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보기
  • 아시아투데이 로고
[CEO 인물탐구] 구내식당에서 후다닥…이재용 부회장 실용주의·스피드경영

[CEO 인물탐구] 구내식당에서 후다닥…이재용 부회장 실용주의·스피드경영

기사승인 2022. 04. 14. 17:43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현장경영 몰두 속 구내식당 애용
짜장면 한 그릇으로 '후다닥' 식사
복귀 열흘 만에 240조 원 투자 결단
연휴도 반납…옥석가려 경쟁력↑
실용 앞세워 '3세 경영' 색깔내기
"미래동력 발굴, 리더십 발휘해야"
basic_2021
basic_2018
2020년 6월 19일 경기도 화성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 구내식당.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점심시간 여느 직원들이 그렇듯 식판을 들고 일렬로 줄을 서서 배식을 기다렸다.

메뉴는 짜장면. 밖으로 나가는 번거로움을 덜면서도 후다닥 먹을 수 있는 짜장면을 선택한 이 부회장은 이날 삼성전자 사장단 간담회, 반도체 연구원 간담회, 환경안전팀장 회의 등 쉴틈없이 회의를 주재했다.

이 부회장은 이날 임직원들에게 “가혹한 위기 상황이다. 미래 기술을 얼마나 빨리 우리 것으로 만드느냐에 생존이 달려 있다. 시간이 없다”고 강조했다. 평소 이 부회장의 스타일에서 드러나는 ‘스피드 경영’ ‘실용주의’가 점식 식사 장소와 메뉴에 묘하게 투영된 셈이다.

구내식당에서 식사하는 이 부회장의 모습은 사실 삼성 직원들에게 아주 새로운 모습은 아니다. 삼성전자 수원·평택·화성 사업장, 삼선전기 부산 사업장, 삼성물산 서울 상일동 사옥 등 이 부회장의 현장경영에는 구내식당 점심이 공식처럼 동반됐다. 빠르게 한 끼를 해결하는 것을 좋아하는 평소 성격은 경영에서 ‘속도전’으로 드러난다.

◇경영복귀 하자마자 240조 투자·백신 생산 두 달 앞당긴 ‘스피드’
14일 재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이 2021년 8월 13일 가석방 이후 보여준 추진력은 투자 결단, 백신 수급난 해결 등이라는 확실한 성과로 드러난 것으로 평가된다.

이 부회장은 가석방 복귀 열흘 만에 향후 3년간 반도체, 바이오, 차세대 통신 등에 240조원을 투자하고 4만명을 직접고용하겠다는 투자 계획을 내놨다. 이 부회장은 출소 당일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에서 나오자마자 삼성전자 서초사옥으로 달려간 것도 모자라, 발표 직전까지 관계사 경영진을 잇따라 만나 투자 계획을 조율한 것으로 전해진다.

‘모더나 백신’ 국내 생산을 기존 계획보다 두 달 가까이 앞당겨 백신 수급에 숨통을 틔운 것은 이재용식 스피드 경영의 결정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바이오에피스 등의 최고위 경영진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를 진두지휘하며 백신 생산 인허가, 생산 수율 제고 등의 빠른 진행을 위해 주말은 물론 추석 연휴도 반납한 것으로 전해진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이 정부가 가석방 명분으로 제시한 경제 역할론에 대해 결과를 빨리 보여줘야겠다는 조급함과 진정성이 그만큼 컸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KakaoTalk_20220413_141430245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20년 6월 19일 경기도 화성 반도체연구소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받고 있다. /제공=삼성전자
◇방산·화학 빅딜 실용주의…“한곳에 몰아줘야 경쟁력”
실용을 강조하는 경영 스타일은 2014년 11월, 2015년 10월 연이어 단행한 방산빅딜과 화학빅딜에서 두드러졌다.

삼성테크윈, 삼성탈레스, 삼성토탈, 삼성종합화학 등 4개 계열사를 한화에, 삼성SDI 화학부문, 삼성정밀화학, 삼성BP화학을 롯데에 통째로 매각한 방산빅딜과 화학빅딜은 아버지 이건희 부회장 와병으로 이 부회장이 경영전면에 나서며 가장 먼저 한 일이다.

특히 고 이건희 회장이 ‘사업다각화’에 집중하며 확장한 화학 사업을 아들이 단박에 정리한 것을 두고 재계는 실용을 앞세운 3세 경영 색깔을 확실히 드러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당시 이 부회장은 “우리는 그 회사를 제대로 챙기지 못했고 챙길 능력도 없다. 한곳으로 몰아줘야 경쟁력이 생긴다”고 하며 경영진을 설득한 것으로 전해진다.

