주연 기자
전문가들은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쉬운 정보가 제공되야 필요성이 요구된다고 지적한다.

발달장애인은 각 정보별로 입력란을 명확히 구분, 한글 표기 병기, 글씨 판독이 쉽도록 서체 굵기 변경, 어려운 정보는 예시를 추가하는 등 장애 특성을 고려한 정보 접근이 필요하다. 백정연 소소한소통 대표는 "진정한 자기결정은 '접근 가능한 정보'가 주어졌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며 "복지부에서 쉬운 정책정보로 만들어야 할 법령 및 정책정보의 종류, 작성기준 등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애인단체는 사회에서 비중이 늘어가는 발달장애인들이 평등한 구성원으로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성숙한 시민인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김수원 한국피플퍼스트 사무국장은 "발달장애인은 주로 더딘 사람으로 취급 받아 사회에서 더욱 외면받고 있다는 아픔과 관계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며 "발달장애인도 비장애인과 같은 공간에서 생활이 어우러질 수 있는 하나의 사회로 형성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매년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1981년 UN총회에서 장애인의 완전한 참여와 평등을 주제로 세계 장애인의 해를 선포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도 같은 해 제1회 장애인의 날 기념행사를 열었고, 장애인복지법도 제정됐다. 이어 1991년 장애인복지법이 개정됨에 따라 법정기념일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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