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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의 아리랑] <42> 고아들의 설움 ‘가는 봄 오는 봄’

[대중가요의 아리랑] <42> 고아들의 설움 ‘가는 봄 오는 봄’

기사승인 2023. 06. 11.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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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향래 객원논설위원
'비둘기가 울던 그 밤에 눈보라가 치던 그 밤에/ 어린 몸 갈 곳 없어 낯선 거리 헤매네/ 꽃집마다 찾아봐도 목메게 불러봐도/ 차가운 별빛만이 홀로 새우네 울면서 새우네// 하늘마저 울던 그 밤에 어머님을 이별하고/ 원한의 십 년 세월 눈물 속에 흘러갔네/ 나무에게 물어봐도 돌부리에 물어봐도/ 어머님 계신 곳은 알 수 없어라 찾을 길 없어라' 이 노래에는 고아(孤兒)들의 눈물과 탄식이 배어있다.

고아들의 고달픈 삶과 서러운 처지를 곡진하게 대변한 대중가요 '가는 봄 오는 봄'은 가사가 참 예스럽고 가락이 애절하면서 짙은 비감이 어려있다. 가사는 3절까지 있어 백설희와 최숙자가 어머니와 딸의 배역으로 실감 나게 부르기도 했으며, 1절과 2절 가사 또한 부르는 사람에 따라 앞뒤로 서로 바꿔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박시춘이 작곡을 했고 노랫말은 작사가 반야월이 지었다.

6·25 전쟁은 한국의 가족사회를 해체한 흉악한 비수나 다름없었다. 전선의 포화 속에 쓰러져간 젊은 군인과 피란길의 민간인 사상자 그리고 남북으로 흩어져 생사를 모르는 이산가족의 속출로 집안이 철저하게 파괴되고 가정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전쟁미망인의 수가 50만명에 이르렀다. 더구나 전쟁으로 폐허가 된 절망의 거리에 홀로 선 고아들의 삶은 얼마나 비참했을까.

대중가요에 얽힌 한국 현대사를 집필한 김장실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은 "6·25 전쟁의 후유증으로 10만명의 고아가 생겨났다"며 "굶주림과 외로움에 지친 고아들의 서러운 처지를 대변하는 대표적인 노래가 '가는 봄 오는 봄'과 '생일 없는 소년'이었다"고 밝혔다. 이 노래들은 당시 한국 사회가 당면한 전후의 통증이자 속절없는 현안에 대한 연민의 정과 안타까운 시선이기도 했다.

1950년대 중후반 고아 출신 김성필 소년이 펴낸 '생일 없는 소년-어느 고아의 수기'가 대중의 눈물샘을 자극하며 사회적으로 반향을 일으키자, 노래와 영화로도 제작이 되었다. 전란의 비바람 속에 정처 없는 고아들의 처연한 삶을 대변한 노래는 김용만의 목소리를 타고 유행했는데 10여 년 후 방송금지 조치를 받았다. '어머니 아버지 왜 나를 버렸나요' 등의 가사가 지나치게 비탄조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가는 봄 오는 봄'은 1959년 박시춘이 제작하고 음악을 맡은 동명의 영화 주제가이다. 최무룡, 문정숙 등 당대의 인기 배우들이 출연한 이 영화의 내용은 '태평양전쟁 때 학도병으로 끌려간 연인을 잃고 6·25 전쟁 속에 딸마저 잃어버린 기구한 여인의 눈물겨운 모녀 상봉기'이다. '가는 봄 오는 봄'은 영화는 물론 주제가 또한 함께 히트했다. 영화의 아우라와 노래의 분위기가 상생 효과를 이끌어 낸 것이다.

영화와 노래는 우리 현대사의 격랑에 휩쓸린 비극적인 가족사를 재현하며 전란의 상흔이 남아있던 대중의 공감을 자아냈다. 특히 여성 관객들은 모두 눈물을 머금고 극장 문을 나왔다고 한다. 부잣집 안방마님들이 가정부를 들일 때 '가는 봄 오는 봄' 노래를 아느냐고 물어볼 정도로 한 시절 인기를 누렸다는 것이다. 이 영화 포스터를 보면 작은 글씨로 '일명 그리움은 가슴마다'라는 부제를 달아놓았다.

따라서 1967년 컬러로 리메이크해 다시 인기를 누린 음악영화 '그리움은 가슴마다'의 원전은 당연히 '가는 봄 오는 봄'이었다. 김지미, 윤정희, 남진 등 당시의 톱스타들이 출연했다. 이 영화의 음악은 박춘석이 맡았다. 학창 시절 시골 가설극장에서 이 영화들을 보고 남몰래 눈물을 많이 흘렸던 기억이 새롭다. 부모를 잃고 거리를 방황하는 그 가련한 천사들도 이제는 팔십이 넘었거나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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