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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의 아리랑] <29> 불멸의 전쟁가요 ‘전선야곡’

[대중가요의 아리랑] <29> 불멸의 전쟁가요 ‘전선야곡’

기사승인 2023. 02. 19.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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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향래 객원논설위원
'가랑잎이 휘날리는 전선의 달밤/ 소리 없이 내리는 이슬도 차가운데/ 단잠을 못 이루고 돌아눕는 귓가에/ 장부의 길 일러주신 어머님의 목소리/ 아~ 그 목소리 그리워// 들려오는 종소리를 자장가 삼아/ 꿈길 속에 달려간 내 고향 내 집에는/ 정안수 떠놓고서 이 아들의 공 비는/ 어머니의 흰머리가 눈부시어 울었오/ 아~ 쓸어안고 싶었오' '전선야곡'은 '유호-박시춘' 콤비의 전쟁가요 두 번째 걸작이다.

1950년대를 관류한 시대 감성은 전쟁과 그 상처일 것이다. 낙동강 전선에서 반격을 거듭해 압록강까지 이르며 통일을 눈앞에 뒀던 전세는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역전되었다. 1951년 1월 4일 수도 서울을 또 빼앗겼다가 되찾았다. 휴전선 일대에서는 지리한 공방전을 거듭했다. 1953년 7월 휴전이 이루어질 때까지 이른바 고지전이다. 영화 '고지전' 또한 당시 백마고지 전투를 모티브로 한 것이다.

장훈 감독의 '고지전'은 남북한의 군대가 2년 이상에 걸쳐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벌이는 전투와 군인들의 심리를 묘사한 영화이다. 그것은 이념 간의 싸움이 아닌 전쟁 그 자체였다. 장훈 감독도 "'고지전'은 전쟁이 아닌 전장을 담았다"고 했다. 전쟁은 어디 가고 고지만 남은 것이었다. 한쪽에서는 휴전협정이 진행 중인데 작은 고지 하나를 탈환하기 위해 수많은 젊은이들이 희생되었다.

'전선야곡'은 영화 '고지전'의 테마곡으로 등장하며 옛 명성을 환기시켰다. '전선야곡'은 전쟁터에 나간 병사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노래이다. 사선을 넘나드는 전선의 한가운데에 선 병사의 내면을 드러내며 전방의 군인과 후방 가족들의 애끓는 심정을 가이없는 감성으로 길어올린 전쟁가요이다. 아들을 전장에 보낸 모성(母性)과 고향의 어머니를 그리는 아들의 사모곡(思母曲)이 비장하게 얽혀있다.

노래를 부른 사람은 대구 오리엔트레코드사 소속 가수였던 신세영이었다. 그는 일제의 강제 징집으로 만주 전선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귀국한 인물이다. 1951년 10월 오리엔트레코드사 건물 2층 다방에서 담요를 둘러치고 '전선야곡'을 녹음하는 날, 공교롭게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신세영은 목이 멘 상태로 노래를 불렀다. 그것이 비감을 더하며 대중의 공감과 호응을 얻어내게 되었다.

필자는 '전선야곡'을 들을 때마다 떠오르는 특별한 사람들이 있다. 2000년 '한국전쟁 50주년 특별기획' 연재를 하면서 만났던 소년병(少年兵)들이다. 그들은 전쟁 당시 학도병 중에서도 병역의무가 없던 14~17세의 소년 지원병들이었다. 한사코 말리는 어머니의 손길을 뿌리치며 전선으로 달려갔지만, 훈련은커녕 무장도 제대로 못한 채 노도같이 밀려오는 인민군과 맞서 싸우다 쓰러져 간 홍안(紅顔)의 넋들이었다.

달빛 처연한 전선에서 때로는 고향땅 어머니 생각에 눈물짓고, 처음 사살한 인민군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라 밤새 잠 못 이루던 그들은 꿈 많던 사춘기 학생들이었다. 20여 년 전 취재 당시 일흔을 바라보던 생존 소년병들은 자신들의 삶과 죽음 그리고 애환이 세월에 묻혀 사위어가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고 눈물지었다. 그들이야말로 영화 '고지전'에서 '전선야곡'을 부르던 주인공들이 아니고 무엇인가.

가랑잎 휘날리고 이슬이 소리 없이 내리는 전선의 달밤, 적군의 엄습으로 총성이 울리고 생사를 건 전투가 벌어지기 직전의 폭풍전야, 막사 사이로 떠오른 둥근 달에는 어머니의 얼굴이 어른거린다. '전선야곡'은 이렇게 비장한 서정성을 한결 고조시킨다. 또한 '어머니의 흰 머리가 눈부시어 울었소'라는 대목이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노래는 그렇게 군가를 능가하는 '불멸의 전쟁가요'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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