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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빈 칼럼] 한국 전세와 선진국 리포 시장

[양영빈 칼럼] 한국 전세와 선진국 리포 시장

기사승인 2020. 12. 25.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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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기형적인 것은 아냐, 특수성 때문
전세는 누구나 입을 모아 한국의 특이한 제도라고 말한다. “외국에 오래 살아봤더니 전세는 한국에만 있는 ‘이상한’ 제도라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 사회의 경제제도가 정상화되기 위해서는 전세는 월세로 전환돼야 한다. 전세는 무언가 전근대적인 요소를 담고 있는 후진적인 것이다. 따라서 선진적인 또는 정상적인 경제로 가기 위해서는 결국은 월세로 갈 것이다” 등등의 표현들은 현재 우리 사회 식자층의 주류적 관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서는 전세 시장을 이들의 관점과는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시도를 해봤다. 시장경제의 특성의 하나로 전세제도를 보는 것인데 이 시장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미 이 칼럼을 통해서 자주 등장했던 리포 시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양영빈
양영빈 상하이 델타익스체인지 이사./제공=델타익스체인지.
먼저 한국의 특이한 제도는 기형적인 것이라기보다는 특수성이라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 어느 경제나 그 나라의 특수한 환경과 발전 경로에 따라 그 나라 경제만의 독특한 체제를 구축하게 되는데 플라톤이 말하는 순수 이데아 상태의 자본주의 경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강조한다면 특이성=비정상성이라는 도식을 버려야 한다. 특이성을 비정상성으로 인식하는 순간 엉뚱한 정책이 나오게 된다. 예를 들어 전세를 한국 경제가 지니는 전근대적인 잔재로 인식하면 전세는 극복돼야 할 제도가 되고 자본주의적 개념에 맞는 월세로 전환하는 게 당장은 고통스럽더라도 받아들여야 할 숙명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것이 정책으로 승화되면 전세 값 상승으로 고통받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통과의례 정도로 여기게 된다.

◇ 리포(Repo) 시장

리포 시장은 현금소유자(L: Lender)와 자산(주로 채권)소유자(B: Borrower)로 구성된다. 현금을 소유한 L은 현금을 빌려주고 이자수익을 받고 현금을 빌리는 B는 소유한 채권을 담보로 제출한다. 미국과 서유럽의 리포 시장에서 보통 사용되는 전통적인 담보는 미재무성채권(Treasury Bill) 같은 초우량 채권이다. 리포는 우리 말로는 환매조건부채권이라고 번역한다. 예를 들어 L과 B가 리포 계약을 맺고 B가 보유한 채권의 시가가 1억원인 경우, L은 B에게 9천만원을 빌려주고 B는 L에게 보유한 국채를 담보로 맡긴다. 계약 만기가 되면 B는 L에게 빌린 9천만원과 이자를 더해서 갚고 L은 담보로 맡은 채권을 B에게 되돌려준다. 이때 채권의 담보가액인 1억원과 빌린 현금 9천만원의 차액을 담보가액으로 나눈 값을 헤어컷(haircut)이라고 부른다. 이 경우에 헤어컷은 10%가 된다.

일반인들은 이런 거래를 접해볼 기회가 매우 적다. 그러나 자금규모가 큰 기관 사이에서는 자주 볼 수 있는 거래 형태이다. 이런 거래가 성립하는 가장 큰 이유는 L과 B의 위험과 수익에 대한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L은 저위험/저수익을 추구한다면 B는 고위험/고수익을 추구하는 투자자로 볼 수 있다. L은 현금을 보유하고 있고 이 현금을 활용해 짧은 만기로 빌려주고 작은 이자수익에 만족하는 반면, B는 가격 변동의 위험은 있지만 빌린 현금에 지급하는 이자비용보다는 높은 수익을 제공하는 채권을 보유하고자 하는 경우 이런 거래가 성사된다. B는 짧은 만기의 낮은 이자율로 현금을 조달하고(상대적으로 덜 위험한) 이 현금을 사용해 긴 만기의 높은 이자율(상대적으로 위험이 높은)의 채권에 투자를 하는 셈이다.

