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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의 아리랑] <34> 피란살이의 종점 ‘이별의 부산정거장’

[대중가요의 아리랑] <34> 피란살이의 종점 ‘이별의 부산정거장’

기사승인 2023. 03. 26.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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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향래 객원논설위원
'보슬비가 소리도 없이 이별 슬픈 부산정거장/ 잘 가세요 잘 있어요 눈물의 기적이 운다/ 한많은 피란살이 설움도 많아 그래도 잊지못할 판자집이여/ 경상도 사투리에 아가씨가 슬피우네, 이별의 부산정거장// 서울 가는 십이열차에 기대앉은 젊은 나그네/ 시름없이 내다보는 창밖에 등불이 존다/ 쓰라린 피난살이 지나고 보니 그래도 끊지못할 순정 때문에/ 기적도 목이 메어 소리 높이 우는구나, 이별의 부산정거장'

'이별의 부산정거장'은 휴전협정과 함께 정들었던 부산을 떠나는 피란민의 정한과 서울로 돌아가는 설레임을 절묘하게 그린 명작이다. 노랫말 그대로 한많은 피란살이를 끝내고 환도(還都)하는 기쁨과 정들었던 피란지 부산을 떠나는 슬픔이 교차하는 상반된 정서의 동행이다. 나아가 경쾌한 폴카 리듬 속에 서울행 열차를 탄 사람들의 희망적인 모습과 아쉬운 표정을 눈앞의 정경처럼 그리고 있다.

1952년 어느 가을날 작곡가 박시춘과 작사가 유호는 부산 공연을 마치고 자갈치 시장에서 술잔을 기울였다. 피란생활의 애환에서 시작해 화제는 서울로 돌아갈 부푼 가슴으로 옮겨갔다. 전쟁이 참혹했으니 피란도 혹독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피란민들은 부산 사람들에게 신세를 많이 졌다. 잊지 못할 사연도 많았다. 정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 노래를 하나 남기고 가자는 데 공감하고 건배를 했다. 

그렇게 탄생한 노래가 6.25 전쟁기 '박시춘-유호 콤비'의 마지막 걸작 '이별의 부산정거장'이다. 악보를 받아든 가수 남인수는 나직히 한번 불러보더니 빙긋이 웃었다고 한다. 그것은 노래가 마음에 든다는 뜻이었다. 나아가 흥행의 예고였다. '가거라 삼팔선' 이후 이렇다 할 히트곡이 없던 남인수는 이 노래를 통해 전후의 열악한 음반시장에서도 최고의 판매고를 올리며 가왕(歌王)의 명예를 되찾았다.

밀고 밀리는 전선을 따라 남과 북으로 오르내렸던 피란민들의 가혹한 시련과 말못할 사연들을 누가 대변해 줄 것인가. 밀려드는 피란민들로 인해 산비탈과 길섶까지 판자촌으로 숲을 이루었던 부산의 현실을 오죽했을까. '이별의 부산정거장'은 바로 작곡가 박시춘의 이같은 피란생활 체험에서 나온 작품이었다. 전쟁의 폐허와 피란살이의 설움 속에서도 청춘은 무르익고 사랑은 꽃피었다.  

'이별의 부산정거장'은 국가의 운명과 개인의 행로가 막다른 길목과 마주했을 때 겪어야 했던 공포와 혼란과 고난과 설움을 머금고 있다. 전쟁의 상처와 피란의 고초 그리고 청춘의 사랑과 이별을 담았다. 대중문화 평론가 김영철은 "박시춘과 남인수 가 완성한 불세출의 명작"이라며 "유랑민의 고단한 삶과 만남 그리고 이별을 노래한 유랑가(nomad song)이자 여로곡(旅路曲)"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전쟁의 비애와 1950년대의 정서가 물씬 풍기는 '이별의 부산정거장'은 유호-박시춘 콤비의 전쟁가요 마무리 작품이자 남인수 가요의 최대 걸작 중 하나이다. 게다가 남인수의 목소리에 담은 박시춘의 트로트는 이제 식민지 시대의 오랜 전형을 벗어났다는 점에서도 주목할만하다. 눈물과 탄식의 정조(情調)를 탈피한 경쾌하고 현대적인 트로트 문법도 가능하다는 것을 실증한 것이다. 

'이별의 부산정거장'은 1953년 서울 환도 후에 발표를 했다. 노래의 전주곡부터가 열차 쇠바퀴 굴러가듯 일정한 속도감을 지녔는데다 남인수의 카랑카랑하면서도 애절한 금속성(聲)이 이별의 서정적 울림을 확산시킨다. 70년 전 전란의 상흔과 이별의 아픔을 안고 서울행 열차는 피란지 부산을 떠나갔지만, 우리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과 미완의 평화 속에서 이별의 부산정거장을 되돌아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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