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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위장 전입’ 조장하는 청약가점제 손질해야

[기자의 눈] ‘위장 전입’ 조장하는 청약가점제 손질해야

기사승인 2024. 10. 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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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름
정아름 건설부동산부 기자
얼마 전 서울 강남구에서 분양한 아파트의 청약 최저 당첨가점은 74점이었다. 규제지역에 속해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면서 10억원 상다의 시세 차익이 기대되는 '로또' 단지였다. 청약 점수가 높은 수요자들은 너도나도 묵은 청약통장을 꺼내들었다.

74점은 5인 가구가 최대한으로 받을 수 있는 점수다. 청약 가점은 84점이 만점으로 부양가족 수(35점), 무주택 기간(32점), 청약통장 가입 기간(17점)으로 구성된다. 부양가족 수 5인을 충족해도 다른 요건에서 모두 만점을 받아야 턱걸이로 청약 가점제에 당첨될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청약 가점이 70점은 넘어야 강남에서 분양하는 아파트에 당첨될 수 있다고 본다. 4인 가구 만점이 69점인 것을 감안하면 최소 5인 가구여야 가점제 당첨을 기대해볼 수 있다는 뜻이다.

서울에서 5인 가구 비율은 극소수를 차지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서울 5인 가구 이상 가구 수는 13만455가구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서울 전체 가구 수의 3%에 그친다. 이 가운데 유주택자 가구를 제외하면 무주택자가 5인 가구인 비율은 더욱 낮아질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서울 전체의 3%도 못 미치는 가구가 강남 분양아파트 청약가점 분양 물량을 독식하는 구조다. 청약가점이 대체적으로 낮은 1~2인 가구는 엄청난 경쟁을 뚫고 청약 추첨제가 되길 기대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청약 당첨자들이 위장 전입 등 각종 편법을 써서 부양가족 점수를 늘리는 게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부양가족 수가 많으면 청약 당첨 확률이 높아지는데 5인 가구 이상은 주변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4년간 부정 청약 적발 사례 중 70%이 위장 전입인 것으로 드러났다. 청약 가점 점수를 늘리기 위해 꼼수와 위법 행위를 저지른 사례들이 속출했다. 같이 살지 않는 가족을 전입신고하는 것은 물론, 아이를 입양한 뒤 파양한 몰지각한 어른들의 사례는 지난해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서울은 1~2인 가구만 전체 65%를 차지한다. 1인 가구가 163만가구, 2인 가구가 108만가구다. 1~2인 가구가 대다수인 시대에 청약 가점제는 시대착오적인 정책이다. 1~2인 가구가 절반이 넘는데 일반 공급에서까지 부양가족 수 가점을 높게 배정하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다. 무주택자가 대가족인 경우 특별공급에서 다자녀 가구·노부모 부양이라는 선택지도 충분히 있다. 부양가족 수 배점을 낮추고 청약가점제 물량을 줄이는 것 등을 대안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직주근접 및 지하철 역세권 등 수요자들이 선호하는 주택 공급 규모를 늘려 편법을 쓰지 않아도 내 집을 마련하기 충분한 건전한 시장 환경을 조성할 수 있도록 정부는 힘써야 한다. 서울은 재건축·재개발을 통해 주로 신규 주택이 공급되므로 순증 물량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시장에 주택 공급을 많이 하겠다는 신호를 꾸준히 보내고 계획대로 공급하는 사례가 이어져야 '로또 청약' 광풍이 사그러드는 것을 기대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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