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대중가요의 아리랑] <61> 추억의 서울 전차역 ‘마포종점’

[대중가요의 아리랑] <61> 추억의 서울 전차역 ‘마포종점’

기사승인 2023. 11. 12. 18:47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조향래 객원논설위원
'밤 깊은 마포종점 갈 곳 없는 밤 전차/ 비에 젖어 너도 섰고 갈 곳 없는 나도 섰다/ 강 건너 영등포에 불빛만 아련한데/ 돌아오지 않는 사람 기다린들 무엇하나/ 첫사랑 떠나간 종점 마포는 서글퍼라// 저 멀리 당인리에 발전소도 잠든 밤/ 하나둘씩 불을 끄고 깊어가는 마포종점/ 여의도 비행장엔 불빛만 쓸쓸한데/ 돌아오지 않는 사람 생각한들 무엇하나/ 궂은비 내리는 종점 마포는 서글퍼라'

'마포종점'은 1960년대 서울의 외곽 풍경을 담고 있다. 불빛 아련한 영등포와 당인리발전소, 여의도비행장까지 등장한다. 지금은 사라진 추억의 교통수단인 도심 전차 또한 흑백 사진 같은 향수를 전한다. 산업화의 여파로 고향을 떠나 서울 변두리 지역을 전전하며 고단한 삶을 이어가던 사람들의 애틋한 정서가 농밀하게 담겨있다. 무엇보다 종점에 어린 두 연인의 사랑 이야기를 슬픈 서정시로 승화시켰다.

당시 전차 종점이 있던 마포는 갈대가 무성한 곳이었다. 여의도나 말죽거리로 가려면 나룻배로 강을 건너야 하는 시골 동네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전차 운행으로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서민들이 많이 거주하게 된 것이다. 마포종점, 밤이 깊어 적막감이 감도는 종착역에 '땡! 땡! 땡!' 도착 신호음과 함께 느린 걸음으로 들어서는 마지막 열차는 밤마다 마주하는 그리움 그 자체였다.

고된 노동을 마치고 퇴근하는 남편을 맞이하거나 공부하고 돌아오는 자식을 보듬는 하루의 종점이기도 했다. 그중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가난한 대학생 연인들도 있었다. 방세가 싼 마포의 옥탑방에서 지내는 학생들이 더러 있었기 때문이다. 추억의 대중가요 '마포종점'은 작사가 정두수와 작곡가 박춘석이 마포의 단골 설렁탕집에서 우연히 들은 사연이 소재가 되었다고 한다.

2016년 타계한 정두수는 생전에 남긴 가요사 이야기 '노래 따라 삼천리'에도 그 일화를 기록하고 있다. 마포종점 부근 허름한 사글세방에 대학을 졸업한 신혼부부가 살았는데, 남자는 박사 코스 준비를 위해 대학 강사와 가정교사로 학비를 벌고 있었고, 여자도 부업을 하며 알뜰히 살림을 꾸렸다고 한다. 여자에게도 마포종점은 날마다 사랑하는 사람을 싣고 돌아오는 막차가 있는 살뜰한 공간이었다.

그런데 미국 유학을 떠난 남편이 과로로 쓰러지며 짧은 생을 마감하자, 여인은 돌아오지 않을 사람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마포종점을 배회하고 다녔다는 것이다. 궂은비 내리는 밤, 안타까운 사연에 잠 못 이루던 정두수는 두 연인을 위한 애가(哀歌)를 써 내려갔다. '마포종점'의 노래시는 그렇게 탄생했다. 노래는 1967년 여성 듀엣 은방울자매(박애·김향미)의 목소리를 타면서 국민 애창곡이 되었다.

'마포종점'은 가수가 만삭에 녹음을 하면 히트를 한다는 당시의 속설을 다시 한 번 확인한 노래이기도 하다. 성장일로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도 소외된 서민들의 애환을 위로했다는 가요사적 의미도 지닌다. 은방울자매는 '마포종점'을 마지막 히트송으로 남기고 대중 곁을 떠났다. '마포종점'이 가요인생의 종점이 된 것이다. 노래가 나온 이듬해 실제 '마포종점'도 전차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막차가 옅은 훈기를 머금은 채 멈춰서던, 젊은 연인들의 못다 한 사랑이 애처롭게 스민 마포종점은 이제 먼 기억 속 시공간으로 남았다. 저마다 인생행로에서 마지막 종점을 향해 가고 있는데, 이정표조차 잃고 표류하는 우리의 행로는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 오랜 선로(線路) 같은 '마포종점'의 청량한 선율만 귓전을 맴돈다.

/조향래 객원논설위원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