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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의 아리랑] <66> 산업화시대의 귀거래사 ‘너와 나의 고향’

[대중가요의 아리랑] <66> 산업화시대의 귀거래사 ‘너와 나의 고향’

기사승인 2023. 12. 18.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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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향래 대중문화평론가
'미워도 한세상 좋아도 한세상/ 마음을 달래며 웃으며 살리라/ 바람 따라 구름 따라 흘러온 사나이는/ 구름 머무는 고향땅에서/ 너와 함께 살리라// 미움이 변하여 사랑도 되겠지/ 마음을 달래며 알뜰이 살리라/ 정처없이 흘러온 길 상처만 쓰라린데/ 구름 머무는 정든 땅에서 오손도손 살리라' '너와 나의 고향'은 대중가요의 '귀거래사(歸去來辭)'로 고향을 소재로 한 나훈아 노래의 마침표 같은 곡이다.

나훈아와 남진이 노래한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중반 사이 한국 사회의 초상화는 매우 대조적이다. 그것은 산업화 시대의 빛과 그늘로 엇갈리기도 한다. 나훈아의 노래가 향토적인 서정성을 담았다면, 남진의 노래는 도시적인 역동성을 표출했다. 고향과 시골의 모습도 남진의 노래는 풍요로운 전원으로 그린 반면, 나훈아의 노래는 공동화 현상을 겪고 있는 농촌의 고적한 정조를 머금었다.

'물레방아 도는데'가 도시 이주 과정에서 농어촌에 남은 이들의 탄식이라면 '고향역'은 도시로 떠나간 사람들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반영이었다. 나아가 '너와 나의 고향'은 타향살이의 서러움과 고단함을 떨쳐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오손도손 함께 살기를 희망한다. 타관을 떠돌며 얻은 상처를 쓸어내리며 너와 내가 알뜰히 살아갈 곳은 고향밖에 없다는 귀거래사의 대중가요적 변주(變奏)다.

각박한 도시와 척박한 객지를 전전하며 심신이 멍들고 지친 사나이가 정든 고향으로 돌아와 사랑하던 여인과 행복한 삶을 꿈꾸는 '고향' 시리즈의 완결판 같은 노래인 것이다. 도시화의 그늘 속에서 애틋하게 피어난 망향가의 귀결이라고 할까. 이 같은 귀향 서사의 완성은 이촌향도의 시절 고향을 떠나 객지를 떠돌며 온갖 신산을 겪으며 고향을 그리는 사람들의 정서를 대변하기에 충분했다.

도시로 나와서 살아온 세월이 오래이지만 농어촌에서 태어나 자라고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들에게 고향은 수구초심(首丘初心)의 실존적 공간이다. 그러나 고향은 잊을 수 없지만 돌아가기 또한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미 도시가 일상의 터전으로 익숙해져 버렸고 어린 시절 한때 거들어보았던 시골에서의 농사일을 다시 벌이기도 벅차기 때문이다. 또한 반대하는 가족을 두고 혼자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직장에서 퇴직을 한 다음에라도 고향에 돌아가 작은 텃밭이라도 가꾸며 노후를 보낼 계획을 세워보지만, 이마저도 만만한 일이 아니다. 오랫동안 번잡한 도시생활에 길들여진 터여서 어둠살만 내리면 오갈 데 없는 적막한 시골생활에 적응하기가 막막하다. 도회지에서 멀리 떨어진 산간벽촌일수록 그런 낭패감은 더하다. 애초에 '자연인'으로 돌아갈 각오를 하지 않고서야 나설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고향은 이미 일가친척이나 이웃 간에 정을 나누며 오순도순 살던 그런 과거의 고향이 아니다. 옛사람들은 대부분 떠나고 없고 군데군데 허물어진 빈집들만 옛 자취를 지니고 있을 뿐이다. 낯익은 노인들이 몇몇 살고 있기는 하지만, 낯선 외지인들이 절반 이상이어서 생경한 기분도 없지 않다. 정지용 시인의 시구처럼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옛 고향은 아닌' 것이다.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를' 뿐 옛날의 인정이나 정취는 간데없다. 하기야 강산이 몇 번이나 바뀌었던가. 사람들은 연어의 회귀본능처럼 고향을 그리워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꿈을 꾸지만, 고향은 이미 지나가버린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일 따름이다. 그래서 고향으로의 회귀는 세월 따라 사라져버린, 실패가 예정된 불가역적(不可逆的)인 시간 여행인지도 모른다. 이제 '너와 나의 고향'은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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