◇“나 때문에 엘리베이터 잡지 마라”
젊고 실용적인 면모는 이 부회장의 후일담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자신을 위해 엘리베이터를 잡고 기다리는 직원을 말리고, 아버지와 달리 수행원 없이 여행가방을 끌고 홀로 출장길에 나서는 모습이 그렇다. 이 부회장은 취임 후 국내 이동용 헬기와 해외 출장용 전용기 등을 매각하기도 했다.

국내외 현장을 수시로 찾아 직원들의 고충을 듣는가 하면 반도체 장비 수배를 위해 직접 네덜란드로 달려가는 모습은 아버지와 다른 실용주의다.

이건희 회장은 ‘은둔의 경영자’로 불릴 만큼 전면에 나서지 않기로 유명했지만, 이 부회장은 활발하게 현장을 다니고 그 행보를 공개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최근 취업제한 등에 대한 부담으로 공개 행보가 다소 뜸해지긴 했지만 거침없는 현장 경영에 대중들이 그를 ‘재드래곤(용, Dragon)’이라 부를 만큼 재벌 총수들 중에서도 스타급 인사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이 이 시대에 맞는 ‘동행’ ‘온화함’ ‘실용주의’ 등의 리더십을 펼치면서도, 때로는 이건희 회장의 카리스마 경영을 차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특히 최근 불거진 게임최적화서비스(GOS) 논란에 1995년 이 회장의 ‘애니콜 화형식’ 같은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앞서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부회장에 대해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이건희 회장의 1993년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처럼 과감한 경영 스타일을 펼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210104 평택 반도체사업장 방문1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21년 1월 4일 경기도 평택 3공장 건설현장을 점검하고 있다./제공=삼성전자
◇흔들리는 초일류…“이재용 리더십 발휘할 때”
재계는 지금이야말로 이재용 부회장이 스피드 경영과 실용주의, 아버지에 필적하는 카리스마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세계 경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에 미·중 무역갈등,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시시각각 변해 한 치 앞을 보기 어렵다. 이럴 때일수록 급변하는 경제 흐름을 꿰뚫어 보고 ‘되는 사업’과 ‘안 되는 사업’에 대한 옥석을 가리는 리더십이 중요하다. 이 부회장이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이 강조한 ‘사업보국’을 계승하면서도 자신만의 색깔로 아버지를 뛰어넘는 ‘승어부’ 경영을 이뤄야 한다는 조언이다.

삼성전자의 초일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도 이 부회장의 리더십이 절실한 이유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3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3분기 연속 최대 매출을 내며 신기록을 경신했다. 겉으로 보면 초호황기지만 성장동력은 힘을 잃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주력산업인 스마트폰의 경우 프리미엄 시장에서 애플과 큰 격차로 고전하고 있고, 최근에는 GOS, 통화불량 논란 등으로 초격차 기술력에 큰 상처를 입었다.

이 부회장이 2030년 세계 1위에 오르겠다고 선언한 시스템 반도체역시 갈길이 멀다. 파운드리(위탁생산) 세계 점유율은 18%대로 53%를 점유한 대만 TSMC 3분의 1수준이다. 스마트폰 두뇌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시장을 확장하기 위해 미국 유명 팹리스 AMD 등과 협력하며 힘을 쏟고 있지만 퀄컴 등에 여전히 역부족이다.

삼성이 반도체·바이오·인공지능(AI) 등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하는 굵직한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만큼, 이 부회장을 옭아매고 있는 취업제한, 사법리스크 등의 문제도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M&A 등 신성장 동력 발굴에 리더십 발휘해야”
반도체를 제외한 사업 매출이 감소추세를 보이면서 삼성의 신성장동력이 무엇이 될지 관심이 쏠리지만, 이를 가늠할 수 있는 인수합병(M&A)에 대한 숙고는 길어지고 있다.

다만 시장은 삼성전자가 순현금만 106조원 넘게 갖고 있고, 지난해 초 “3년 내 의미 있는 규모의 M&A에 나설 것”이라고 공언한 만큼 조만간 구체적인 내용이 나올 것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그룹 최고 책임자인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해 8월 경영에 복귀한 만큼 이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M&A 막바지 검토가 한창일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 부회장이 가석방 직후 밝힌 240조원 투자가 반도체, 바이오, 차세대 통신, AI, 로봇 등에 집중됐으니 인수 기업역시 해당 방향과 궤를 같이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전문대 교수는 “고 이건희 회장은 핵심을 찌르는 통찰력으로 중요한 사업 중심으로 리드하고 나머지는 전문 경영인에 맡겼다”며 “이 부회장은 전문경영인들이 단기성과가 아닌 장기적인 시각으로 사업을 성장시킬 수 있도록 이를 자극하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