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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총영사관 의거’ 유기동·김만수·최병호 선생, 2024년 4월의 독립운동가 선정

‘하얼빈 총영사관 의거’ 유기동·김만수·최병호 선생, 2024년 4월의 독립운동가 선정

기사승인 2024. 03. 31.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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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가전 사건의 세사람은 화장(동아일보 1924년 4월 15일 보도) /국사편찬위원회
2024년 4월의 독립운동가에 만주지역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유기동(1891년·경북 안동 출생), 김만수(1892년·경북 안동 출생), 최병호(1903년·경북 울진 출생) 선생이 선정됐다.

31일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유기동 선생 등 세 청년은 1924년 4월 하얼빈 총영사관 의거의 주역들이다. .

김만수·최병호 선생은 하얼빈 총영사관의 고등경찰 간부 쿠니요시와 형사부장 마쓰시마가 하얼빈 일대의 한인들을 가혹하게 탄압하고 함부로 해친다는 소문이 돌자, 하얼빈 지역에서 친일파와 일본 경찰을 암살하며 일제 기관을 파괴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은신하던 중 예전의 동지 유기동 선생과 우연히 만나 함께 의열 활동을 일으키기로 뜻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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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보병 포위중에도 투항보다 죽음이 영광(신한민보 1924년 5월 15일 보도) /국사편찬위원회
하지만 거사가 실행되기 전에 은신처가 발각되어 다수의 적에게 포위되자 격렬한 항전 끝에 일본 경찰 쿠니요시 세이호를 사살하고, 일본 경찰을 비롯한 중국군과 밤새도록 교전을 벌이다 1924년 4월 8일 장렬하게 순국했다.

유기동·김만수·최병호 선생은 마지막 순간까지 일제에 굴복하지 않고 용맹하게 맞서며 조국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보훈부는 세 청년의 의거는 만주 무장독립운동 진영에 큰 교훈을 줬고, 1924년 6월 이후 독립군단들이 통합되면서 항일무장투쟁이 강화되는 전환점이 됐다고 평가했다. 정부는 유기동·김만수·최병호 선생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각각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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