L유형과 B유형의 투자자는 리포 거래를 단 한 번만 하는 것은 아니다. B는 L로부터 빌린 현금을 동원해 채권을 더 구매할 수 있다. 처음 보유한 채권의 가치가 1억원이라면 리포 계약으로부터 조달한 현금 9천만원(헤어컷이 10%)으로 그 만큼 채권을 더 구매할 수 있다. B는 새로 구매한 채권으로 또 다른 리포 계약을 맺을 수 있다. 이렇게 하면 8100만원의 현금을 또 조달할 수 있다. 이런 방식을 계속하면 최대 1억/10%=10억원어치의 채권을 보유할 수 있다. 이것이 리포 시장에서의 레버리지를 키우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이전 칼럼에서 언급한 마윈(馬雲)의 앤트그룹이 자산유동화증권(ABS)를 통해서 레버리지를 키우는 방식과 대동소이하다. 리포 시장이 전통적인 은행의 대출과 다른 점은 참여자가 은행 없이 헤지펀드와 MMMF같은 기관이어도 된다는 사실이다.

◇ 전세제도와 리포 시장의 동형관계

한국의 전세제도는 미국과 유럽시장의 리포 시장과 비교해보면 쉽게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L은 전세 수요자이고 B는 주택 소유자이다. B는 자산(주택)을 소유하기 위해 레버리지를 쓰는데 그것이 바로 전세자금인 것이다. 전세자금과 집값의 차이로 계산할 수 있는 비율은 헤어컷이다. 또 전세자금을 집주인에게 빌려주고 그 대가로 받는 리포 이자율은 전세수요자의 주택사용권이라 할 수 있다. 리포 시장에서는 채권(자산)의 담보가치보다 빌려주는 현금액수가 크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자주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지만 불가능한 것 역시 아니다. 가끔 볼 수 있는 전세가가 집가격을 초월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표를 통해서 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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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 시장은 만기가 1일인 경우도 많은데 전세 시장은 요즘은 임대차 3법 통과 이후로 기본 2년인 것이 차이라면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최대 레버리지를 사용하는 경우는 주변에서 가끔 뉴스에서 볼 수 있는 갭투자에 해당한다. 헤어컷이 적으면 적을수록 갭투자에 의한 레버리지는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된다.

우리나라의 독특한 전세는 개발경제 시기 일부 대기업에 한정된 제도권 금융시장에 대한 접근성으로 인해 한편으로는 주택값 상승을 원하는 주택 구매자와 주택 사용을 원하는 전세 임차인의 이해가 맞아 떨어져서 생성된 시장이다. 종합하자면 우리나라의 독특한 전세제도는 금융 부문이 발전하지 못해서 생긴 뭔가 기형적인 것이 아닌 한국형 리포 시장인 것이다. 미국과 유럽의 리포 시장이 전통적인 공적 금융인 은행과 자산 규모가 큰 기관과의 밀접한 관계에서 나타났다면 우리나라의 리포 시장은 철저히 민간(가계)으로부터 발생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의 전세 시장은 전세계에서 가장 발전한 민간(가계주도) 신용체제라고 할 수 있다. 그 어느 나라도 생면부지의 집주인(B)에게 거액의 전세대금을 주는 전세계약을 하는 신용체제를 갖춘 나라는 없었다. 중국과 미국의 사례를 보면 이런 신용체제가 발전하지 않은 나라에서는 주택 시장에서의 거래는 직접 구매 또는 월세 시장의 발전으로 나타난다. 전세 제도는 고도로 발전한 민간(가계주도) 신용체계가 있지 않고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이런 전세제도를 ‘비정상’적인 또는 ‘기형’적인 제도로 바라보는 시각은 우리의 특성을 고려하지 못한 상태로 외국의 것을 무조건적으로 추종해야 할 모델로 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칫하면 엉뚱한 정책으로 생사람을 잡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 뻔하다.

필자 양영빈 : 상하이 델타익스체인지 이사. 한국인 최초 중국어 도서 ‘옵션실전 매매’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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