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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의 아리랑] <37> 신민요의 부활 ‘오동동 타령’

[대중가요의 아리랑] <37> 신민요의 부활 ‘오동동 타령’

기사승인 2023. 04. 16.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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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향래 객원논설위원
'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이냐/ 동동주 술타령이 오동동이냐/ 아니요 아니요 궂은비 오는 밤 낙숫물소리/ 오동동 오동동 그침이 없어/ 독수공방 타는 간장 오동동이요// 동동 뜨는 뱃머리가 오동동이냐/ 사공의 뱃노래가 오동동이냐/ 아니요 아니요 멋쟁이 기생들 장구소리가/ 오동동 오동동 밤을 새우는/ 한량님들 밤놀음이 오동동이요' '오동동 타령'은 노랫말의 언어감각이 변화무쌍하다.

'오동추야(梧桐秋夜)'는 '오동나무 잎이 떨어지는 가을밤'이라는 뜻이다. '오동동(梧桐動)'은 '오동나무 잎이 흔들리고 빗물이 오동잎에 떨어지는 소리'를 표현한 의성어이다. 이 노래에서 '오동동'의 의미는 보다 포괄적이고 묘연하다. 동동주 술타령, 오동잎에 떨어지는 빗물소리, 독수공방 타는 간장, 동동 뜨는 뱃머리, 사공의 뱃노래, 기생의 장구소리, 한량의 밤놀음이 모두 '오동동'이다.

'오동동'의 의미 전환이 예사롭지 않다. 오동잎이 흔들리는 의성어인 오동동의 동동과 밥알이 뜨는 의태어인 동동주의 동동을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그러다가 낙숫물 떨어지는 오동동으로 가더니 독수공방 타는 간장 오동동으로 승화된다. 결국은 임 그리는 내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다. 행여나 임이 올까 내 가슴이 뛰는 것이다. 익살스럽기까지 한 언어의 치환 능력이 점입가경이다.

가볍고 흥겨운 가락 속에 깊이 배인 사무친 이별의 아픔과 가이없는 그리움을 읽을 수 있다면 이 노랫말의 달빛과 술타령과 빗소리가 애타는 가슴으로 하나가 될 것이다. 2절 가사 사공의 뱃노래와 기생의 장구소리 그리고 한량의 밤놀음은 이 노래의 장소적 배경을 드러내며 예향(藝鄕)이자 주향(酒鄕)인 경남 마산 오동동의 옛 풍정을 떠올린다. 한량들의 노랫가락과 기생들의 장구 장단이 그치지 않았던 곳이다.

1955년에 가수 황정자가 부른 한복남 작곡, 야인초 작사의 '오동동 타령'은 노래의 탄생지가 마산의 '오동동(午東洞)'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오동동은 일제강점기부터 조선인들이 상권을 형성하면서 요정이 들어서고 권번 출신 기생들이 많았다. 한국전쟁기에도 피란민들이 몰려들며 다양한 문화예술이 양산되었고 선원들과 서민들이 통술집 한잔 술에 젓가락 장단으로 삶의 고달픔을 달랜 곳이기도 했다.

예로부터 우리말에는 '동동'이 참 많았다. 고려가요의 '아으 동동다리'와 대중가요 가사의 '아리아리 동동 스리스리 동동' 그리고 '아리랑 동동 스리랑 동동'…. 그래서인지 '오동동타령'은 어린아이부터 어른들까지 흥겹게 따라 부르기 쉬운 데다 신민요풍의 노랫가락이어서 대중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게 하는 데 한몫을 했다. '오동동 타령'의 흥행은 해방 후 신민요 부활의 서막이었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신민요가 부활했듯이 1950년대 중반에도 많은 여가수들이 신민요 대열에 합류했다. 해방 후 신민요의 터전을 다진 가수가 바로 황정자였다. '오동동 타령'과 '처녀 뱃사공'이 대표적인 노래이다. 황정자는 이렇게 1960년대 신민요의 성황을 이끌었다. 그후 김세레나가 '갑돌이와 갑순이' '새타령' '성주풀이' 등으로 일약 신민요 가수의 정상에 올랐다.

또한 최정자의 '처녀 농군' '창부타령', 최숙자의 '개나리 처녀', 조미미의 '바다가 육지라면', 김부자의 '달타령' 등의 신민요가 한시절을 풍미했다. 전통민요의 창조적 계승이었다. '오동동 타령'은 마산 오동동 기생들의 애환을 담은 노래라는 설도 있다. 낭만이 있는 애주가들은 '동동주 술타령이 오동동이냐'라는 노랫말에 호응을 하면서도 '독수공방 타는 간장 오동동이요'에도 귀를 기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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